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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ja Dec 19. 2023

사람을 수단으로 만드는 전쟁

웰컴 투 동막골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을 가만히 본 적이 있으신가요? 나풀나풀 날아다니는 나비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날아다니고는 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궤적으로 우아하게 날아다니는 나비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노라면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신비하고 비밀스러운 나비의 몸짓을 따라 산속 깊이 들어가면 6.25전쟁이 한창인 당시에도 자신들만의 삶을 가꾸며 평화롭게 사는 동막골의 부락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별천지 같은 느낌을 주는 이곳은 산 아래 전쟁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무릉도원과도 같은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동막골이 위치한 곳은 한반도의 어느 산골, 언제든 전쟁에 노출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웰컴 투 동막골>은 이런 깊은 산골짝의 자그마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전화가 완전히 피해 가지는 못해 동막골에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산 아래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들은 각자의 사연들을 가지고 서로 대립합니다. 비행기 고장으로 추락한 미군 스미스, 탈영한 후 만나 마을로 들어온 국군 문상상과 표현철, 국군에게 쫓기고 쫓기다 마을로 들어온 인민군 리수화, 장영희, 서택기. 그들은 마을에서 만나자마자 서로 총을 겨누고 협박하지만, 총이나 수류탄이 뭔지 모르는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놔두고 일상생활을 계속합니다. 이 끝이 없을 것 같던 대치를 끝낸 것은 마을 내 정신이상자인 여일이었습니다. 그 누구보다 이상했지만, 그 누구보다 순수했던 여일은 수류탄의 고리를 가락지로 착각하여 뽑아버립니다. 이후 졸다가 서택기가 수류탄을 땅에 떨어트렸으나 터지지 않자 표현철은 수류탄을 곳간에 던졌다가 곳간을 날려버립니다. 그리고 곳간에 있던 옥수수가 팝콘으로 변하여 눈처럼 떨어지고 무척 피곤했던 인민군과 국군이 모두 잠들며 갈등은 잠시 멈춥니다.


 가장 먼저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은 전쟁의 참혹함입니다. 부상자를 데리고 패주하는 것이 힘들어지자 부상자를 죽이고 멀쩡한 이들만 데리고 후퇴하라는 인민군, 다수의 피난민이 다리를 건너는 상황에서 다리를 폭파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국군, 동막골 근처에서 비행기 추락이 반복되자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부락민들을 빨갱이로 몰아가고 폭격 명령을 내리는 연합군의 모습까지. 사람의 목숨보다 전쟁의 목적이 우선시되는 전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도 희생할 수 있다는 광기가 느껴집니다.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이익을 주기 위해서라는 전쟁의 목표 앞에서 사람의 목숨이 전쟁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이 상황은 무척 역설적입니다. 사람의 목숨이 가장 소중하다는 말은 공허해지고, 서로서로 죽이다 보니 나와 반대편에 있는 이들을 사람으로 이해할 생각은 안 하고, 이념이 다르단 이유로 죽이기 바쁩니다. 사실 전쟁 중에 그 이념은 말 그대로 알맹이를 잃어버린 ‘단어 하나’에 불과할 뿐인데도 말이죠. 이런 참혹한 현실에서 살아온 인민군과 국군의 대립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하지만, 산 아래 현실이 통용되지 않는 동막골에서는 그들의 대립은 무척 시시한 일이며 삶에 방해가 될 뿐입니다.


 곳간을 파괴해버리고 마을 사람들의 눈초리를 받으며 국군과 인민군은 농사일을 돕습니다. 농사일을 도우면서도 서로에 대한 견제를 멈추지 않고, 여전히 두 집단 사이의 긴장감은 사라지지 않았고, 갈등은 언제라도 폭발할 듯합니다. 이 갈등은 모두 힘을 합쳐 멧돼지를 잡고, 마을 사람들이 먹지 않는다고 묻은 멧돼지를 국군, 인민군, 스미스가 나눠 먹으며 풀립니다. 이후에는 스미스가 알려준 럭비를 하고, 썰매를 타며 점점 친해지고 아예 마을에 녹아듭니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과 축제를 즐기던 중 스미스를 찾는 연합군이 들어와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가며 핍박합니다. 이에 저항하여 연합군을 죽이고 한 명을 포로로 잡으나 이 과정에서 여일이 죽습니다.


