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일상-벌레들

by baekja

이미 자대를 신청할 때부터 벌레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벌레들의 가장 큰 천적인 사람 사는 곳이기에 얼마나 많겠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 고등학교를 산골에서 나와서 3년 내내 벌레들과 함께 보냈던 걸 생각하면 그렇게 기겁할 것이라는 생각도 별로 들지 않았다. 하지만, 늘 자연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 이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자연을 경험한 나는 헛웃음을 하며 씁쓸한 미소를 짓고 1년 째 벌레들과 동거 중이다.


자대에 들어온 첫날밤부터 내 눈에 띈 벌레는 내가 과연 자대를 잘 고른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했다. 짙은 검푸른 색 몸통에 눈에 확 띄는 강렬한 주황색의 다리가 다수 달려있던 그것은 지네였다. 꼼지락대며 생활관을 가로지르는 지네를 보며 다른 선임과 동기들은 저거 독 있는 것이라며 위험하다고 당황해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는 개의치 않고 뚜벅뚜벅 다가가 속도는 절대 빠르지 않은 그 벌레를 그냥 사뿐히 지르밟았다. 그리고 꿈틀대는 것을 한 번 더 지르밟았다. 투명한 피를 내뿜고 비명 하나 지르지 못한 채 결국 그 미물은 천적에게 숨을 거두고 말았다. 불쌍하긴 했지만, 침대 옆에 지네가 나올 생각을 하니 끔찍해서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이때 본 지네도 꽤 큰 게 아닌가 싶었는데, 사실 그 녀석은 새끼에 가까웠다.


신병 보호 기간에 주임원사실에 있을 때 본 15cm이상 쯤 되는 지네는 충격 그 자체였고, 가끔 근무 들어갈 때 죽어 있는 지네들은 시체 임에도 그 크기에 온몸에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순찰 끝나고 돌아가던 길에 내 발 옆을 스쳐 지나가던 지네는 그 길이가 순간적으로 뱀으로 보일 정도로 길어 나를 그 자리에 얼게 만들었었다. 사실상 벌레들의 최종 보스 격인 지네는 그 길고기 몸통과 수많은 다리로 보는 것만으로도 나를 힘들게 하지만, 얘보다 더 나를 끔찍하게 만드는 벌레는 따로 있다.


한국말로는 돈벌레라 불리는 통칭 ‘그리마’는 집에서 나오면 돈을 가져다준다고 하는 익충이다. 바퀴벌레와 같은 해충들은 주 먹이로 삼고 사는 이 벌레 덕에 놀랍게도 각종 벌레가 많은 백령도에서 바퀴벌레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문제는 다른 벌레들이 하나 둘씩 들어가는 가을이 되면 따뜻한 군견반 사무실로 이 녀석들이 모여든다. 그러면 눈에 보이는 것만 10마리가 넘는 그리마들이 벽에 붙어 있는 광경을 보며 질려버린다. 하하하하하. 너무 많아 다 잡을 생각조차 못하고 내 이동 동선에 있는 것만 한두 마리 잡는다. 예전에는 휴지에 고이 싸서 잡던 것을 이제는 귀찮아서 발로 잡거나 손으로 눌러 잡아버린다. 지네처럼 위험한 것도 아니고 껍질이 단단한 것도 아니기에 쉽게 잡힌다. 손으로 눌러 잡을 때는, 뿌직. 뿌각. 하는 느낌이 내 손가락 끝의 말초신경으로부터 뇌의 뉴런까지 올라온 후 다시 온몸으로 전해져 선호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귀찮은 탓에 그렇게 되어버렸다. 익충이지만 나에게 불행을 주는 존재는 이 녀석 뿐만이 아니다.


다리 8개. 작은 몸에서 뽑아내는 실. 집짓기의 달인. 무엇이 생각나는가? 우리의 친구 거미다. 거미줄에 달라붙은 모기, 파리 온갖 벌레들을 잡아먹고 사는 이 녀석은 진짜 대단하다. 순찰 돌 때마다 5개씩은 집을 철거하는 것 같은데, 다음 날 되면 똑같은 곳에 또 만들어 놓는다. 철조망은 그들에겐 집짓기 좋은 환경일 뿐이다. 어두운 밤이 지나고 해가 내리쬐는 아침이 되면 정문에서 보이는 철조망에 걸린 대형 거미줄만 5개가 넘게 있기도 하다. 그 많은 거미줄엔 다른 벌레들이 꽤 붙어있으며, 가끔 정말 운이 좋다면 거미가 자신의 배에서 실을 자아내서 그 벌레들을 감아 보관하거나 먹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가끔 멍 때리고 지켜보다 보면 그 자연의 신비에 홀려 그저 쳐다보고 있게 된다. 이런 거미에게 잡아먹히는 것은 흔한 모기나 파리 혹은 나방도 많지만, 딱정벌레류도 다수 있다.


