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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충이]

by 우영이

기온이 높아진 봄날 노곤함에 졸음이 몰려온다. 꾸벅꾸벅 졸다 못해 머리가 책상에 닿을 정도다. 선생님의 눈을 피해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자세를 곧추세운다. 한 시간은 견뎌냈지만 더는 한계다.


이때 학급에서 딸랑이로 통하는 녀석이 알려준 소식은 교실을 탈출하는 기분 좋은 이야기다. 1, 2학년이 읍 지역 근처 마을 뒷산으로 나들이한다는 말은 졸음을 쫓을 기회고, 친구들과 모처럼 왁자지껄 목소리를 높여 서로의 기운을 발산할 수 있기에 환호성을 지르고 복도를 뛴다.


학교에서 줄지어 걷는데 영창리를 지나 신소양에 다다랐다. 걸음걸이는 나이 든 어른이 터덜터덜 파장에 찬거리를 겨우 마련해 오는 모양새다. 산자락 아래에 도착할 즈음 그제야 오늘 행하는 임무가 무엇인지 깨닫는다. 농촌에 있다는 이유로 소나무에 성충으로 자란 송충이를 잡는 일이 우리에게 내려왔다. 산에 나무를 가꾸는 일이 우선인 시절, 소나무 병해충은 학생들의 손을 빌려 막아보려는 계산으로 우리가 선택받아 몰아넣은 꼴이다.


장갑이나 도구는커녕 산에 자라는 작은 나뭇가지를 꺾어 젓가락처럼 만들어 숲 속을 헤집고 다닌다. 가지에 긁히고 거미줄에 얼굴이 일그러진다. 소나무 가지를 한 손으로 비집고 고개를 내민다. 가느다란 털이 삐죽삐죽 돋아 보기에도 고개가 돌려지는 벌레를 집어 깡통에 담는 작업은 순탄치 않다. 여기저기에서 친구들이 송충이 몸에 돋은 잔털에 피부가 닿아 가려움으로 발갛게 긁어댄다. 동행한 선생님을 찾아가지만, 방책이 있을 리 없다. 아우성이 높아지고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냐며 목에 핏대를 올렸다.


중학교 시절 연례행사처럼 치른 야산 송충이잡이는 산림녹화라는 이름 아래 어린 우리에게는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세월은 산과 들을 온통 숲으로 둘러싸여 길을 분간하기 어렵게 달라졌다. 가끔 고향을 찾아 아픈 기억이 머물러 있는 근처를 지날 때마다 송충이잡이의 기억은 몸을 사리게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잊고 싶고 기억하기 싫은 사건이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살아가는 동안 곁을 떠나지 못하는 예도 있지 않을까. 성장기에 겪은 일은 더 오래도록 머물러 있거나 떨쳐내기가 어렵다. 자신의 생활에 매달려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지금까지 달려왔다. 어쩌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같은 마음일 것이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일에 빠진 채 가장의 역할에 충실해 온몸에 크고 작은 상처가 옹이처럼 따랐다.


그나마 회복 가능한 흉터는 다행이지만 그 반대도 종종 접한다. 흉터는 옅어질 뿐 사라지지 않는다. 과연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누릴 것 누리고 즐길 것 즐겨가면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라고 했던가. 분수에 넘치는 행동은 허황할 뿐이다.


예전과 지금은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주어진 환경과 갖추어진 조건은 비교할 정도가 못 된다. 자신의 처지에서 아래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로지 위쪽만 있다. 지난날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이 무색할 뿐이다. 살기는 편해졌으나 살아가는 것은 힘든 세상이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일어서기는 하 세월이다. 어쩌면 불가능에 가깝다. 사다리가 사라진 셈이다. 최소한의 사회보장이 뒷받침될 때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노후가 편안하게 보장받을 수 있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소득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국민연금이나 개인연금과 또 다른 공적 연금의 혜택 덕분에, 퇴직 후 주머니 사정으로 새로운 직업을 찾지 않아도 되는 이는 극소수다. 노인이 되어서도 경제활동에 뛰어들어야 하는 자체가 부담이고 안타까움이다.


즐겁게 맞이하는 일자리는 보람을 가져다준다. 몸을 움직일 수 있고 시간 활용의 측면에서 긍정적인 요소다. 그 반대의 상황은 초라한 자신이 그려질 것이다. 삼사십 년 직장생활을 해 왔는데 또다시 제2의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현실은 서글퍼진다.


두렵고 꺼려지는 일은 만들지 않아야 한다. 지난날 송충이잡이에서 맞닥뜨린 사건은 지독한 충격이다. 이제는 그런 일이 생길 수 없다. 아니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시절이 하 수상하여 그때 당한 고통을 이제는 추억으로 남겨야 할 시간이다. 아름다운 학창 시절의 긴 페이지를 채운 노트 속에 얼룩진 하루로 채워진 지난날을 접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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