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누군가의 기분을 먼저 헤아리는 게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
상대가 불편해 보이면 말을 먼저 꺼냈고,
눈치를 보며 타이밍을 맞췄고,
계산대 앞에선 늘 내가 먼저 지갑을 꺼냈다.
그게 배려라고 믿었다.
상대를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모든 행동이 내 몫처럼 굳어 있었다.
한 번 해준 친절이
다음에도 해야 할 기본값이 되어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의 배려를 원한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걸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하는 순간,
그 사람은 받기만 하고,
돌아보는 법을 잊는다.
고마움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건
조용한 착취다.
배려는 원래 기꺼움에서 시작되지만,
당연함이 쌓이면 결국 부담이 된다.
누구나 자기 돈은 아깝다.
아무리 여유 있어 보여도
길에 떨어진 천 원 한 장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너를 위해 쓴 그 돈은
그만큼 너를 소중하게 여겼다는 뜻이었다.
내가 감정으로 꺼낸 자원.
내가 자발적으로 내민 마음.
그런데 너는 말했다.
“내가 언제 쓰라 그랬어?”
그 한 문장이
내 모든 선택을 강요로 바꿔버렸다.
고마워하지 않는 사람은
언젠가 더 많은 걸 원하게 된다.
배려에 익숙한 사람은
그다음 배려도, 그다음 것도 기다린다.
그러다 어느 날,
조금만 덜 해줘도
나를 ‘달라졌다’고 말한다.
배려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의 마음속엔
미안함이 없다.
그들은 상대의 감정을 ‘호의’가 아닌
습관처럼 받아들인다.
“너는 원래 그런 사람.”
그 말 아래에서,
자기 몫을 조금씩 늘려간다.
배려는 한 번 주고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줄 걸 전제로 소비되는 감정이 된다.
한 번쯤 더 낸 밥값,
한 번쯤 대신한 말 걸기—
언제부턴가
그 모든 게 내 의무가 되어 있었다.
배려는 공기가 아니다.
당연히 숨 쉬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온기다.
그걸 모르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내 공기를 나눠줄 생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