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로 “세상이 잿빛으로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대부분 인물들의 마음이 황폐해 지거나 견딜 수 없는 절망, 슬픔이 찾아왔을 때 인물의 심경을 표현하는 말로 자주 쓰인다. 사실 이 말에 대해 이해는 할 수 있었지만 공감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늘 내가 보는 세상은 색으로 가득했고 망막에 맺히는 상은 다양함 그 자체였다. 과연 잿빛으로 보인다는 것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정신적으로 크게 피해를 받는다고 해서 하늘이 푸른빛이고 나뭇잎이 초록빛이며 노을 지는 하늘이 빨간빛인 것은 변하지 않았다. 늘 그래왔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밤하늘의 까만 공간 속에서 각자의 공간에서 홀로 고고히 빛나는 별들은 늘 밝은 빛을 내며 이 세상이 잿빛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가끔 다치면 흘러나오는 피는 붉었고 나와 얼굴을 맞대며 사는 사람들의 얼굴은 살구색이었다. 가끔 먹구름이 끼면 하늘이 잿빛이 되기도 했지만 이때의 느낌은 하늘이 잿빛으로 보일지언정 모든 세상이 잿빛으로 보인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이번 주도 그랬다. 하늘은 늘 청명하며 옅은 푸른색을 띄고 있었고 구름은 하얬으며 나뭇잎들은 서서히 단풍이 들어가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번 주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내 업무는 달랐다. 휴가 전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유튜브나 보면서 바보처럼 시간을 적당히 때우다보면 휴가를 갈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그저 시간을 보내던 나는 업무시간에 큰 위기에 직면했다. ‘주어진 일만 다 하자.’며 군생활을 보내던 나에게 불시에 닥친 업무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난 아주 불쾌한 무언가다. 그리고 그것이 어려운 것이라면 더욱 더 불쾌하다.
갑자기 후임 한 명이 아파 급하게 근무를 바꾸게 되었는데 이것은 별 문제가 아니었다. 근무를 바꾸는 것쯤이야 짧게는 십 분에서 길어야 이십 분이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여기에 걸린 문제가 너무 많았다. 각종 훈련을 필수적으로 받아야하는 사람을 분배해야 했으니까. 그러나보니 머리가 터지기 시작했고 스트레스는 쌓였으며 삼십 분 만에 나온 근무표도 다시 수정해야했다. 쨌든 한 시간 이상의 길고 긴 사투 끝에 업무를 끝냈고 이외에 군견과 순찰 업무까지 해야 했기에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문제는 다음 날 터졌다.
정말 싫어하는 후임이 자신이 체력검정을 받아 휴가를 제한당하는 것을 막아야한다며 사격훈련 당일이자 체력검정 전날에 근무표를 바꿔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월요일에 반장님 앞에서 다리가 안 나아서 뛸 수가 없다며 온갖 엄살을 다부리고 휴가가 잘릴 위기에 처하자 곧바로 뛸 수 있다고 말하는 꼴이라니. 쨌든 안 바꿔 줄 수 없어 바꿔주기로 하고 바꾸는 과정에서 또 고통을 받았다. 근무표가 바뀌어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고 언성이 높아졌다. 조용히 일하다 휴가나 나가려고 했던 내 입장에선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두 시간 여의 사투 끝에 근무표가 나오기는 나왔다. 하지만 그 이틀 간 내 짜증은 배가 되었으며 혼잣말로 하는 욕은 일상화가 되어 내 평온한 기분은 완전히 무너졌다.
이 짜증이 풀린 건 다음 날, 근무시간 이었다. 근무를 들어가는데 ‘그’ 후임이 힘차게 계단을 뛰어오르는 것을 보며 정말 욕밖에 안 나왔다. 그리고 헌병반을 들어가자 그 후임과 반장님이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이랬다. 저번 주까지 다리가 아파서 순찰도 못 돌겠다고 말했지만 B.X.는 잘만 가던 그 후임이 반장님께 다리가 다 나았다며 체력검정을 가고 싶다고 열심히 말하는 것이었다. 그 후임 때문에 순찰까지 혼자 돌아야 했던 나는 저번 주에 체력단련실에서 런닝 머신을 40분을 뛰던 후임을 떠올리며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런닝 머신 40분을 뛰는데 15분 정도 뛰는 체력검정을 못할 리 없습니다. 반장님.” 반장님부터 옆에 있던 모든 사람이 웃음을 터뜨렸고 그 후임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 그 통쾌함이란. 이 맛에 병장하지. 쨌든 내 짜증은 그 때 이후로 대체적으로 풀렸으며 욕도 줄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친구와 통화를 하는데 간만에 푸른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얼마 만에 푸른 하늘인지 생각하는데 근래에 날씨가 나빴던 적이 없었던 것을 생각하자 당황했다. 아마 내 자신의 피폐함으로 인해 세상을 두루 볼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딱 그 때 그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근 며칠 간 세상을 잿빛으로 보고 있었구나.’라고. 눈은 늘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있었으며 그 세상은 아마 내 머리에 이미 저장이 되어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은 그것을 인식하기에는 여유가 없었고 그저 세상을 색이 담긴 하나하나의 의미 있는 무언가가 아닌 잿빛 물체로만 인식해 형태를 파악하기에도 바빴던 것일 게다.
그렇게 생각하자 아마 내가 세상을 마냥 아름다운 곳이고 색이 넘치는 곳이라고 항상 인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업무나 그 후임이 주는 스트레스보다 더한 스트레스를 받은 적도 많았으니까. 그 때는 잿빛 세상이 아니라 아마 세상이 까맣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다만 내가 그것을 인식하고 기억할 정도의 능력마저 당시에는 없었다는 것이겠지. 이번에도 아마 가을의 높고 청명한 하늘을 올려다 볼 시간이 없었다면 아마 세상을 잿빛으로 바라보았던 그 분노에 찬 피폐했던 내 시간을 기억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스트레스를 받는 건 썩 좋은 일이라 할 수 없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보이는 아름다운 세상은 그것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준다. 그리고 그 피폐했던 과거를 다시 보여줌으로써 세상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주었다. 뭐 적어도 다른 건 몰라도 ‘세상이 잿빛으로 보인다.’라는 말이 어떤 것인지 정도는 이제 알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이 잿빛일 때, 사실 그걸 인식하기도 쉽지 않을 때, 나중에 돌아보며 과거의 그 비참한 기억을 떠올리며 표현하는 말이라는 느낌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눈으로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