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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회]

by 우영이

대교 아래 비치는 물결은 잔잔하다 못해 대야에 담긴 듯 일렁임이 없다. 처음으로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길을 나섰다. 이른 시간에 도착한 탓인지 사람들의 모습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 경사 길에 다다라 차를 세우고 다가 선 경내는 조용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서녘 햇살이 비친 자락에 동백나무 세 그루는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약속 시각이 가까워지면서 신도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먼저 온 사람들에게 눈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대부분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다. 아내가 기도회 장소로 꽁무니를 이어서 가는 것을 뒤로하고 경내를 나섰다.


바닥에 야자 매트가 깔린 둘레 길을 가볍게 걷는다. 편백나무 향이 코끝으로 다가오는 산허리를 따라 아래로는 바다를 굽어보며 옅어지는 햇살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정상에 이르는 코스는 다음으로 미루고, 이전에 두어 번 와 본 곳이라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간다. 군데군데 깨끗하게 마련된 이정표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해돋이 전망대를 지나 헬기장까지 거리는 오백 미터 정도다. 전망대 바깥 벽에 걸린 차림표는 입맛을 유혹하는 안내문이다. 여기부터는 처음 가는 길이다. 올라가는 주변 좌우로 무수히 많은 무덤들이 저무는 햇살 따라 등줄기를 오싹하게 만들 정도다. 왜 이렇게 무덤이 많을까. 전쟁 피난민들의 무연고 산소일지 모르겠다. 경험하지 못한 숫자만큼 연이어 나타나는 듯하다. 마주치는 사람도 없다. 노을이 내려앉는 산 그늘에 한 두 마리 울어대는 까마귀 소리는 괜히 올라왔나 싶게 만든다.


오르는 길에는 바위와 나무만 눈에 들어오고 하늘빛은 점점 짙은 색으로 바뀌어 간다. 올라가는 길을 되돌아 내려가야 하나. 조바심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하늘이 뚫렸다. 앞선 길에 혼자 걷고 있는 사람이 보여 안도감에 목소리 높여 인사를 한다. 내려가는 길을 묻는데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것이 안전하리라 일러준다. 전망대 공원에 오르니 위안을 주고 어둠을 물리치는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진다. 불빛은 여기 까지다. 높게 솟은 빌딩과 어울린 바다 물결과 불빛에 마냥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주변 산세를 살피며 고민에 빠진다. 골짜기 보다 산등성이가 기준이 된다. 출발 장소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산에서 내려가는 시간을 줄이는 방편이 우선이다. 주변은 잿빛으로 바뀌어 두려움이 다가오기 시작한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들어섰다. 왼쪽 길은 숲이 깊어 길이 드러나지 않기에 택하지 않았던 것이다. 멀리 다가오는 불빛을 바라보며 아래로 아래로 향하는데 또 다른 갈림길이다.


그나마 바른쪽 길이 뚜렷하게 맞아준다. 더 이상 선택의 여유가 없다. 하지만 불안함은 그치지 않는다. 욕심이 화를 불러온 모양새다. 조난 신고를 해야 할지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면서 길을 이어 갈지 여러 생각이 몰아친다. 휴대폰의 가는 불빛만 의지한 채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얼마를 걸었을까. 등골에 땀이 맺힌다. 그제야 익숙한 둘레 길이 눈앞에 보인다. 반가움에 이제는 되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얼굴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히고 입고 있던 겉옷 지퍼를 내리면서 심호흡을 한다.


좋은 의미로 기도회에 참석하는 아내의 조력자로 왔다가 산에서 고립자가 될뻔한 형국이다.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산사 도량으로 들어선다. 벗어놓은 신발이 줄에 꿰진 생선처럼 정렬되어 있다. 문틈으로 밀려오는 목탁 소리를 두고, 새롭게 뚫린 산복 도로를 따라 길을 나섰다. 끝이 보이지 않는 도로를 아내의 기도가 끝나도록 무한 반복 걸음을 걷는다.


오늘의 판단이 경솔했음을 돌아본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새로운 도전은 필요한 일이지만 계획 없이 실행한 일은 화를 불러오게 만든다. 다행스럽게 별다른 일이 없었지만 무모하게 오후를 채웠다. 해돋이 전망대나 기대에 찬 바다 풍광도 눈에 담지 못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은 인생만큼 걱정만 가득한 산책 길은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할 금지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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