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일상-동물들

by baekja

원시의 섬 백령도에서 벌레들에 이은 두 번째 생물 관련 이야기다. 벌레들이 많으면 그걸 먹는 동물들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동물들을 먹는 다른 동물들도 많아진다. 고등학교 때 운동장에서 고라니를 보고 야생 라이프를 다 체험한 줄 알았는데 더 새로운 야생라이프가 남아있음을 여기서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뭐 이것저것 나타나기는 하지만, 섬이라 그런지 동물들의 덩치가 그렇게 크지는 않다. 가짓수도 썩 다양하지는 않다. 헬기장에 변을 보는 고라니 같은 건 흔적도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흔히 고라니를 본 얘기가 많은데 우리 부대의 상징 같은 존재는 꿩이다.


그 멍청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면서 걸어 다니는 장끼를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목에서 머리까지 이어지는 푸른색 바탕에 눈 주위는 빨간색 바탕으로 되어있는 얼굴은 까투리를 매혹하기 위한 화려함이 돋보인다. 몸통도 갈색 바탕이지만 온갖 무늬들이 보이며 뒤로 이어지는 긴 꼬리까지 시선을 전부 집중시킨다. 까투리는 이와 다르게 대부분이 황토색 바탕으로 그 위에 무늬가 있는 단순한 수준의 모습이다.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니다. 우리 근무를 기가 막히게 방해한다는 게 문제지.


새벽에 초소를 지키며 조는 눈을 붙잡고 전혀 올 것 같지 않을 북한군에 대한 경계태세를 놓지 않는 우리 헌병은 가끔 적외선 센서의 오작동에 다급히 놀라 달려갈 때가 있다. 안타깝게도 그냥 오작동일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 꿩들이 센서를 건드리는 어처구니없는 경우가 다수 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잠을 다 깬 얼굴로 허망하게 뛰어다니는 꿩을 쳐다보는 초병들의 얼굴은 불쌍함 그 자체다. 물론 순찰을 도는 헌병들은 이렇게 크게 허망할 일은 없지만 고통을 아예 안 받는 건 아니다. 부대 내의 온갖 공포 이야기를 다 기억한 채로 긴장하고 야간 순찰을 돌다보면 하나하나의 반응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 와중에 풀숲에서 나타나 내 시야 앞으로 쑥하고 지나가 버리는 꿩은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존재이다.


꿩이 이렇게 활개를 치고 다니는데 당연히 천적은 있어야겠지. 가장 눈에 많이 띄지만 도심에서는 보기조차 힘든 동물이 있다. 뱀이다. 사실 뱀의 종류는 잘 구분하지 못하는데 머리가 세모난 것들이 다수 있어 독사가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뱀의 등장 장소는 아주 다양해서 의무실 문 앞에서 나타나기도 하고 견사에서는 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가끔은 견사 사무실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어 군견병들을 괴롭게 만들기도 한다. 그 외에도 초소 앞을 쓱 지나가거나 하수구를 따라 움직이는 일도 허다해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순찰돌 때 갑자기 나타나 풀숲 사이를 움직이는 뱀들은 순찰병들의 가슴을 쓸어내리게도 한다. 꿩의 둥지를 습격해 꿩과 싸우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는데 몸집이 워낙 작은지라 새끼들을 노리는 모습이 가끔은 불쌍해 보이기도 한다. 우리 불쌍한 뱀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것은 꿩의 새끼들뿐만이 아니다. 식당이든 화장실이든 물만 있는 곳이면 나타나는 미끈미끈한 녀석이 뱀의 고픈 배를 달래주기도 한다.


미끄러운 식당 벽이나 화장실의 타일에 착하고 달라붙어있는 개구리들을 볼 때면 그 흡착력에 감탄을 하게 된다. 사실 부대에서 로드킬을 가장 많이 당하는 불쌍한 존재이기도 해서 근심어린 시선으로 쳐다보게 된다. 그래서인지 뱀은 삽으로 때려잡아보았을지언정 개구리는 한 번도 잡아본 적이 없다. 배고프다고 개구리를 튀겨먹을 일도 없으니 더욱 그렇다. 가냘픈 네 다리도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 그 목적지를 알아내 데려다 주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한다. 부대에서 보이는 것은 대부분 청개구리이지만 딱 한 번, 개구리의 친척을 본 적이 있다. 자갈밭을 보호색으로 숨어있던 두꺼비였는데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모습과 남의 말은 하나도 안 들을 것 같은 독불장군의 생김새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생활관에서 나타나는 건 개구리 말고도 또 있다. 사랑스런 회색 쥐인데 이 녀석도 곳곳에서 나타난다. 부대에 온 지 한 달도 안됐을 무렵 생활관 천장 구석을 통해 떨어져 충격을 주었던 쥐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물론, 못 잡았다. 잘 살아있으려나…)그 때 이후로 전 생활관에 끈끈이가 놓였으며 개들의 생활관인 견사에도 물론 놓였다. 그리고 어느 날 견사창고의 끈끈이에 붙어 있는 쥐의 시체는 정말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그거 치우는데도 애먹었는데 하루는 쥐 주제에 겁 없이 우리 훌륭한 군견의 집에 들어갔었다. 그리고 우리의 훌륭한 군견은 물어죽이고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군견병한테 칭찬해 달라고 낑낑거렸다는게 후문. 물론 우리는 그 시체를 치워야했기 때문에 끔찍했지만. 흰자로 뒤집어진 생쥐의 모습은 너무나 불쌍했기에 시체를 치우기 전에 고이 명복을 빌어드렸다.


쥐가 있으면 고양이도 있어야지. 물론 야생 고양이가 아니라 집고양이들이 집을 잃은 건지 버려진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순찰병한테 붙어서 애교를 미친 듯이 부리고 신발을 꾹꾹 누르는 행동을 하는 아주 귀여운 검은색 고양이가 있다. 별명은 ‘짬타이거’. 가끔 식당에서 남는 참치 통조림을 얻어먹거나 꿩을 사냥하기도 한다. 백령도의 원시성에 의해 다시 야생성을 되찾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 짝이 없다. 가끔 순찰 돌기 무서운 날이면 이 친구가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기도 하는 고마운 친구다. 그 외에 떠돌이 개 몇 마리가 CCTV에 포착되기도 하는데 우리와 마주칠 일은 별로 없다.


물론 이 동물들 외에도 동물들은 더 있다. 나무를 마음대로 타고 다니는 청설모. 가을쯤이 되면 산을 뒤덮는 까마귀들. 이름을 알 수 없는 여러 새들. 멸종위기종이며 백령도 앞바다에서만 볼 수 있는 점박이물범 등(사실 나도 뉴스로만 봤다.). 사실 벌레들만큼 징그럽지도 않고 모기처럼 피를 빠는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도 않기에 그냥 보면 신기할 뿐 큰 관심을 가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꿩을 먹는 고양이나 개구리를 먹는 뱀을 보면 먹고 먹히는 생태계의 순환 원리를 내 두 눈으로 직접 보면 상당히 신기하다. 먹히는 쪽을 보면 불쌍하지만, 먹는 쪽은 또 누군가에게 먹힐 것임이 자명하기에 그저 관조하게 된다. 또, 내가 그런 생태계 안의 한 존재가 된 거 같아 뭔가 안심되는 마음도 생긴다. 벌레들이 마치 부대껴 사는 동기 같다면 동물들은 한 걸음은 떨어져 있지만 교류는 계속 되는 이웃사촌 같다. 보고 살아야할 동기도 많은데 기억해야할 이웃사촌도 많은 거 같아 앞으로의 군생활도 걱정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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