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로 자대를 쓰겠다고 마음을 굳히기 전에 내 훈련소 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 가장 선망하는 자대는 강릉의 비행단이었다. 바다가 보인다는 그 비행단은 수평선이 보이는 바다를 보며 경비 근무를 할 수 있는 최고의 근무지로 생각되었다. 나중에 백령도로 자대를 바꾸게 된 이유 중에 하나도 ‘부대에서 바다가 잘 보이지 않을까?’였다. 그리고 훈련소를 나와 인천항을 거쳐 안개 속에서 배를 타고 백령도에 도착하고 나서 부대 위치가 바다에 가깝다는 걸 알고 만족해했다.
태어난 곳은 서울이요, 자라난 것은 오산, 그 후에 고등학교는 공주의 산골에서 3년. 내 짧은 20 여년 인생의 거주지는 모두 내륙이었다. 그러다보니 바다에 대한 선망은 이미 마음속에 흘러넘치고 있었다. 처음 바다를 바라보는 게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초등학교 언젠가의 여름 휴가였다. 신안의 어떤 섬으로 갔던 그 때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며 바라보았던 작열하는 태양 아래의 수평선은 어린 나의 마음을 뺏기에 충분했다.
그 후에 기억하는 바다는 울릉도까지 가는 바다였다. 중학교 2학년의 여름의 어느 날 바다는 마치 누구한테 약이라도 오른 듯이 마구잡이로 화를 내고 있었고, 그 분노에서 내가 타고 있던 쾌속 여객선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여객선이 롤러코스터처럼 위 아래로 흔들린지 3시간 30분, 울릉도에 도착한 나는 처음으로 바다에 대해 기분 나쁜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인지 내 인생 처음으로 울릉도에서 본 에메랄드빛 바닷물은 그저 색감의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이었을 뿐 뭔가 깊게 느끼지는 못했다. 몇 달 후에 갔던 제주도에서도 바다의 인상보다는 폭포에 대한 인상이 깊게 남아 바다는 내 기억 속에 서서히 잊혀 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바다, 그 중에서도 밤바다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게 된 건 친구들과 같이 갔던 여수 여행에서였다. 그렇게 버스커버스커의 노래에서 들려나오는 여수의 밤바다가 궁금해서 더 이상 견디기 못하던 차였다.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의 여수 밤바다는 노래를 통해 느꼈던 감각과는 많이 달랐다. 불빛이 가득했고 밤바다에도 온갖 휘황찬란한 인간의 조명들이 비춰 까만 빈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버스킹하는 사람들로 넘쳐나 그 ‘여수 밤바다’라는 노래만 몇 번이고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과는 거리가 먼 풍경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런 어지러움들이 어우러져 온갖 잡음을 만들어 내어도 그 까만 밤바다는 고요했다. 늘 그 자리에 있어왔고 있을 것이라는 것처럼. 그런 아련함이 좋았다.
그걸 잊지 못해 이번엔 부산으로 갔다. 며칠 후에 혼자 갔던 부산 여행에서 내가 보려고 선택한 밤바다는 광안리 앞바다였다. 광안대교가 찬란히 빛나고 양 옆의 카페들과 온갖 숙박업소들이 불을 밝히는 여름의 광안리는 여수와 똑같이 시끄러웠다. 맥주 한 캔을 따서 시끄럽게 놀고 있는 관광객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아 광안대교와 파도가 밀려오는 밤바다를 보고 있자니 외로움이 밀려왔다. 그날 낮에 감천문화마을에서도 보수동 책방골목에서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외로움이었다. 당황했다. 너무나 쓸쓸해서 맥주조차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았다. 즐겁게 노는 관광객 무리와 대비되어서 였을까? 아니면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광안대교와 광안리 해안에 비해 내가 너무 초라해보여서 였을까? 알 수 없는 외로움과 쓸쓸함을 견디지 못하고 의문점을 가진 채로 그렇게 그 여행을 끝냈다.
