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일상-집

by baekja

군대에 있으면 가끔 “집에 가고 싶다.”라는 말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올 때가 있다. 습관적으로 하는 건지 정말 가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한다. 동기, 후임, 선임 가리지 않고. 가끔은 간부님들도 집 가고 싶다는 말을 하신다. 군대에 있을 때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누구나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 때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쉽게 꺼낸다. 그리고 정말로 집에 가기를 원한다. 이런 것은 미술 작가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서도호라는 작가가 있다. 이 사람은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집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작품의 제재는 대부분 집이었고 집을 통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서울 집>이 있다. 서울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집을 실크로 만들어 공중에 매단 작품이다. 실크로 만들었지만 어떤 집인지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고 섬세하게 집을 재현해냈다. 이렇게까지 자신의 집을 재현해 낸 이유는 하나였을 것이다. 집에 대한 강한 그리움. 그리고 이런 그리움을 해결하기 위해 이 작품에서 작가는 소재를 실크로 사용했다. 원래는 옮겨올 수 없는 건축물인 집을 실크라는 가벼운 소재로 만들어 공중에 달아 자신의 집을 옮겨오고 싶다는 열망을 보여주고 자신의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덜고자 했던 것 같다.


서도호라는 작가가 자신의 집을 미술작품으로 표현해 내어 자신의 그리움을 덜어냈을지언정 집이라는 건축물 자체를 움직이지는 못했다. 그럼 집에는 결국 가지 못해 근본적인 집에 대한 그리움을 해결했다고는 볼 수 없다. 사전에서도 집은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럼 집은 정해져 있는 단 하나의 건축물인가? 그건 아닌 것 같다. 건축물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그 속에서 의미가 생긴다. 그냥 사람이 사는 무감정한 물질이라고 정의는 할 수 없다. 우리가 산다는 그 사실 만으로 집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내가 살고 있는 부대의 생활관을 ‘집’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겠는가? 가끔 간부님들은 이 생활관을 보고 ‘우리의 집’이라고 표현하시지만 난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렬된 침대와 그 옆에 놓인 관물대, 그리고 문 옆에 놓인 총기 보관함. 그 수많은 사람들을 좁은 공간에서 잠을 통한 휴식만 취하도록 효율적으로 만들어놓은 그 공간을 나는 집이라 부를 수 없다. 거기에서 느껴지는 것은 차가움과 그렇게 사람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외로움, 그리고 엄격함과 딱딱함이다. 온기가 느껴지는 것은 생활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나오는 웃음 말고는 없다. 집은 이런 느낌이 아니다.


그럼 집은 어떤 느낌인가.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의 시 <향수>의 일부분이다. 내가 아는 집의 느낌은 이 정도다. 왠지 모를 차분함과 평온함이 눈에 띄며 특이할 것도 크게 신경 쓸 것도 없는 일상이 계속되는 곳. 거기에 이 시를 읽었을 때 느껴지는 따뜻함, 온화함, 편안함과 아늑함까지 더해진다면 딱 내가 생각하는 집의 분위기가 그려진다.


그럼 내가 지금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 집은 과연 내가 생각하는 집일까? 경기도 오산시에 위치한 우리 집은 과연 나에게 이런 느낌을 주고 있을까? 공장에서 찍어낸 모습을 가진 아파트인 우리 집은 생각만 해도 나에게 편안함을 주기는 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막상 밤에 집에 혼자 들어갈 때 느껴지는 어두운 집의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은 그곳이 과연 내가 살고 있는 집인지 의심하게 할 만큼 낯설다. 가끔 낮에 집에 혼자 있어도 그 오싹함과 낯섦에 과연 내가 살고 있는 집인지를 의심하게 된다. 이 오산의 아파트라는 공간에 왔을 때 내가 가장 큰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곳은 언제든지 낯설고 생판 모르는 남으로 변할 수 있는 상대적인 공간이다. 그런 상대적인 공간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 사람. 가족이다.


가족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조부모, 부모, 형제자매간의 관계말고도 반려동물과의 관계가 있다. 하지만 우리 집에 반려동물은 없으므로 생략한다. 일단 아버지와 집에 둘이 있는 상상을 해본다. 어색하기 그지없다. 세대 차이가 뚜렷하게 느껴진다. 분명 아버지는 나를 키워주시는데 헌신하신 존경하는 분이지만 나와는 늘 의견이 맞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 아버지께 내가 원하고자 하는 편안함은 느끼기 쉽지 않다. 다음은 동생. 동생은 다른 친구들의 형제자매 관계를 생각해 봤을 때 아주 친한 편이다. 동생이랑 있으면 즐겁고 가끔은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는 있지만 아늑함과 같은 감정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돌고 돌아 어머니를 떠올리면 딱 그 느낌이다. 아. 더 생각해볼 것도 없이 어머니가 없는 집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그곳에 남은 것은 쓸쓸함과 낯섦, 차가움과 오싹함, 그리고 불편함뿐이다. 집을 공간으로 정의해야 한다면 나는 어머니가 계신 공간으로 정의할 것이며 공간으로 정의할 필요가 없다면 어머니라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집을 가고 싶다.’라고 내가 외치는 것은 이 각박한,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쉽지 않은 부대에서 편안함을 찾고 싶어 하는 외침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편안함은 그 어느 곳에서도 얻을 수 없다. 어머니가 없다면. 하지만 그런 편안함은 그 어느 곳에서든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만 있다면. 어머니가 계시기에 나는 수많은 역경을 넘어왔으며 지금까지 삶의 지지대를 갖고 있을 수 있었다. 결국 내가 집을 가고 싶다고 늘 되뇌는 것은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늘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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