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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수분]

by 우영이

대지는 싱그러움으로 활력이 솟아오른다. 꽃 색깔이 대문 앞을 차례로 바꿨다. 매화꽃은 어느새 열매를 조롱조롱 매달아 벌써 아내의 얼굴에는 웃음이 머문다.


지난겨울에 뿌린 씨앗은 늦잠이라도 잔 듯 이제야 움을 틔운다. 집안 텃밭은 보물 창고다. 겨울초는 잎을 따 식탁에 올렸다. 아내의 손맛에 갖가지 양념이 보태져 상큼하게 입맛을 돋운다. 시나브로 자란 아스파라거스는 첫 수확이다. 고급 식자재라며 아내는 두 주먹을 쥐고 환호다.


대문 밖 남새밭에는 부추가 반 뼘 정도 길이로 자랐다. 초벌은 자식도 주지 않는다고 했던가. 아기 엉덩이 넓이만큼만 잘라 식탁에 올린다. 시골에 터를 잡고 사는 동생에게서 받아 옮겨 심은 방풍나물과 산마늘 잎은 덤이다. 채식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최고의 선물이다.


부엌 옆 감나무 아래 공터에는 아욱이 자란다. 잎자락이 돌 지난 손주의 손바닥보다 작다. 서두르지 않고 순리를 따른다. 가시가 돋친 나무 두릅은 순 꺾기가 아쉬울 정도다. 조심스럽게 아래쪽 잎을 따는데 야멸차게도 손가락을 찌른다. 어느 작물 하난들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다. 자연의 도움으로 식탁이 갑자기 풍성해졌다.


애타는 마음으로 참나무 뭉치를 옮긴다. 씨균이 들어있는 나무를 받아 왔다. 지난가을에 표고버섯 몇 송이 맛본 뒤 감감무소식이다. 나무를 거꾸로 세우기도 하고 망치로 두드려 씨균을 깨우는 의식을 한다. 틈나는 대로 물을 뿌려 수분이 유지되도록 하는데 주 2회의 물세례는 부족한 낌새다. 이틀 사이에 버섯갓이 모습을 보인다. 살아 있다는 신호다.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쫄깃쫄깃한 식감이 벌써 느껴진다.


창고 옆 닭장에서 꼬꼬댁 암탉 소리가 요란하다. 청계와 토종닭 여섯 마리가 번갈아 가면서 알을 안겨준다. 수탉 세 마리는 파수꾼이다. 때 없이 울어대는 바람에 괄시를 당한다. 이른 새벽 선잠을 깨우는 탓에 불청객 취급이다. 그러면서 유정란 생산을 요구하고 있으니 욕심도 하늘이다. 닭장에는 두 개의 산란용 통이 준비되어 있다. 플라스틱 통 바닥에는 왕겨를 두 뼘 이상 깔아 줬다. 닭장 안으로 물과 먹이를 채워 줄 때마다 들여다보는 산란 통에는 두 손에 못다 잡을 정도의 알이 담겨 있다. 엄청난 사건이다. 언제쯤 알을 보여주려나 하면서 사 온 어린 닭이 제 역할을 한다. 먹이 주는 일과 주변 정리하는 것이 기다려진다.


채식만 할 수 없지 않은가. 닭이 넘겨주는 알은 단백질을 보충해 영양의 균형을 잡아준다. 삶거나 구워 간단한 요리의 재료를 공급받는다. 열무까지 자라면 푸성귀는 지천이다. 그 어떤 밥상도 부럽지 않다. 내가 심고 가꾸어 우리 가족의 먹거리로 채워나간다. 욕심을 부려 부화기까지 빌려 병아리 늘리는 실험을 시작했다. 한 주 후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새 생명이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귀촌해서 텃밭을 가꾸는 일은 일주일의 일과에서 얻는 나의 큰 기쁨 중 으뜸이다. 멀리 떨어져 사는 자식에게는 싱싱한 채소를 함께 제때 나누지 못함을 서운해한다. 가끔 수확한 남새를 챙겨서 보내는 것에 위로를 가진다. 먹거리는 스스로 해결하려 한다. 무농약 친환경 재배가 매력이다. 다만, 부족한 작물은 남의 도움을 받아 사 먹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주변에는 갖가지 오염원이 넘친다. 물과 토양과 대기도 마찬가지다. 화학 비료를 멀리하고 친환경 퇴비와 바이오 농약이 대신한다. 작물 재배에 요령이 생긴다. 다품종 소량 생산에 목표를 두고 씨앗을 뿌려 텃밭을 채우려 한다.


직업 선택에도 예외가 아니다. 한 직장에 몸담아 일평생 정년까지 누린다는 생각은 이제 접어야 할 추세인가. 능력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언제 계약이 해지되어 지금의 자리를 잃게 될지 모를 일이다. 사회 변화에 적응하고 새롭게 도전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위치를 지키지 않을까. 화수분은 어디에서나 환영받는다. 오랜 경험은 여유로움을 준다. 경륜은 일의 흐름을 알고 현장에 녹아든다. 오래도록 자연스럽게 터득한 방법과 요령은 비법으로 전수되기에 충분하다.


경험은 많은 것을 녹여낸다. 귀촌의 멋을 귀농의 맛으로 불러내고자 한다. 내 능력을 봄철 텃밭 남새처럼 새순으로 또 수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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