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일상-군견병

by baekja

아침이다. 근무가 좀 더 적은 경비병들이 아침에 나를 깨운다. 고맙다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인사하지만 워낙 피곤한 탓에 입 밖으로 말은 나오지 않는다. 시계를 보니 출근 전까지는 시간이 좀 남는다. 눈이 반쯤 떠진 상태로 간신히 알람을 맞추고 다시 잔다. 눈 깜짝할 사이 시간은 지나가고 알람시계의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깬다. 그리고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전투복을 입고 군화를 신고 출근한다.


출근하고 삼십 분은 잠 깨는 시간이다. 잠이 영 깨지 않지만 군견 관련 전달 사항을 보며 오늘 뭘 해야 할지 생각한다. 다행히 아픈 군견도 없고 까다로운 행정 업무도 없을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오늘 할 일을 생각한다. 시간이 되자 기계적으로 몸을 움직여 순찰을 돈다. 그리고 순찰에는 늘 견사 순찰이 포함되어 있다. 밥 못 먹은 배고픈 우리 귀여운 군견들이 시끄럽게 짓기 시작한다. 그리고 견사에 당도하자 나는 건 똥냄새. 아, 정말 최고다. 처음 맡을 때는 토할 뻔 했는데. 좀 적응이 된다. 그리고 밥을 좀 쥐어주고 똥도 치워주고 나면 짓던 개들이 조용해진다. 아, 물도 갈아주는 걸 깜박했다. 물이 벌컥벌컥 들이키는 모습을 뒤로하고 견사를 빠져 나온다.


근무가 끝났는데 아차, 오늘은 개 목욕 시켜주는 날이란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날이 하필 오늘이라니. 비에 다 젖으면 비에 맞는 게 무섭지 않다고 했던가. 개똥이 다 묻으면 개똥이 튀기는 게 더 이상 무섭지 않다. 털 사이사이에 밟고 뒤집어엎은 똥 조각들이 보인다. 아아. 정말 보물찾기가 따로 없다. 샴푸를 털어 양동이에 풀고 박박 씻겨주자 물 싫어하는 우리 개들이 줄행랑을 친다. 어쩔 수 없이 개들을 다리 사이에 끼우고 깨끗하게 씻긴다. 잠시나마 똥 냄새가 사라진 우리 귀여운 개들을 끌어안고 자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옆에서 목욕하는 동안 솔로 개집 바닥에 묻은 똥을 문질러 다 닦아낸 다른 병사도 땀을 닦으며 업무를 마무리한다. 제 2차 세계대전 미군 보고서에서는 군인이 전투에서 싸우는 이유는 나라도 대의도 아닌 옆의 전우를 위해 싸운다고 했다. 우리도 옆의 개똥과 전쟁을 하며 전우애를 쌓아나간다.


물론 저녁에도 밥을 줘야 한다. 아침과 똑같이 밥을 주고 물도 갈아준다. 특이사항이라면 때마다 야간순찰 하는 것이 특이사항이라 하겠다. 그러다 심심하면 군견 제식을 좀 한다. 앉아. 엎드려. 넘어. 말을 엄청 잘 듣는다. 칭찬해주며 쓰다듬어주면 발라당 누워 애교를 부린다. 귀엽다. ‘아마 모든 고생은 이렇게 보상 받는 거겠지.’라고 생각하며 이제 좀 쉬러간다. 그 후의 야간에는 별 거 없다. 군견이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 확인하고 똥을 쌌으면 치워주는 정도다. 그리고 얼마간의 하루 업무를 마무리하는 새벽이 되면 하루 있었던 일을 정리해서 문서에 적는다. 그럼 군견병의 하루는 끝이 난다.


작년 이맘때쯤부터 근 1년 간 내 일상은 이것에서 크게 벗어날 것도 달라질 것도 없었다. 정말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이다. 가끔 개가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이 내 일상에서 가장 큰 변화들 중에 하나였을 정도니까. 앞으로도 꽤 많은 시간을 여기에 할애해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별로 썩 기분이 좋지는 않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니까. 그럼에도 이러한 일상 속에서 개들이 점점 말을 잘 듣는다든가, 비가 와서 견사 청소를 하지 않는다든가 하는 사소한 변화들에서 기쁨을 찾아갈 수 있어서 이 지겨운 반복 근무를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이번 생애에 다시는 개를 키우지는 않겠지만, 개를 관리하며 말 안 듣는 것에 화나기도 하고 가끔은 애교부리는 것에 즐거워도 했던 이 일상은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 싶다. 과거보다 현재가 나을 수 있는 건 그런 별 것 아닌 즐거운 추억이 쌓여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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