 갈등을 끝낸 것은 한 집단이 더 강한 힘을 가졌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아주 강한 힘을 가진 외부 세력(멧돼지)이 나타나자 갈등은 저절로 끝났습니다. 그들은 이념과 전쟁의 원한으로 서로를 배척했지만, 적어도 서로가 사람이란 것은 알았기에 모두를 구하려 힘을 합하는데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이 일 이후로 ‘빨갱이’인 인민군들은 리수화, 장영희 서택기로 ‘괴뢰군’인 국군은 표현철, 문상상으로 말 안 통하는 연합군은 스미스로 변합니다. 상대를 바라보고 전쟁의 포화와 비극 아래 가려졌던 사람이라는 상대의 참모습을 확인합니다. 하지만, 이건 동막골 내에서 통하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산 아래에서 온 또 다른 연합군들은 동막골 사람들이 자신들의 동료들을 죽인(이것마저도 오해) 빨갱이들로 보입니다. 총을 내려놓고 천천히 이야기해보자는 촌장의 말은 묵살합니다. 전쟁이라는 비극이 만든 그들의 독선적인 모습은 동막골 사람들과 대조되어 그들을 괴물처럼 보이게 합니다. 하지만, 그들 또한 오해가 쌓여 원한이 되고 원한이 쌓여 낳은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가해자면서 피해자가 된 것이죠. 하지만, 동막골을 지키기 위한 이 싸움에서 무고한 사망자 한 명이 생깁니다. 여일입니다. 그 어떤 편견 없이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올곧게 바라보며 살아온 여일의 죽음은 꿈과도 같았던 동막골에서의 공동생활이 끝났음을 알리는 동시에 전쟁을 더욱 비극적으로 보게 만듭니다.


 미군이 동막골을 폭격한다는 정보를 포로에게서 입수한 리수화, 장영희, 서택기, 문상상, 표현철과 스미스는 동막골이 아닌 다른 곳에 폭격을 유도하기 위해 마을을 떠납니다. 다른 이들과 마지막까지 같이 있고자 했던 스미스는 동막골에 쏟아질 수도 있는 2차 폭격을 막기 위해 본부로 향하고, 나머지 5인은 가짜 대공 포대를 만들어 폭격을 유도하고 모두 사망합니다. 쏟아지는 폭격을 멀리서 바라보는 동막골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 채 폭격을 아름답다며 구경합니다. 리수화, 장영희, 서택기, 문상상, 표현철은 초가집의 한 방에서 함께 자고 있으며 곧 깨어날 것 같은 그들 사이에서 여일이 뛰노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이제야 평화롭게 상실과 원한, 죽음에서 벗어나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나 했던 이들은 동막골까지 이어져 자신들을 따라온 전쟁이라는 그림자를 다시 실감했습니다. 전쟁이 뭔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자신들이 겪었던 전쟁을 알고 싶게 하지 않았기에 동막골을 나섭니다. 많은 희생을 쌓아온 피 묻은 손을 사용해 동막골을 위해 희생함으로써 자신들의 마음속 조금이나마 남았던 짐을 덜어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눈이 내려와 그들의 피 묻은 손을 씻어가죠. 이미 죽은 이들을 살릴 수는 없지만,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살린 그들의 마지막 모습은 경건하기까지 합니다. 그들의 희생으로 동막골 사람들의 삶은 유지됩니다. 그들은 살아서는 전쟁에 휘말려 서로를 생각하고 위하며 이해하려 노력하는 사람다운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자신의 목숨마저 잃고서야 사후세계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어주고 재미있게 놀 기회를 얻었습니다. 여일이 나비와 함께 춤추고 있는 그곳에서 그들은 그들이 마지막에 그토록 바랐던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죽음을 통해 제대로 된 삶을 살 기회를 얻었다는 역설적 장면이 영화에 슬픔을 한층 더합니다.


 동막골이라는 현실에는 없는 공간을 구현하여 <웰컴 투 동막골> 전쟁의 아픔을 그려냅니다. 그들의 평화롭고 느긋한 삶의 모습은 당시의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비현실적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죠. 아니 마치 꿈과도 같은 초현실적인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그들의 삶에서는 당시에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상실, 원한, 증오는 없습니다. 사실이 뭔지도 모른 채, 갈라치고 싸우다 사람을 죽이기에 바쁜 전쟁이라는 악마는 그 사람들과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이곳을 찾아온 군인들은 다릅니다. 사람의 목숨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사용하는 전쟁의 광기에 휩싸여 서로를 죽이려 합니다. 이들의 모습은 동막골의 사람들과 대조되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전쟁의 이상함을 깨닫게 합니다. 사람이 만든 이념, 사상, 무기와 같은 물건들이 사람을 집어삼키고, 이로 인해 만들어진 광기가 또 다른 광기를 나아 사람 마음 깊숙이 원한을 새깁니다. 참으로 이상하고 참으로 미쳤습니다. 


 이처럼 미친 전쟁을 계속하려는 이들은 흔히 미친 사람으로 분류되는 여일보다 훨씬 비정상적이고 미쳤습니다. 사람을 위한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고, 죽이고, 또 죽입니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누군가의 이익을 위한다는 이유가 사람을 위한다는 이유로 바뀌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고 누구나 말합니다. 하지만, 종종 몇 가지 이유로 사람의 목숨보다 다른 것들을 중요시합니다. 그러한 일이 반복되고 그러한 인식이 쌓이면 개인의 목숨이 수단으로 소비되고, 그 수단으로 다른 것들을 얻기 위해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전쟁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늘 그 다른 어떤 사람이 만든 것들보다 사람이 중요함을 염두에 두고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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