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일상-업무와 양심 사이

by baekja

잠이 안와 잠을 제대로 못잔 채로 새벽에 근무를 하러 조금 일찍 출근했을 때의 이야기다. 일찍 출근해서 멍때리면서 잠을 깨고 있었는데 갑자기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렸다. 숨이 찰대로 찬 후임의 한 마디. “미친 개가 쫓아옵니다!” 뭔 소리인가 싶었는데 이내 군견 덩치의 한 반 정도 되는 꽤 귀여운 갈색 개가 후임을 따라 본부 건물로 들어왔다. 일단은 당황함과 동시에 이 개를 내쫓아야하기에 저음으로 나직이 위협을 줬다. 초면에 위협을 당한 개는 바로 뒤돌아 나갔지만 나가는 도중에 내가 그 외에 별 위협을 안 하는 것을 보고 돌아와 계단에 누워서 나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그냥 떠돌이개가 아님은 알 수 있었지만 그 친구가 나를 따라오는 것을 이용해서 일단 건물 밖으로 내보냈다.


그 개가 착하고 사람 잘 따르고 물지 않을 것임은 알 수 있었지만 개라는 사실 자체가 그 개를 여기 두는 데 문제가 되었다. 첫 번째 문제는 순찰을 도는 후임이 개만 보면 놀라는데다가 개를 엄청 무서워하고 개털 알레르기까지 있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문제는 이 개를 부대에서 묶어서 키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군견 순찰을 돌릴 때 확실해져 그 개가 군견과 싸움을 하려고 하는 것부터 이미 골칫덩어리였다. 세 번째 문제는 이 개가 사람을 피하지 않고 사람에게 안긴다는 것이었다. 사람에게 안길 경우 개를 내쫓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일단 순찰을 돌기 시작하자 건물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개를 보자마자 후임은 잔뜩 겁을 먹었다. 후임을 달래고 목소리로 위협하며 개를 내쫓았다. 한 10미터 간격을 두고 계속 따라왔는데 가끔은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나 후임을 비명 지르게 만들었다. 역대 순찰 중 가장 어려운 난이도의 순찰을 간신히 다 돌고 정문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개를 부대 밖으로 내쫓았지만 이내 다시 돌아왔다. 개는 나만 보면 겁먹은 채로 나가 있다가 눈치를 보며 들어오는 일을 반복했다. 결국 포기하고 일단은 개를 부대에 있게 두었다.


다음날 개는 나갈 생각이 없었지만 이미 대대장님께서는 개를 내보내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그 와중에 개는 정문 옆 철조망 사이 공간에 갇혀 구슬픈 하울링을 계속하고 있었고 군견병인 나는 그 개를 꺼내 다시 내쫓으러 갔다. 개를 꺼내 다시 내쫓기를 여러 번, 그럼에도 개는 부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 골이 아팠다. 부대에 들어오고 싶은 개와 그걸 막아야하는 나의 신경전은 다시 내내 반복되었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사람도 지치고 개도 지칠 즈음 그 개는 부대 옆 풀밭에 자리를 잡고 그냥 누워버렸다. 편히 앉아 CCTV나 볼 생각을 했던 나의 모든 계획은 무너지고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본부 건물로 돌아왔다. 그러다 갑자기 왜 내가 이것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한 선임이 해 준 충고 중 하나가 군대에서 ‘왜?’를 묻지 말라는 것이었다. ‘왜?’라고 묻기 시작하면 이 일 자체가 너무 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군대의 평범한 업무는 너무나 일상적이고 사실 일반 회사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런 일들을 하며 나라를 지키러 왔다는 애국심에 일을 하러 왔다고 말을 하자니 위에선 온갖 부조리가 보이고 아래에선 일 다 떠넘기고 자신은 쉬거나 아픈 척까지 하는 사람까지 보인다. 오죽하면 세계 제 2차 대전 미군 보고서에서 전투 때 병사들이 싸우는 이유는 나라나 이념 같은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고 했을까. 그들이 싸우는 이유는 전우 때문이었지만 뺀질거리는 전우(후임, 동기, 선임 등)를 볼 때마다 ‘정말 내가 이 일을 왜하고 있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짜증나는 상황에 갇혀 전혀 쓸데없어 보이는 일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그 일의 당위성을 찾아야했다.


다시 돌아와 나는 진지하게 개를 내쫓아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군견과 싸워 군견을 다치게 할 수 있으며 부대에 떠돌이 개가 있는 것이 외적 군기 또는 미관상 좋아 보일 리가 없기 때문에 개를 내쫓아야 했다. 업무상의 이유였다. 하지만, 난 거기서 생각을 멈추지 못했다. 분명 그 개는 길러진 개였다. 개에게서 나야하는 비릿한 냄새가 전혀 없었고 털은 잘 정리되어 있었으며 사람을 정말 기가 막히게 잘 따랐다. ‘앉아.’라는 명령어도 들을 정도였으니까. 버려졌거나 잊힌 개일 것이다. 그런 개가 더 이상 먹을 것과 사람의 온기를 구하지 못해 부대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그런 멀쩡하고 착한 개를 그저 내쫓아야만 했다. 이 얼마나 미친 짓인가. 사람이 키우다 버려서 이제는 자립할 수 없는 개를 사람이 다시 내쫓아야 한다니 그 얼마나 비극적인 일이며 사람의 오만함을 다시 보여주는 일인가. 자기와 다를 바 없는 생명체를 고작 업무상의 이유로 괴롭히고 강제해야 한다는 것은 암만 봐도 미친 짓이었다.


그 다음날 아침. 개는 여전히 계속 들어왔고 나는 계속 내쫓았다. 이제는 개도 내가 오면 등을 돌려 부대 문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 쓸쓸한 등이 내 가슴을 찢어지게 만들었다. 무엇이 저 개와 나를 갈라놓았는지 명확했지만 모호했고,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부대 밖에서 우리를 쳐다보는 개의 몸은 얼마나 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홀쭉했고 갈비뼈가 드러나 보였다. 백령도라는 지역 특성상 유기견 보호소에도 맡길 수 없었기에 그저 안타까워하다가 결국 그 연민을 참지 못하고 사료를 조금 떠다 주었다. 늘 차가웠던 그 개와의 관계에 약간 온기가 드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개를 그대로 놔둘 수 없었던 우리 부대는 다시 개를 백령도 반대쪽에 데려다 놓고 떠돌이로 만들었다. 싸늘했고 차가웠으며 어두웠다. 업무적으로는 잘 된 일이었지만 양심적으로는 생명을 제대로 보호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미웠다.


이 일을 통해서 나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서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양심으로 자신의 힘으로 선과 악을 구분해도 그를 실행할 수 없는 무력감. 군대는 최악의 장소였다. 군대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폭력을 휘두른다는 점이 양심에 걸릴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선과 악을 구분하는 양심을 군대에 있을 경우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 정말 문제일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고 나는 내 양심이 뾰족한 세모에서 닳고 닳아 동그라미가 되지는 않았는지 다시 생각해보아야 했다. 그저 남은 3개월 동안 내가 업무라는 이유로 내 양심을 더 잃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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