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변화에 귀 기울인 지 오래다. 매일 드나드는 주택가 가로수는 늘 그 자리에 머문다. 벚나무와 은행나무가 번갈아 서 있다. 벚나무는 벌써 몸이 날씬하다. 허리춤이 시리게 다가온다.
기온이 갑자기 영하로 낮아졌다. 수십 그루의 은행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가지들이 햇빛을 쫓아 기지개를 펼친다. 이파리가 아래위로 춤을 춘다. 겨울을 부르듯 나뭇가지가 너울너울 일렁거린다. 진입로 배수구 주변에는 떨어진 나뭇잎이 이리저리 굴러 다닌다. 아파트 단지에 나란히 심어 진 은행나무다. 은행이 익어 열매가 떨어져 발에 밟히기라도 하면 냄새가 지독하여 똥만큼이나 피한다. 예전의 은행 열매가 오롯이 간식거리로 선택받던 때와는 대조적이다. 어른 몸통만큼 자란 나무는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을 안겨준다.
단지 출입구에 일정한 간격으로 줄지어 서 있다. 입구를 기준으로 왼쪽에서 자라는 나무와 맞은편에 터를 잡은 나무는 기세부터 다르다. 가지의 무성함과 잎사귀에도 차이가 있다. 길을 따라 무심코 걸어가는 발길에 이파리가 얹힌다. 노랗게 색이 입혀진 나뭇잎은 어느새 집 떠날 준비를 한다. 한 나무에 자라 어디로 가는지 어떤 대접을 받게 되는지 알 수가 없다.
몸을 아래로 구부려 앉는다. 곱게 단풍이 든 이파리를 몇 개 줍는다. 책갈피로 만들어 슬며시 소녀에게 건네던 풋풋한 멋이 다가온다. 이제는 천덕꾸러기다. 주변을 정리하는 미화원에게는 못마땅하다. 한꺼번에 몸통을 떠나 주길 바라는지 모른다. 바닥에 떨어진 잎을 아무렇게나 쓸어 담는다. 청소하는데 들어가는 노력을 줄이고자 할 뿐이다. 먼저 떠난 이들은 사정없이 휘두르는 힘찬 빗질에 휩쓸린다. 이 정도는 예삿일이다. 문명의 혜택을 무기로 함부로 들이민다. 엎드려 있는 자체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뒤로는 매캐한 연기를 내뿜고, 원통으로 내민 뜨거운 입김에도 바닥에 달라붙어 버틴다. 마침내 지탱할 힘이 모자라 밀려간다.
싱그러운 푸름을 간직하고 반짝반짝 윤이 나는 나뭇잎은 여유롭다. 건너편 동무들의 이별은 아랑곳없다. 큼 차이를 드러낸다. 한쪽은 친구들을 떠나보내는데 이곳은 준비조차 하지 않는다. 저렇게도 다를 수 있을까. 그런데 웬걸 두 주 만에 상황이 달라졌다. 여유롭게 푸른색을 지니던 잎에도 계절을 비껴가지 못하는 모양이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갔다. 하늘에는 며칠이나 찬 기운이 이어진다. 사람들은 목도리와 두꺼운 옷차림으로 발걸음이 느려졌다. 푸르고 싱싱한 잎이 단풍으로 옮겨 가기도 전에 인정사정없이 색깔이 바래져 떨어진다. 색이 바뀔 시간도 얻지 못했다. 이별을 준비할 기회조차 빼앗겼다. 단풍은커녕 시들고 마른 낙엽으로 남는다. 떨어진 나뭇잎은 갈 길을 정하지 못했다. 인도와 도로 경계석 언저리에 널브러져 자리를 잡는다.
며칠 사이에 가로수는 하나같이 팔을 들어 올린 채 덥수룩한 옷을 벗었다. 남은 가지에는 낡아 해진 넝마처럼 흠집이 여기저기 나 있다. 몸이 움츠려 든다. 가벼워진 작은 가지들을 세우면서 몸통을 에워싸고 있다. 여태 무겁게 버티며 안고 있던 동료들을 부지런히 떨쳐 내었다. 의지와 상관없이 속내를 드러낸다. 홀가분한 자태를 자랑하지만 거세게 부는 바람 때문에 가지가 부러지고 휘어졌다. 작은 회초리가 되어 몸통을 두드린다. 함께 지내온 푸른 잎의 존재를 뒤늦게 떠올린다. 더불어 지낸 봄과 여름의 풍성한 계절을 돌아본다. 길 양편에 자리 잡은 은행나무를 살핀다. 작은 차이가 이런 결과를 주었나 싶어 바라보고 또 다가간다.
한 부모에 태어난 자식도 제각각이다. 다섯 손가락도 길고 짧고 가늘고 굵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같지 않다. 어떤 자세로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달라진다. 잎이 달아 난 무심한 가로수를 다시 돌아본다.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삶이기에 마음이 길바닥에 내동댕이 쳐진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떨어질수록 가슴은 콩닥거린다. 생활에 여유가 없다. 예상치 못한 일은 사전에 다양한 준비가 될 때 활력이 넘치고 기회가 주어진다.
같은 지역에 자라는 가로수도 햇볕이 비추는 방향과, 누리는 시간에 따라 큰 차이를 본다. 오늘도 가로수 밑을 걷는다. 땅이 움푹 솟아오르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무성한 잎을 떨치는 아픔을 안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세상을 내뱉는 봄을 맞아 새순과 같은 훗날을 기다린다.
사람이 살면서 무수히 많은 일을 겪는다. 가족 간에도 의견이 충돌로 갈등을 하고, 전혀 모르는 사람과는 말할 필요도 없다. 서로 자신의 주장이 옳다며 굽힐 줄 모른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닌 듯하다. 가정과 직장에서 나 위주로 생각하고 행동해 왔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쓴웃음뿐이다.
누구의 삶이 맞고 누구의 삶이 틀린 것이 아니라 제각기 다를 뿐이다. 아니 당연하다. 마땅히 서로가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자. 그 다름에서 각자가 이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웃음을 오래 머무는 시간으로 만들어보자. 서로가 존중받고 존중하는 세상에서 내가 중심이 되어 함께 걸음을 시작합시다. 같이 길을 떠나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