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얼마 전 친구들과 술을 먹다가 친구 한 명이 저보고 도화살이라 하더군요. 보통의 도화살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을 뜻하지만, 글쎄요. 저는 그렇게 잘생기지도, 누군가를 끌어들일 매력도 충분치 않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어보니 인생의 도파민화 된 사람이라고, 도화살이라고 하더군요. 삶에 즐거움과 신기한 이야기가 가득하다고. 자신은 회사를 다니면서 늘 똑같은 일의 반복이고, 짜증나는 일의 반복인데 내 삶에는 자극적인 요소와 웃음이 가득하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즐겁기는 했지만,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친구들은 저를 표현할 때 딱 한 가지 단어 ‘낭만’으로 표현합니다.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고, 누군가 절대하지 않을 일을 할 만한 사람으로 저를 뽑죠. 그래서 3일 전에 일본 해외여행을 갑자기 계획하여 간다거나 갑자기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저를 자주 찾습니다. 제가 그런 일을 자주 해왔기도 하고, 누군가 제안을 하면 절대 거절하지 않기도 하니까요. 이런 낭만과 도파민 가득한 삶만 있다면 누군가는 방탕함의 다른 말이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냥 논 것은 아니기에 방탕하지는 않다고 확실하게 답을 할 수 있겠지만, 회사에 딱 맞는 사람을 원하는 현대 사회에서 이런 삶의 방식이 나를 먹여 살려주느냐에 대해서는 답에 망설임이 가득합니다.
집에서 놀면서 부모님의 돈만 받아먹는 것이 낭만은 아니기에 열심히 서류도 넣고, 면접도 보고 있습니다만, 면접에 가서 이 말이 나오면 말문이 막혀버립니다. “자기소개해보세요.” 그 한 마디 말이 너무 어렵습니다. 여기서 말해야 하는 자신은 27년을 살아온 내가 아닌 회사가 원하는 나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준비를 해도 여기서 저는 말문이 막힙니다. 내가 소개하는 내가 ‘나’가 될 수 없음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말을 꺼내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나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그 기분, 부드러운 양복의 섬유 하나하나가 나를 찌르는 그 기분이 저를 옥죄입니다. 그 기분 속에서 면접이 잘 될 리 없습니다. 나와서 한숨을 쉬고 저한테 이렇게 묻죠? “나는 누구일까?” 대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폐로 들어오는 것은 깨끗하고 맑은 공기이지만, 그 공기마저 저를 가두어버리는 듯한 답답함만이 남을 뿐입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월터는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늘 상상 속에 갇혀 삽니다. 재미없는 삶이지만, 상상 속에서 그는 무엇이든 될 수 있죠. 현실은 상상처럼 될 수 없기에 그는 정리해고 위기에 놓입니다. 정리해고 당하지 않기 위해 사진 작가가 말한 삶의 정수라 불리는 사진을 찾기 위해 여태껏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들을 하죠. 깜짝 해외 출장을 해서 헬기를 타고, 헬기에서 어선으로 넘어가 아이슬란드까지 가보기도 합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진 작가를 만나 사진의 행방을 알아내기는 합니다만, 이미 시간은 늦어 그는 정리해고 당합니다. 그래도 그는 사진을 전달했고, 사진은 잡지의 마지막 폐간호에 실리게 됩니다. 그 사진은 사진을 현상하는 웥터의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늘 작가 자신의 사진을 멋있게 실어준 월터에게 헌정하는 사진이었죠. 이는 평범한 삶을 잘 살아가는 이들을 잘 담은 사진이면서 그 동안 고생한 잡지 직원들을 위한 사진이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을 겪은 월터는 평범한 직장인에서 백수로 바뀌었지만, 그의 삶은 하루하루를 상상으로 견디는 나날이 아니라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며 빛나는 삶을 살아가는 나날로 변했습니다. 월터의 상상은 점점 현실로 섞여들어와 점점 사라지고, 잿빛의 현실을 색채 가득한 현실로 바꾸었습니다. 직장인 한 명의 삶은 ‘월터’의 상상과 함께하는 온전한 자기 삶으로 변모했습니다.
월터가 겪은 경험은 대부분의 사람이 평생 겪을 수 없는 일입니다. 모두가 이런 일을 겪으며 빛나는 삶을 살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월터 또한, 마지막엔 직장을 잃은 일상으로 돌아오죠. 아마 반복된 일상을 다시 살 겁니다. 그러나 반복된 일상이 싫어 매일 상상하기 바쁘던 그의 삶은 이제 없을 겁니다. 일상의 반복에서 차이를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월터의 일은 평범하고 반복되는 일이었지만, 사진 작가에게는 무엇보다 빛나는 삶의 정수였습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 드러나는 작지만 선명한 차이. 그것이 우리의 삶을 더욱 빛내고 아름답게 하는 것이겠죠.
이처럼 월터의 일상은 극적으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뀐 것이죠. 하지만, 이 관점이 바뀌었기에 월터의 삶은 이전과 다를 겁니다. 이처럼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은 이렇게 바꿀 수도 있을 겁니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
최근에 인문학을 공부하는 친구가 머리가 아픈지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인문학은 뭐야?”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인문학은 사람의 삶이지.” 저는 모든 사람이 유일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 존재들은 저마다 삶이라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그 이야기를 풀어내서 정리한 학문이 인문학이라고요. 그래서 저는 늘 이야기를 좇고 있습니다. 웃음을 주는 이야기, 감동을 주는 이야기, 슬픔과 분노를 주는 이야기. 그 이야기에서 눈을 돌리거나 귀를 닫지 않으려 매번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을 좋아하죠.
하지만, 현대 사회는 그런 이야기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목표에 맞는 이야기만이 최고라고 말할 뿐이니까요. 특히 우리의 일상 대부분을 차지하는 회사는 더욱 이야기를 획일화시킵니다. 이런 일상에서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니 친구들이 보기에 저는 도파민을 주고, 낭만을 좇는 사람처럼 보이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돈을 버는 회사에서 ‘모두의 이야기를 추구하는 사람’이라 할 수 없으니 자기소개에서 막히는 것이겠죠. 언젠가 한 번 쯤은 제 말도 안 되는 자기소개가 회사를 만족시켜 회사를 다닐지도 모릅니다. 그 회사에서 저는 한 가지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일을 하겠죠. 그래도 늘 마음 한 구석에는 모두의 이야기, 삶의 말들을 모두 보고, 듣고자하려 노력할 겁니다. 그래야만, 삶을 조금 더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