그냥 딱정벌레부터 노린재, 하늘소, 바구미 등 다양한 벌레들을 보유한 우리나라의 최서북단의 백령도는 어렸을 때 곤충사전에서만 보던 다양한 벌레들을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신기했던 건 단연코 길앞잡이였다. 말만으로도 생소한 이 벌레는 푸른색에 화려한 문양이 생겨진 등껍질을 가진 아주 예쁜 벌레다. 그 이름은 사람들이 산길을 걸을 때면 나타나 길을 앞서 도망가는 특성 때문에 붙은 것이다. 순찰 돌 때면 이 상황을 체험할 수 있는데 오르막길을 올라갈 때 앞에서 마치 따라오라는 듯이 먼저 깡충깡충 앞으로 뛰어가는 그 모습이 정말 신기하다. 강렬한 햇빛이 내리쬐는 날이면 등이 더 반짝거려 모든 벌레로부터 시선을 다 강탈해가는 벌레계의 멋쟁이이기도 하다. 이런 아름다움을 지닌 건 길앞잡이뿐만이 아니다.


나풀나풀 날아다니는 나비는 그 모습만으로도 우아함을 자아내며,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의 가치를 잘 나타내는 날개의 색깔은 하얀색이든 노란색이든 호랑무늬이든 힘든 순찰 중에도 고개를 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그 유려한 비행을 가만히 살펴보고 있는 중에는 마치 꿈속의 한 장면을 보는 느낌을 주어 내가 나비인데 사람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게 단 한 순간 내 시선을 다 빼앗아버리고 천천히 푸른 하늘로 사라져 아름다움은 일순간이라는 듯이 여운을 남긴다. 이런 일순간의 아름다움으로 나를 매혹하는 것은 낮이 아니라 밤에도 있다.


가을밤에 정말 가끔 운이 좋은 날이면 풀숲 사이에서 도깨비불 같은 것이 날아다닌다. 그 빛은 작고 미약하지만 어두운 밤에는 그 황록색 빛이 날아다니는 순간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 군생활 아니 내 인생을 통틀어 단 한 번 보았던 그것은 한국에서는 주된 서식지인 무주의 남대천 일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름마저 예쁜 반딧불이이다. 개똥벌레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그 벌레는 낮에는 습기가 많은 어두운 곳에 서식하고 있어 찾기 힘들다. 하지만 밤이 되면 은은한 빛을 내며 그 존재를 드러낸다. 조용한 어두운 밤의 유일한 희망처럼 주변을 조금이지만 확실하게 밝힌다. 그 벌레를 처음 본 밤은 밤하늘에선 별들이 쏟아지고 있었고 풀숲에선 황록색의 빛이 그에 호응하며 하늘과 땅을 잇고 있었다. 은하수를 이어 견우와 직녀를 이어주었다는 오작교처럼 칠흑의 밤을 가로질러 빛의 다리가 놓아지는 그 광경을 난 아직도 잊지 못한다.


위의 벌레들 말고도 내가 같이 사는 벌레들은 너무나 많다. 견사 근처의 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파리. 언제든 나에게 달려와서 내 피를 뽑아가는 모기. 초소 옆에서 땅을 열심히 파던 땅강아지. 벽 곳곳에 붙어있는 나방, 여름이 지나갈 무렵 곳곳에서 날뛰는 메뚜기, 여치, 방아깨비. 가끔 전투복에 붙어 떨어지기 싫어하는 무당벌레. 도시에선 한 마리 보기조차 힘들지만, 매일매일 내 눈에 한 번 보여야 직성이 풀리는 사슴벌레. 성충이 되기 전 살기 위해 꼼지락거리는 애벌레. 벌레들의 왕 사마귀. 그 사마귀를 내부에서 조종하는 연가시. 징그러운 것, 나에게 해를 끼치는 것, 아름다운 것,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 등 다양하다. 흔히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은 쓸 데 없는 것을 만든 적이 없다고 한다. 하나하나가 생명이고 지구를 구성하는 일원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피를 빨다 죽는 모기나 징그러워서 죽는 지네나 그리마, 그리고 집이 맨날 철거당하는 거미들에게는 미안할 뿐이다. 자기들의 삶을 계속했을 뿐인데 죽었으니까. 사실 다음에도 이 녀석들을 죽이지 않겠다는 다짐은 못하겠다. 그래도 최소 나와 군생활을 함께하는 동지들인 만큼 최소 애도와 추모의 뜻은 밝혀야겠다. 미안하고, 앞으로 더 미안할지도 모르겠지만 내 추억의 일부가 되어줘서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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