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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ja Dec 15. 2023

좋은 추억은 다 주고 난 뒤 남는다.

러브 레터

 한 연애가 끝났습니다.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연애는 어렵지 않을 거라고 되뇌었지만, 여전히 연애는 어려웠습니다. 나의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여전히 나를 몰랐고,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한 제 연인은 지금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끝냈습니다. 제 맘대로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고, 제가 생각대로는 그 무엇도 이루지 못한 연애였습니다. 서로의 선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걸었던 무수한 조건은 족쇄가 되었고, 즐거운 마음은 가라앉아 정신적으로 지쳐만 갔습니다. 연애가 끝난 지금 다시 돌아보면 저는 연애를 하는 방법을 완전히 잊었던 것 같습니다. 첫 연애 때 입은 상처만 생각하고 그걸 더 입지 않기 위해 노력만 했지, 어떻게 기쁨과 설렘, 즐거움을 얻었는지는 까맣게 잊었습니다. 기쁨과 설렘, 즐거움이 찾아올 때면 오히려 불편했습니다. 이런 저를 저도 모르겠고, 사랑이 뭔지도 몰라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았습니다.


 한 철학자는 사랑은 대상도, 감정도 아니고 기술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법을 익히기 위해 이론을 알아야 하고 그 이론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며, 사랑하는 순간만큼은 돈, 직위와 같은 외부 환경에 관한 생각은 접어두고 궁극적으로 사랑만을 추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몇몇 에세이에서는 좋은 사랑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사랑을 받기 전에 주어야 함을 이야기했습니다. 누군가는 반박할 수도 있지만, 좋은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을 받는 것에만 집중했는지, 사랑 자체에는 제대로 집중했는지 사랑을 하며 한 번쯤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말들은 많은 생각을 불러오지만, 이런 의문도 불러옵니다. ‘그럼 사랑은 어떻게 하는데?’ 실천, 노력 같은 추상적인 얘기 말고, 구체적인 예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전에 보겠다고 마음먹었던 멜로영화들을 꺼내 들었습니다.


 ‘오겡끼데스까?’ 어렸을 때 ‘오뎅끼데스까.’라고 자주 바꿔 불렀던 이 말은 한 영화의 명대사였습니다. 대사 한 부분만 알고 있던 <러브 레터>라는 영화를 처음 본 것은 고등학교 1학년 국어 시간이었습니다. 입시로 지쳐있던 우리에게 선생님이 틀어준 영화였습니다. 영화는 지루했고, 입시에 지쳐있으니 영화를 보기는 개뿔. 잠이나 잤습니다. 그래서 영화 내용보다는 영화 틀어줬는데 잠이나 잔다고 화를 버럭 내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더욱 기억에 남는 영화입니다. 최근 그 영화를 다시 봤습니다.


 영화는 얼굴이 똑 닮은 두 명의 여자, 히로코와 후지이(이 여성은 히로코의 약혼남 이름이 똑같습니다. 그래서 여성을 성인 후지이로 약혼남을 이츠키로 구분하여 이 글에서 부르겠습니다)가 나누는 편지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히로코의 약혼자였던 이츠키의 사망(산에서의 조난 및 실종) 이후 히로코는 이츠키를 잊지 못한 상태였고, 지푸라기라도 붙드는 심정으로 졸업앨범에 있는 주소로 편지를 보냈고, 답장이 옵니다. 상식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더 파고들어 보니 이츠키와 이름이 똑같은 중학교 여자 동창이 있었고, 주소를 착각하여 그곳으로 편지가 간 것입니다. 이츠키를 만나러 간 여행에서 히로코는 후지이의 얼굴이 자신과 똑같음을 알고, 질투합니다. 아직 떠나간 이를 놔주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히로코는 이츠키와 후지이가 쌓았던 추억이 궁금하여 편지로 그 추억을 물어보고 후지이는 추억을 글로 적어 편지로 보내줍니다. 그 과정에서 히로코는 천천히 이츠키를 마음속에서 놔주고 후지이는 자신의 첫사랑이 이츠키였음을 깨닫습니다.


 히로코의 사랑은 이제 보답받을 길이 없습니다. 이츠키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그를 놓지 못합니다. 사랑을 주다가 끊겨버려 남은 사랑을 어디에 주어야 할지 헤매고 있습니다. 이제는 존재하지도 않을 이츠키의 과거 집에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자 천국에서 온 편지라고 믿어버리는 그녀는 남은 사랑을 줄 곳을 찾아 무척 기뻐합니다. 논리적인 사고방식은 아니지만, 자신의 넘쳐흐르는 이 마음을 둘 데를 찾아 기뻐하는 모습입니다. 중학교 동창에게 질투하는 모습은 이상하지만, 그녀가 얼마나 열성적으로 사랑을 주었고 그 사랑을 소중히 했는지를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자신들이 느꼈던 감정이 사랑인지 몰라 표현하지도 못하고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린 예도 있습니다. 후지이는 이츠키와의 추억들이 최악이라고 생각하지만, 추억을 되짚어가면서 최악의 추억들 사이에 자신이 이츠키에 대해 호감이 점점 커져갔음을 기억해냅니다. 그리고 추억을 떠올리는 것을 무척 즐거워합니다. 추억을 다 떠올리고도 이츠키가 첫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부정하지만, 도서 카드 뒤에 이츠키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받아 들고 첫사랑의 추억에 잠깁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인연이지만, 마음을 적시는 추억입니다.


 하나는 사랑임을 인지하고, 사랑을 유지하려 했지만,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랑이었고, 하나는 사랑인 줄 몰랐으나 지나고 보니 사랑임을 깨달아버린 사랑입니다. 서로 성격은 다르지만, 좋은 추억으로 남은 사랑입니다. 영화 밖의 제3자인 관객이 보기에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추억은 마음을 다한 사랑이 바탕이 되었기에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전력으로 좋아함이 느껴지는 행위는 ‘사랑이란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이렇게 좋아했기에 잊지 못하고, 남은 마음을 털어내는 행위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다 주고 비워낸 뒤 남은 추억은 세월이 지난 뒤엔 따뜻한 미소를 짓게 만듭니다.


 여전히 사랑은 잘 모르겠습니다. 암만 고민해도 안 떠오르던 것이 영화 한 편 본다고 떠오를 리 없습니다. 그래도 일단 ‘사랑은 어떻게 하는데?’란 질문에 답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준다는 행위. 보답을 바라기 전에 주는 것. 조건과 환경을 따지지 않고, 적어도 사랑에 빠져 있는 순간만큼은 자신의 최고 한도로 내어주는 것. 그것이 사랑을 하는 이상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모두가 이런 이상적인 방법으로 사랑을 할 수는 없습니다. 철학이나 말의 이상과는 달리 현실은 더욱 다양하고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줄 만큼 주었다면 사랑을 부족하게 했다는 후회는 남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의 저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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