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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ja Nov 07. 2024

꿈의 전달

<꿈을 나르는 책 아주머니>

 어렸을 때부터 책을 줄곧 읽곤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제대로 된 핸드폰 한 번 가져보지 못하고, 컴퓨터 게임을 일주일에 한 시간 밖에 할 수 없던 저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자연히 책이 되었습니다. 집의 곳곳을 채운 전집들을 읽으며 여러 상상을 하고, 다양한 지식을 익히는 것이 제 삶의 큰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엄청 즐거웠냐고 묻는다면 그 정도인가 싶지만, 지루했냐고 묻는다면 나름 즐거웠다고 말할 것 같습니다. 여전히 취미 중 하나를 독서로 잡고 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지요. 


 독서를 오랜 기간 하면서 여러 책들을 접해봤고, 읽어봤습니다. 집 바로 옆의 지역 공립도서관이나 대학 도서관을 수도 없이 다니면서 다 읽지는 않았어도 제 손을 거쳐간 책들이 어림잡아 몇 천권은 되겠지요. 처음에는 그냥 지식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 즐거워 책을 찾고 읽었다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책을 쓴 사람의 생각을 알아가는 것이 즐거워 책을 찾아 읽는 것 같습니다. 세상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이 살아온 삶이 다르기에 그들이 쓴 책도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같은 사람이 썼더라도 언제ㅡ 어디서 썼느냐에 따라 책의 관점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써내려간 책은 그 자체로 하나의 관점을 가진 생각의 우주가 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자기가 바라는 바, 소망하는 바, 즉 꿈이 담겨있기 마련이죠. 우리는 책을 통해 그 우주를 보고 별처럼 박혀있는 그들의 꿈을 보면서 자신의 꿈을 만들어가기도 합니다.



 <꿈을 나르는 책 아주머니>에서 주인공은 산골에 살고 있습니다. 길조차 제대로 나지 않은 곳에서 가족들이 전부 모여 살고 있죠. 거기에 주인공이 살고 있는 곳은 산맥 깊은 곳이라 주인공과 남매들은 학교조차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 어린 나이의 주인공은 독서보다는 열매를 따고, 울타리를 고치는 생업에 시간을 더 많이 씁니다. 독서보다는 실용적인 생업 전선에 뛰어든 아이의 안타까운 모습이 보여집니다. 아이는 미래의 꿈을 생각하기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 집중하는 것이 전부가 되어버린 것이죠. 하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2주에 한 번씩 책을 대출해주고 반납을 받는 ‘말을 탄 사서’가 오기 시작하면서 아이는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잘 몰랐던 글자를 배우고, 이야기를 배우면서 꿈을 꾸기 시작하죠. 생업 너머 오늘의 뒤에 또 다른 오늘이 아닌 더 나은 내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아이들에게 박물관의 유물을 보여줄 때 여러 반응이 나옵니다. “이것은 언제 어떻게 쓴거예요?” 라고 가장 일반적인 질문을 하는 아이들이 있는가하면 이미 공부하고 와서 제가 설명할 것들을 미리 말해버리는 친구들도 있죠. 감수성이 예민한 친구들은 색감이나 그려진 문양에 주목하여 그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가장 안타까운 반응은 “이거 얼마예요?” 라고 묻는 친구들입니다. 이 유물은 돈으로 가치를 환산하기에는 어려운 물건이라하면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어디 있냐고 묻기도 합니다. 경제적 관념은 빠삭하게 잡혔지만, 아마 이 친구들의 꿈은 돈을 향해 나아갈 겁니다. 직업도, 삶도 돈을 벌기 위한 삶을 살겠죠. 그 또한 하나의 우주고 빛나는 별이지만, 외로이 홀로 빛나고 있는 별일 겁니다. 돈만 생각하며 살기엔 이 세상은 넓고, 무수한 이야기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으니까요. 돈은 분명 중요한 가치입니다만, 그 꿈 하나로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기에는 조금 지루한 느낌이 있습니다.


 동화의 주인공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최고인 친구였습니다. 도대체 왜 책을 읽는지 이해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책은 당장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가냘픈 성냥보다야 오래 타서 잠시 몸을 따뜻하게 해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뿐입니다. 하지만, 책은 꿈을 전달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우주와 별이 전부가 아님을 보여주고, 내 우주를 넓히고 우주 안의 별들을 늘려줍니다. 그 즐거움을 주인공도 배워갑니다. 책을 읽고 꿈을 가지고, 책을 읽는 즐거움을 배워갑니다. 아마 주인공의 오늘은 계속 반복될지도 모릅니다. 더 나은 내일은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색이 바랜 오늘을 반복하는 것보다 별들이 내려주는 빛을 받으며 색채 가득한 오늘을 반복하는 것은 분명 다를 겁니다. 그리고 오늘에 가지고 있던 꿈을 다른 이의 오늘에 전달하여 다른 이에게 더 멋진 내일을 선사할지도 모르는 일이죠.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직장을 다니고 있는 친구들의 말을 들으면 책을 안 읽은지가 오래되었다고 말합니다. 매일하는 이야기들은 이제 직장의 이야기, 돈에 관한 이야기 뿐입니다. 그들이 원했던 직장에서 그들이 원했던 별에 도달했지만, 그들의 말에는 피곤함과 지루함이 묻어납니다. 새로운 별을 전달하는 무언가를 더 이상 접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목적중심적이며 실용적이고 생업 중심적인 삶에서 새로운 것을 얻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오늘은 이미 색이 바래져 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더 멋진 내일을 위해서가 아니라도 색이 바랜 오늘을 다채롭게 하기 위해서 짧은 글 한 편, 동화 한 편 읽는 것은 어떨까요? 우리 마음속에 굳어지고 어두워져 가기만 하던 우주가 생동감있게 살아나고, 별빛으로 반짝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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