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임과 TV를 볼 때의 일이다. 말도 안 되는 썰렁 개그나 치면서 당직병의 귀를 썩게 만들다가 노래가 듣고 싶어서 채널을 돌려 비긴어게인3을 틀어 보기 시작했다. 노래도 좋았지만 그 화에서 악동뮤지션의 이수현이 한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노래를 부르는 것을 꿈으로 생각하며 노력해왔는데 지금 노래를 부르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살고 있으니 자신은 꿈속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처음에 듣자마자 와 닿는 것이 있어 “와. 좋은 말이다.”라고 나직이 내뱉었다. 그리고 이내 그 말을 뱉을 수 있는 저 사람이 매우 부러워졌다. 그 후에 나직이 뱉은 말이 왠지 머쓱해서 후임에게 장난을 걸었다. “우리도 꿈속에서 살고 있는데 말이지.” 우문에 답한 후임의 현답. “남희억 병장님, 이거 꿈이면 두 번 오셔야 합니다.”
근무 시간이 일정치 않다 보니 깊은 잠을 자기 어려워 꿈을 다수 꿨지만 기억나는 군대 관련 꿈은 단 한가지다. 훈련소 첫 주, 정말로 퇴소를 하고 싶어 고민하고 고민했던 그 때 꿨던 꿈이다. 연병장 모든 훈련병들이 모여 있고 눈부신 햇살 아래 단상 옆을 부모님과 지인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늘 TV에서 봐왔던 것처럼 수료식을 마치자마자 단상에 있던 모두가 뛰어왔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깼다. 그리고 귀에 들려오는 소리 “기상. 기상. 6시 10분까지 모두 점호장으로 집합합니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끝냈던 훈련을 나는 다시 현실 속에서 받아야했다.
사실 지금에 와서는 내가 겪은 모든 일들이 꿈만 같다. 훈련소 수료식을 실제로 받고, 수료 외박을 갔다가 특기학교에 가고, 자대에 배치 받고, 일병을 달고, 첫 휴가를 나가고, 군견병으로 업무를 시작하고, 추운 겨울을 보내고, 꽃이 가득한 봄을 보내고, 무더운 여름을 버티고, 싸늘한 가을이 다시 와서 전역이 점점 보이기 시작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꿈만 같다. 과거에 살아왔고 미래에 살 나의 삶에 다시없을 경험이라고 생각하면 이 모든 경험이 다 꿈만 같다.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릴 꿈.
그럼에도 현재 나는 부대에 있다. 모자가 날아갈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세차게 불고 그 바람에 몸이 시린 감각은 꿈이 아니다.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별들과 온누리를 은은하게 비추는 달이 보여주는 풍경도 꿈이 아니다. 헬기가 날아다니는 시끄러운 소리와 개들이 짖는 큰소리도 꿈이 아니다. 그리고 사지방 연등을 해서 글을 쓰고 자고 일어나면 바로 근무에 들어가야 하는 지금 이 상황도 모두 현실이다.
그래서 꿈처럼 허투루 보낼 수 없다. 선임이나 동기, 후임과 했던 말들을 모두 기억하려 노력한다. 개를 키우면서 느끼는 개들의 특성이나 개들과의 교감을 모두 기억하려 노력한다. 바람에 실려 들리는 풀벌레 소리들을 기억하려 노력한다. 전자레인지로 데워먹는 컵라면과 냉동만두의 맛을 기억하려 노력한다. 피부에 느껴지는 햇빛의 따사로움과 바람의 시원함을 기억하려 노력한다. 수평선을 가득 메운 중국 어선들의 빛마저도 기억하려 노력한다.
모든 걸 기억할 수 없기에 글을 쓴다. 이 수많은 경험들이 그저 스쳐지나가는 꿈으로만 끝나지 않도록 글을 쓴다. 글을 써서 기록함으로써 이 수많은 꿈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빛에서 한 자리에서 영원히 빛을 내는 광원이 된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이렇듯 자기만족이다. 이 경험들이 꿈으로 잊히지 않고 과거로 남아 내가 나중에 추억으로 읽어 볼 수 있게 쓰는 것이다. 이 글을 쓴 것도, 이러한 생각을 한 것도 이 글로 남아 허상인 꿈으로 끝나지 않게 될 것이다. 아름다운 꿈을 전부 글로 담을 수 없겠지만 일부라도 담아내면 나중에 이는 나의 과거, 역사가 되어 내가 한 발 앞으로 내딛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 확신한다. 현재의 경험을 그냥 흘려보낸다면 그저 꿈으로 흘려보내겠지만, 글로 적는다면 이 쓸모없어 보이는 군대의 경험도 내 허상인 꿈을 현재의 실체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