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술관을 갔다가 백남준의 작품에서 도슨트가 해주는 설명을 들었었다. 제목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조절해서 달과 비슷한 하얗고 동그란 원을 다수의 모니터에 띄워 놓은 모습이었다. 그를 통해 사유와 명상을 유도한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어떤 평론가가 했다는 말을 덧붙였는데 아주 인상적이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하늘의 달을 봤을 겁니다. 지금 우리가 집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듯이 말이죠.” 그러면서 옆에 있는 한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오늘 하늘 봤니?”라고. 미술관 관람이 끝나고 나는 미술관의 문을 열자마자 하늘을 쳐다보았다. 따가운 햇빛이 내 눈과 피부를 강타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늘색의 캔버스가 보였고 거기에 그려진 구름조각들은 거기에 어우러져 더 없이 아름다운 하늘을 구성하고 있었다.
사실 어렸을 때는 하늘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눈이 부셔서도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도 아닌 무서워서였다. 아직도 그런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내가 땅에서 발이 떨어져 하늘로 올라가 버릴 것만 같은 그 감각이 너무 무서웠다. 아마 하늘을 넘어 우주까지 이어지는 그 무한의 공간에 대한 본능적 인식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 때의 나는 이 무서움을 이겨내고 하늘을 볼만큼 그 아름다움을 알지는 못했기에 그저 포기하고 살았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문화유산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하늘을 점점 보기 시작했다. 건축물들을 찍다보면 건축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의 산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포용하는 하늘까지 담게 되는데 그렇게 본 하늘은 아름다웠다. 날씨가 조금 흐려도, 맑아서 구름 한 점 없어도 하늘은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아름다움에 홀려 무서움을 조금씩 덜어내며 나는 고개를 점점 하늘로 향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에 집중할 때였다. 공부에 집중하지 않더라도 교실 내에서 책을 읽고 있었기에 하늘에 대한 기억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도 가끔 축구하다가 힘들어 운동장에 누워버리면 보였던 하늘은 정말 좋았다. 아름답다기보다는 좋다는 느낌이 맞을 것 같다. 체력적으로 힘들든 정신적으로 힘들든 청명한 하늘은 내 불안한 고등학교 시절의 마음 상태를 안정시켜주는 느낌이 들었다. 갑갑한 시골 오지의 고등학교에서 끝없이 뚫려있는 하늘은 내 이상향이자 내 고민을 잠시나마 세속에서 떼어내 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대학교 때는 고등학교 때보다 더 하늘을 보지 못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사람은 얼굴이 두 개이지는 못하는 지라 하늘을 봄과 동시에 땅을 보지 못한다. 갑갑했던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자유와 유흥이 존재하는 대학교 생활은 하늘을 볼 이유조차 없게 만들었다. 그렇게 군대에 오고 나서야 매일 같이 하늘을 다시 보게 되었다. 텔레비전도 휴대폰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근무지에서 내가 마음 놓고 바라볼 수 있는 것은 하늘뿐이었다. 하늘은 아름다웠고 대부분 나를 안정시켜주었지만 매번 그러지는 못했다.
정말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 다 내팽개치고 싶은 날. 침대에서 일어나기는 싫지만 침대에 누워만 있어도 짜증이 나 내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는 날. 너무 슬퍼 그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업무에 실수만 늘어나는 날. 그런 날이면 바보상자들을 암만 쳐다보아도 내 자신의 쓸모없음에 짜증만 나기에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게 된다. 그리고 폭풍이 몰아치거나 구름만 가득 껴 흐린 내 마음과 달리 청명한 하늘을 보며 원망하게 된다. 왜 난 이렇게 힘든데 당신은 너무 멀쩡한 것 같다고. 신이 있다면 당장 폭풍우라도 내려서 세상을 싹 다 적셔버렸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기도하는 내가 무색하듯이 햇빛은 사라질 줄을 모른다. 너무 야속하고 야속해서 나직이 욕을 내뱉어 보기도 한다. 그렇게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그저 어찌할 줄을 모르다 하늘을 내버려두고 뒤돌아 눈을 감는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니 그저 눈 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하늘은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늘은 비를 내려주고 햇빛을 비추어 생명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며 사람들에게 미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등 다수의 긍정적인 역할들을 한다. 거기에 사람을 위로하는 것까지 부여하며 나에게 공감하도록 하늘을 바꿔달라는 것은 너무한 처사일 것이다. 그럼에도 하늘에 까지 원망하는 것은 원망할 대상이 없어서 일 것이다. 그리고 그걸 말없이 받아내면서도 우리에게 늘 항상 고마운 일을 해주는 하늘은 대단한 존재이다. 늘 감사해야할 존재이기도 하다. 아마 계속 하늘을 원망하고 저주를 퍼부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마지막에 돌아와선 난 아마 하늘에 감사를 표할 것이다. 그리고 늘 그 자리에 하늘이 있기를 바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