군대 오기 전 마지막으로 본 바다는 제주도의 바다였다. 관덕정에서 용두암을 거쳐 이호테우 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해안 올레길을 따라 혼자 본 바다였다. 용두암 앞에서는 현무암의 용틀임에 감탄하고 그 앞에서 치는 파도의 힘에 놀라며 계속 걸었다. 용천수 우물터와 소원을 비는 탑을 보며 신기해했지만 역시 가장 인상 깊은 건 바다였다. 낮에 맑은 하늘아래 이 세상 끝까지 펼쳐 있을 것 같은 장쾌함을 주던 바다는 해가 지기 시작하자 조금씩 붉어지는 하늘과 더불어 붉은 원의 해를 강렬하게 반사시켜 내 눈에 비추어주었다. 그렇게 계속 걷다 보니 이호테우 해수욕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겨울의 짧은 해가 진 후였다. 말 모양의 등대가 인상적이었던 해안은 여태껏 내가 경험했던 바다 중 주변이 가장 조용했다. 반짝이는 네온 사인은 거의 없고 편의점이 작은 불빛만이 있으며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 하나 없는 그런 고요한 곳이었다. 거기에 이르러서야 밤바다가 참 아름답다는 걸, 버스커버스커가 노래하고 싶었던 밤바다는 이런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모래밭에 풀썩 앉아 조금씩 밀려오는 파도의 노래를 들으며 편안히 앉아있다 보니 마음속에 평화가 여기에 있음을, 이걸 보기 위해 내가 바다를 그렇게 찾아 왔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부대에 들어왔다. 그리고 처음 보게 된 바다는 제주도에서 받았던 느낌을 비슷하게 주었다. 낮에 가슴을 뻥 뚫어버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바다는 밤하늘과 더불어 내가 불안정하던 신병 시절 나를 안정시켜주는 것 중 하나였다. 며칠 후 근무에 투입되고 나서 처음 본 밤바다는 나를 당황시켰다. 분단되어있는 상황을 대변하듯 어두운 북한과 남한의 땅이 아닌 서쪽의 어딘가에서 밝은 불빛들이 제주도에서 봤던 것처럼 고요해야만 하는 바다를 흐리고 있었다. 그것이 중국 어선들임을 알게 되고 나서 얼마나 허탈했는지 모른다. 맨날 뉴스에서만 보던 남획 어선들의 일부라는 생각이 내 감상을 망친 것에 더해져 기분이 나빠졌다. 그러면서 이 밤에도 저렇게 남획을 하는 중국의 어선들 때문에 고생을 하시는 해경분들에게 감사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고요한 밤바다의 적막을 깨트리는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다. 토르의 망치에서 튀어나온 불빛, 또는 제우스의 창으로 불리는 번개는 신들이 남획을 통해 생태계를 망가뜨리는 인간들에게 내리는 신들의 벌이다. 신들의 벌이라지만 여러 갈래로 나눠지며 바다에 떨어지는 순간의 불꽃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시꺼먼 밤바다에 떨어지는 유일한 빛. 이렇게 사람을 매혹시키지만 사람의 전자 장비들을 박살내어 쓰지 못할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 그 아이러니함에 더욱 끌리는 건 아마 나뿐만이 아닐 것 같다.
이렇게 인간의 불빛과 신의 천벌이 없는 날이면 맑은 밤하늘에 달이 그 은은한 빛을 온누리에 비치며 등장한다. 잔잔한 밤바다에 달이 비추는 그때의 정취는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다. 차가운 푸른색을 머금은 하얀 달빛이 검은 바닷물에 살포시 내려앉으면 잔잔하게 일렁이는 파도가 이를 실어와 내 마음에 전한다. 마냥 차갑고 도도할 것만 같은 이 달빛은 바다를 거쳐 희석되어 내 마음에 아프게 닿지 않는다. 혼자 밖에 없는 것 같은 끝이 보이지 않는 그 기나긴 밤에서 나만 혼자 있지 않음을 알려주는 그 달빛은 내 마음을 위로하는 것에까지 이른다. 그리고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 트럭 소리가 들리지 않는 달과 밤바다는 나에게 부대에서 쉽게 얻을 수 없는 마음의 평화마저 주어 지친 일상에 휴식을 선사한다.
달빛마저 사라진 날이면 이제 조용해진 시각(視覺)에 청각이 민감하게 작용한다. 그러면 밤바다가 나에게 걸어오는 조그마한 말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 부대까지 들리는 파도소리의 그 고요한 규칙성은 밤의 유일한 적막을 깨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소리이기에 귀를 안 기울이고는 배길 수 없다. 이 소리가 들려오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밤바다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 때 일어나는 청각과 시각의 조화는 더 이상 어떠한 생각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면 이 아름다움에 빠져 나는 원래라면 느꼈을지도 모르는 외로움을 잊는다. 쓸쓸함은 더욱 없다. 오히려 차갑고 어두운 밤에 느껴야 할 마음의 공허함마저 사라지고 잠시 군대의 일상에서 잊고 있었던 아련한 감정들을 불러일으켜 따뜻한 무언가를 내 마음에 남긴다.
바다는 보는 시간, 공간에 따라 내가 각기 다른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그 중에서도 밤바다를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조용하고 고요한 명상적인 밤바다의 특성 때문이다. 이는 어느 때에는 외로움을, 어떤 때에는 아련함을, 어떤 때에는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준다. 자연의 변화에 의해 밤바다는 다른 모습을 취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개발로 인해 각기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각기 다른 모습을 보고 느끼는 내 감정들은 모두 소중했으며, 잊을 수 없는 것들이다. 아직 내가 못 가본 밤바다는 너무나 많기에 내가 느낄 경험과 감정들은 더 다양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 또 밤바다를 찾아갈 것이고, 가만히 앉아 밤바다를 바라볼 것이며, 이 경험을 평생 반복하며 좋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