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라라랜드라는 영화가 개봉해 유행할 때쯤 나도 그 흐름에 편승해 예고편을 찾아 봤다. 크게 관심은 없어 예고편조차도 대충 봤지만 딱 하나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 분홍빛과 파란빛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하늘. 인생에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것이었기에 CG로 저렇게 아름다운 하늘을 만들어 낼 수 있음에 감탄했던 나는 부대에 들어와서야 내 식견이 얼마나 좁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집 베란다에서 바라보았던 무지개색이 물들며 점점 푸른빛에서 붉은색을 거쳐 검은빛으로 바뀌는 그런 일몰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근무를 하면서 바다로 해가 져가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다. 물론 그 강렬한 햇빛에 눈이 멀어버릴지라도 그 광경을 놓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가 놀란 것은 분홍색으로 물드는 하늘이었다.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연하고 청명한 파란색의 하늘은 화려하고 강렬하지만 사치스럽지는 않은 그런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그 장면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내가 보는 것이 원형 돔으로 둘러싸인 영화관에서 색을 만들어 가공한 하늘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 장면을 처음 바라본 날 나는 초소 옆에 서서 제자리를 돌기를 반복했다. 그 넓은 하늘이 차례차례 분홍색으로 바뀌고 더 붉어졌다가 어두워져 밤이 되는 그 장면은 감탄만을 자아냈다. 그 색감이 주는 따스함과 새로움에 내가 전에 가지고 있던 짧은 식견에 대한 탄식이 절로 나왔다. 철조망 사이로 보이는 분홍빛. 바다를 향해 사격하는 헬기를 포근히 감싸 안던 분홍빛. 레이더 돔 뒤로 끝없이 펼쳐진 분홍빛. 서해 바다를 넘어 보이는 북한 장산곶의 너머까지 닿는 분홍빛. 그 분홍빛은 일몰의 짧은 시간동안 어디에든 있었고 어디에서든 보였다. 딱딱한 최전방의 군부대를 온통 휘감은 일몰의 비현실적인 분위기는 딱딱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잠시 동안의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물론, 항상 분홍빛의 하늘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주 보이기는 하지만 가끔은 그냥 육지에서 보이는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일몰이 보이기도 한다. 높은 건물하나 없고 공해 하나 없는 백령도에서는 그 일몰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포카리 스웨트 광고에서나 볼 법한 맑은 하늘이 점점 붉게 물들다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색을 내뿜고 그 끝에선 검푸른 색의 하늘이 다가온다. 거의 매일 보는 그 풍경은 날마다 한순간 나를 멈추고 그 자리에서 내 시선을 전부 빼앗는다. 그렇게 잠시 빼앗긴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일몰이라는 무대의 주인공 태양이 보인다.
일몰임에도 마지막까지 온누리를 밝게 비추는데 자신의 힘을 쥐어짜는 태양의 모습에서는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그 숭고함은 너무나 높아 인간이 도달할 수 없기에 힘을 다 쓰고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미약한 인간의 눈으로는 직접 바라보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안간힘을 쓰고 살짝 훔쳐보면 노란빛에 가까웠던 원형의 태양이 점점 붉은색이 되어 바다 저편으로 넘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바다에 가까워져서는 바다마저 붉게 물들이며 하늘과 바다를 모두 뒤덮는 자신의 힘을 자랑한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바다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물론, 다음날의 태양은 더 강렬한 모습으로 등장할 것을 알고는 있지만 일몰 이후의 온 세상이 암흑의 장막으로 뒤덮이는 그 시간이 아쉬워 그 퇴장은 더욱 슬프기만 하다.
분홍빛과 무지개색의 하늘, 강렬한 붉은색의 태양은 사실 아주 평범한 일상일 뿐이다. 매일 보는 풍경, 어쩌면 쉽게 지나칠 그런 한 장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제는 오늘과 같지 않고 오늘은 내일과 같지 않다. 다 똑같은 소재일지라도 그 장면은 다 다를지 모른다. 아니 장면이 똑같더라도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와 미래의 나는 다르기 때문에 그 장면들을 모두 다르게 볼 것이다. 결국 곁에 어떤 아름다움이 있더라도 그것은 나의 인식에 달린 일이다. 좋을 리 없는 군생활의 아름다움을 찾는 것은 모두 자신에 달린 일이다. 노을이 지는 일몰의 장면의 아름다움에서 하루 마지막의 안식을 찾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