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월요일 그러니까 배를 타고 부대로 들어올 때의 일이다. 근래 들어 배가 심하게 요동치지 않을 경우 뱃멀미를 하지 않던 나는 멀미약을 먹지 않고 배를 탔다. 하지만, 내가 몰랐던 2.5m 높이의 파도가 바다에서는 요동치고 있었고 간만에 잠도 잘 잔 나로서는 멀미를 피해 잠자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결국 파도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배는 단 10분 만에 나를 화장실로 이끌었고 신나게 그리고 맛있게 먹은 아침을 다 토해냈다. 그렇게 아침에 본 밥알들과의 감동적인 재회를 뒤로 하고 육지에 도착한 나는 땅이 어머니라는 가이아 신앙에 동참할 수 있을 정도로 육지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당연히 배가 흔들릴 수 있는데 왜 멀미약을 먹지 않았냐고 묻겠지만 ‘멀미 하지도 않을 텐데.’라는 안일한 생각과 전에 배를 탔을 때 단 한 번도 배가 요동친 경험이 없었던 것이 어우러져 완전히 오판을 하고야 말았다. 사실 이번 휴가 전까지 단 한 번도 파도가 셀 때 배를 탄 적이 없었다. 모두 안개 대기 없이 아침 배가 떴고, 파도조차 낮아 수평선 위로 보이는 따사로운 햇살은 항상 배에서의 내 잠을 방해하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렇게 평온한 바다를 늘 다니던 나는 크게 쓴맛을 봐버렸고 이제 다시는 바다를 만만히 보지는 못할 것 같다.
백령도에 온지 14개월이 넘어가는 지금, 바다를 처음 볼 때 느꼈던 낭만과는 거리가 멀어져 휴가를 나가는 배가 뜰 수 있는 지 없는지에만 거의 연관을 시켜 바다를 보고 있다. 수평선이고 가까운 앞바다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하는 해무가 잔뜩 내려앉거나 멀리서도 파도가 강력한 힘으로 섬을 때리는 것을 보면 오늘은 배가 뜨지 않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렇게 바라보는 바다는 우리에게 오고 가는 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길이란 것은 탈것 또는 생물들이 일정하게 다니는 어느 정도 넓이의 공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다는 육지의 길에 비해 썩 좋지 못하다. 요즘 길은 아스팔트라는 신식 물질로 깔끔하게 포장되어 예전의 흙길보다 훨씬 안정감이 있다. 이런 길은 자동차나 사람이 다니기에 너무나 편리하다. 일정하게 다닐 수 있다는 의미에서 바다보다 훨씬 좋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길은 크게 변하지 않으니까. 곧게 뻗은 그 길 그대로 있어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동차를 타고 사람들이 움직일 수 있게 한다.
석유 찌꺼기로 만들어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이 정 없지만 편리한 길 말고도 우리가 다니는 길엔 흙과 자갈들이 이어진 흔히 말하는 비포장도로가 있다. 이 길도 사람이 밟고 차가 다니는 것이 지속되면서 길의 의미를 가지게 된 공간으로 다소 간의 흔들림은 있지만 여전히 기후에 따라 크게 변치 않고 다닐 수 있는 길이다. 우리는 이런 길을 걸을 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좀 더 가까워진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안개와 어우러진 이 길의 모습은 친근함과 신비로움이 어우러진 알 수 없는 기분을 자아내며, 비 올 때 조그만 웅덩이를 걸으며 들리는 찰박찰박 소리는 우리에게 동심으로 돌아간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별 지구의 70% 바다이고, 육지의 모든 곳이 전부 이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바닷길을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위의 경우처럼 기후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고 길이 끊겼다가 열리기 십상인 이 길은 길이라는 의미에서는 썩 좋지는 않아 보인다. 또한, 평탄한 대로와는 달리 언제 요동쳐 우리를 집어 삼킬지 모르는 위험성도 가지고 있다.
이런 위험성과는 달리 바닷길은 분명히 장점도 지니고 있다. 그 앞에 보이는 넓게 펼쳐진 우리의 맘을 탁 트이게 한다. 배를 타고 가며 보이는 알 수 없는 수평선의 끝은 우리가 돌아다닐 수 있는 길이 저렇게 넓음을 보여준다. 거기에 선으로 정형화되지 않아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바닷길은 여행에서 느끼는 자유로움을 더해준다. 그리고 바닷길은 가장 많은 물류와 사람을 나를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물에 가라앉지 않도록 신이 부여한 부력이라는 힘은 다수 물체를 힘들이지 않고 띄울 수 있도록 돕고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배로 더 많은 교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장점들이 있지만 휴가를 나갈 때 통제될 때마다 우리 부대가 육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들어올 때 통제가 된다면 근무를 하루 덜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또, 4시간 동안 시속 70km의 대형 배를 언제쯤 타볼 수 있겠는가. 저 멀리 중국 앞바다까지 뻗어나가 태평양을 거쳐 인도양까지 나아가는 서해의 모습을 이렇게 많이 그 품 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때가 얼마나 되겠는가. 늘 우리는 변하지 않고 일정한 길을 원할지 모른다. 그렇기에 나 자신도 이 부대가 육지이기를 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변화무쌍하기에 더 경험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바닷길을 마냥 미워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휴가 나갈 때는 얌전한 바닷길을 다니고 싶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