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행사처럼 하는 일 한 가지가 음력 팔월이면 산등성이마다 기계음으로 요란하다. 조상의 묘소에 자라난 풀을 베는 일은 문중마다 모이는 또 다른 풍경이다. 예전에는 소나 염소를 기르면서 산이나 들에 자란 풀을 뜯어 먹여 벌초는 별도의 일이 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지 사회가 변화면서, 가까운 친족들이 모여 산소의 풀을 베는 일이 행사가 되었다. 낫이 하던 일을 장비의 발전으로 동력 기계가 대신한다. 삼 형제 뒷세대가 매년 한가위 전 하루를 정하여 풀을 벤다. 지난해에는 다른 일정이 있어 같은 날짜에 함께하지 못하였다.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벌초나 시사에 빠짐이 없었다. 몇 년 전 고향에 정착하여 지내는 동생과 의견을 모아 부모님 산소와 근처 다른 묘소 풀을 먼저 베기로 하였다.
제각기 먼 도시에 나가 생활하고 있는 처지라 예전처럼 여럿이 모임을 갖는 일은 기대하기 어렵다. 각자의 편리성에 따라 행한다. 조상의 산소에 벌초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명절 즈음에는 차량 정체로 교통 흐름이 순조롭지 못하다. 여기에 덩달아 풀베기도 미루어져 추석 전날 행하기로 의견을 모은다. 친족이라는 끈으로 맺어진 관계가 점점 멀어진다.
음력 시월이면 고향에 모여서 지내던 시사도 없어졌다. 그나마 일 년에 두 차례, 벌초와 시사 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사라졌다. 윗 세대의 노고로 도시에 나가 생활한 우리들이 인식하지 않고 지냈던 시절이 새삼 떠오른다.
산소에서 베어낸 풀은 소 외양간과 돼지우리에 넣어 농사용 퇴비로 사용되고 장작 불쏘시개로 쓰였다. 어쩌면 자연으로 순환되어 흙으로 돌려주었다. 농사일을 하는 과정에서 덤으로 임하던 과거의 흔적은 찾기 어렵고 가문의 행사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나아가 직접 산소 풀베기에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 사람은 벌초 대행을 한다. 먼 길을 오가는 대신 얼마의 수고비로 조상 산소 돌보는 것을 맡긴다. 경제성으로 보면 후자가 더 나을 수 있다. 사람은 사회 테두리 속에서 서로의 관계를 이어 가는 것을 전제로 한다. 어쩌면 사람이 다른 것과 가장 차별되는 요소가 아닐까.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이 바뀌었다. 사회 변화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달라졌다. 또래와 어울려 거리낌 없이 지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기억 저 멀리에 남아 있을 뿐이다. 한 세대가 사라지고 또 한 세대가 저물어간다. 아래 세대는 현실에 맞추어 변화를 시도한다. 그런데, 우리 세대는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어깨에는 짐이 하나 둘 올려진다.
집안끼리 풍습으로 내려온 일들이 하나 둘 자취를 감춘다. 서로를 챙겨 주고 문중을 우선하던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시사 때마다 조금씩 모아둔 자금도 마찬가지다. 행사가 이어지지 않으니 자금 관리도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모양새다. 다행스럽게도 예금주 계좌를 추적하여 공동 자산을 확인하였다. 여러 가지가 묻힌다. 집안끼리 끈을 이어가던 일은 어디에서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전통은 큰 것에서만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각 가정에서 행하는 작은 것들이 모여 큰 의미를 보탠다. 우리 주변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전통들이 어쩔 수 없나 보다. 편리에 의해 줄이거나 없애는 일은 나를 지켜주지 못하는 세상에서 당연한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빠져드는 일은 경계하자. 고향 땅에서 지닌 추억 속의 공간이 하나 둘 솟아난다. 내일이라도 소 몰고 지게 지고 다닌 그곳을 다시 한번 거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