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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사진]

by 우영이

사촌 동생이 딸을 결혼시킨다. 자랄 때 시골에 살 적에는 매일 부대끼며 장난과 싸움으로 돈독해졌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제각기 다른 지역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자식들과 함께 지내다 둘째를 보낸다.
결혼식이 열리는 수도권까지 갔다 오려면 예삿일이 아니다. 서둘러 기차표를 예매한 덕분에 예식 이틀 앞두고 집을 나섰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라고 아들네에 먼저 들러 며느리와 손주를 만나기로 하였다. 아니 이들이 보고 싶어 바로 참석을 결정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내와 동행하여 떠나는 길은 출발부터 마음이 들떠있다. 두 돌이 가까워지는 손주의 웃음, 손짓, 들려주는 목소리가 귀엽고 안아주고 싶다.
이제는 얼굴도 알아보고 ‘할비, 할미’라고 불러주는 애교도 보여준다. 사진 찍을 때면 손가락 포즈도 먼저 취한다. 오물오물 먹는 모습에 부부의 눈동자가 멈춰버렸다. 놀이터에 같이 가는 것도 추억거리다. 나랑 손을 잡고 걷다가 혼자 뒤뚱거리며 뛰기 시작하면 덩달아 성큼성큼 걷다가 느닷없이 팔을 내밀어 행여 넘어질까 한 발짝 뒤처져 따른다.
외출 준비를 마치고 한 시간여를 달려 예식장에 도착하였다. 혼주인 사촌 동생 부부와 축하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는데 집안에서는 어른인 아재가 들어선다.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가 악수하였다.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얼굴 본 지가 까마득하다. 몇 년은 지났는가 보다. 장성한 아들 쌍둥이는 살림을 나가고 노년을 한가롭게 지내고 있단다.
예식이 끝나고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그동안 사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십 대 때 비용을 줄이기 위해 아저씨의 셋방에서 몸을 부대끼며 서너 명이 더부살이하던 시절이랑, 또래인 사촌 형을 따라 고향마을 산 중턱 ‘수암정’에서 찍은 사진 이야기가 술안주처럼 올랐다. 처음 안 사실이다. 십 년 이상 차이나는 분과 어울려 찍은 사진 이야기에 호기심이 발동한다. 휴대전화에 담긴 빛이 바랜 흑백 사진은 칠십 년대 초등학교 다닐 무렵으로 보인다. 덩치 큰 형들 틈바구니에 꼬마가 끼어든 모양새다.
자리 잡은 모양새나 입은 옷차림은 누가 봐도 옛날의 흔적을 보여준다. 몇 년 만의 만나는 집안 어른 덕분에 가지지 못한 옛 추억의 현장을 담는다. 산등성이에 자리한 높다란 건물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팔작지붕이다. 누마루 형식을 갖추어 여름철에는 앉아 있는 자체가 피서였다. 이곳은 우리들의 놀이터요 청운의 꿈을 품은 동네 젊은이의 수련장이기도 했다. 멀리 절간을 찾아 떠나는 대신 짐승들의 울음소리만 들리는 여기가 최고의 공부방이었다. 주변 산세와 정원이 어우러져 내가 다닌 초등학교가 소풍 장소로 이용하던 곳이기도 하다.
수암정은 어떤 유래가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윗대 가문에서 축조한 이래 한 차례 옮겨지어 지금에 이른다. 오르는 길에 나란히 자리 잡은 너럭바위는 각각 어른 십여 명은 족히 둘러앉아 지낼 정도다. 오래전부터 이용한 흔적은 커다란 칠보 놀이 자국이 바닥에 새겨져 있다.
십 대 때의 아련한 기억을 떠올린다. 아재가 카톡으로 건넨 사진 한 장이 보고 싶은 사람들을 연결해 준다. 마을에서 자란 동무에게 안부 전화를 한다. 고향에서 지낸 성장기의 추억들이 장년기에 이른 나에게 문장을 이어가는 무한한 샘의 기반이 된다. 이번 연휴에는 지난날 사흘이 멀다고 오르내리던 그곳으로 찾아가 옛 정취를 담아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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