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위치는 인천에서 230km, 중국에서 180km, 북한에서 13km 떨어진 서해 5도에서도 가장 남한과 멀리 떨어진 위도 상으로 개성보다 위인 백령도다. 무려 1지망으로 이 최전방의 머나먼 섬에 온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휴가를 많이 준다는 말에 혹해서였고, 또 다른 하나는 인생 살면서 공짜로 백령도를 가볼 일이 몇 번이나 되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처음 부대로 들어올 땐 항이 안개로 뒤덮여 있었고, 부대까지 가는 길은 마치 알 수 없는 미로를 따라 움직이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부대는 항 근처는 아니지만, 해안가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 바다 내음을 풍기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이런 첫인상을 뒤로 하고 그저 부대에 적응을 하며 지낸 지 한 달이 지나자 근무에 투입되었고, 야간에도 밖에 서서 멍을 때리고 서있는 일이 잦아지자 군생활이 그리 쉽지 않음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쳐다 본 밤하늘을 보자 할 말을 잃었다. 무수한 작은 점들에서 쏟아져 내리는 빛의 비가 내 눈을 두드렸고, 인생 처음 겪는 시각적 충격에 고개를 꺾은 채 몇 시간인지 모를 시간을 별을 보며 있었다. 검은 캔버스 위에 검은색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너무나 많은 빛들이 비추어 아름다우면서도 어지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인생 처음으로 북두칠성을 찾아내고 오리온자리의 삼태성을 찾아가며 별들이 참 많다는 생각과 함께 이 멋진 밤하늘을 이제야 알게 된 내 자신에게 너무 미안해졌다. 별자리를 잘 알지도 못하고 별에 대한 내용들은 잘 알지 못하지만, 과거에 사람들은 이런 밤하늘을 보면서 자랐기에 별에 신화를 대입하고 별자리라는 도상을 대입하면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다는 생각에 부러움도 생겨났다.
별들을 보면서 야간 근무의 맛과 재미를 알게 될 때쯤 희미하지만 아름다운 흰색의 어떤 두꺼운 무언가가 밤하늘의 빈 공간을 더 채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저게 뭘까 고민했지만, 이내 은하수인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잭슨 폴록의 드립 페인팅보다 강렬한 느낌을 주며 밤하늘의 화폭의 한 면을 채우는 거대한 구름 덩어리는 흩뿌려진 액체와 비슷해 ‘Milky Way’라는 서양식 이름과 ‘미리내’라는 순우리말의 이름에 걸맞은 형상임을 알 수 있었다. 별들이라는 점들이 모여 은하수라는 하나의 개체에서 뿜어내는 빛은 점묘법을 만들어내어 색의 분리된 점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더 큰 시각적 효과를 이끌어내려 했던 쇠라의 이상향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더운 여름이 지나고 밤하늘을 가로지르던 은하수가 희미해질 때쯤 내 보직은 야간 순찰을 도는 것으로 바뀌었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부대 구석구석을 순찰하는 일은 매우 무서워 “과연 이 보직을 맡은 게 잘한 일인가?”라는 생각도 종종 했다. 하지만, 가을날 청명한 하늘에 보름달이 뜨면 어두운 구석구석에서 시각적으로 ‘무’에 가깝던 생물들이 그 빛을 받아 다시 은은한 빛들을 반사시키며 그 형태를 드러내어 나의 공포감을 덜어주고 마음의 안정을 조금이나마 주었다. 이런 날 밤하늘은 검은색에서 짙은 파란색으로 캔버스의 색깔마저 바뀌는데 이렇게 강렬한 빛 때문에 대부분의 별들은 힘을 잃고 달빛 속으로 사라진다. 이런 밤의 제왕도 사실 항상 이렇게 강렬한 건 아니다. 반쪽이 되었다가 어떨 때는 아예 사라지기도 한다. 이렇게 달이 사라지기도하기에 우리는 더 많은 별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며 매일 달라지는 밤하늘의 풍경에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된다. 이것뿐 아니라 구름이 많이 끼어있는 날은 구름 속에서 홀로 고고히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며 가끔을 빨간색, 파란색으로 변하는 등 변화무쌍한 밤하늘을 보여주어 늘 새로운 감상을 준다.
매일 변하는 밤하늘 속에서 달보다 보기 힘든 더 규칙적이지 못한, 아주 보기 힘든 무언가도 가끔 눈에 띈다. 잘 눈에 띄지 않기에 예로부터 자신의 소원을 비는 것으로 사용하거나, 그 떨어지는 모습으로 인해 누군가의 안 좋은 일을 암시하기도 했던 별똥별은 이 깨끗한 백령도의 밤하늘에서도 보기 힘든 존재다. 이 별똥별도 실제로 본 건 백령도에서 처음인데 ‘유성流星’이라는 한자 이름처럼 빠르게 흘러가 버린다. 소원을 빌 시간조차 주지 않고 그저 반짝하며 밤하늘에 한 획을 긋고 사라져버린다. 마치 인생의 덧없음을 표현하는 듯 미련 없이 사라져버리는 이 별똥별은 밤하늘을 늘 지키고 있는 별들과는 달리 영원성은 없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단 1초도 안 되는 한순간에 볼 수 있는 것이기에 더 희소한 가치를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자신들의 소망을 그 별똥별을 향해 맡기는 게 아닐까?
밤하늘의 캔버스는 이렇게 많은 요소들이 어우러져 아름답지만, 사실을 알게 되면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다. 빛을 내는 암석덩어리들의 조합과 불에 타 사라져버리는 암석덩어리가 눈에 보였다 사라지는 과학적 사실은 위에 느꼈던 별들에 대한 아름다움을 반감시켜버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감성은 밤하늘 위를 수놓은 빛들의 집합에 쏠린다. 이 별들을 보면서 반 고흐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나를 꿈꾸게 한다. 그럴 때 묻곤 하지. 왜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게 가듯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게 갈 수 없는 것일까?” 지금 도시는 인공의 빛으로 가득해 별을 보기 쉽지 않지만, 만약 발견한다면 잠시 멈춰서 바라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며 꿈을 꿔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