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갠 등산로는 양탄자 위를 걷는 듯 발걸음에 오차가 없다. 수분이 듬뿍 적셔진 풀잎과 나무는 푸르름이 짙어져 생기가 돈다. 빗질이 된 듯 등산로 바닥은 사뿐사뿐 발소리까지 흡수되었다.
산비탈을 올라 평탄한 길에 접어드는데 같은 아파트 아래층 사람이 부지런하게도 강아지 산책을 마치고 내려오는 중이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갓 탄 솜이불처럼 온화한 산 공기를 흠뻑 들이켠다. 숨소리는 거칠어 가지만 큰 도로를 벗어난 산행길은 상큼함까지 얹힌다.
정상에 오르는 길 양쪽에는 패랭이꽃과 갖가지 들꽃이 산행을 북돋운다. 큰 나무 밑에는 작은 오솔길 따라 한 줌씩의 키 작은 풀만이 갈림길의 방향을 안내한다. 비탈길은 나무 계단이 어지러이 지탱하고 있다. 습기에 여기저기 움푹 팬 모습이 사용 연한이 의심스럽다. 돌탑은 누군가의 소망이 하나씩 모여 몸집을 늘렸다. 계단 옆 공간 따라 미끄럼틀 타듯이 발뒤꿈치가 닿을 듯 말 듯 몸이 앞으로 기울어진다.
봉화대 구조물 옆 망원경은 하늘을 향해 한가한 시간에 머물러 있다. 멀리 두송반도는 대양을 형해 머리를 내리고 있다. 안개에 묻혀 시야가 갇힌다. 맑은 날이면 어렴풋이 구분되는 대마도는 안내판에만 표시될 뿐이다.
체육공원으로 향하는 길에는 작은 자갈 밟는 소리가 함께한다. 중년의 남녀가 이야기를 나누며 달려간다. 건강미가 넘쳐나는 몸매가 드러난다. 구청에서 조성한 길 언저리는 수국 군락지로 바뀌었다. 물길 따라 이어진 배수로는 명맥만 이어 줄뿐 짐승의 목축임 웅덩이조차 보이지 않는다. 뒤이어 기합 소리가 쩌렁쩌렁 산울림이 펼쳐진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운동기구마다 체온이 감싼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삼십여 분 동안 몇몇 기구와 대화를 나눈다. 근육이 뭉쳐진다. 다리 힘줄이 뻐근하다.
황톳길은 맨 발족들의 잦은 방문으로 매끈하게 다져진 모양새다. 소나무 아래 그늘에서 가슴을 뒤로 젖히고 심호흡을 한다. 산소가 깊은 폐까지 전달되는 기분이다. 몇 달 만에 찾은 산자락이 긴 호흡으로 안아준다. 나뭇잎을 어루만져 주는 듯한 바람은 덤이다.
내려가는 길은 마음부터 홀가분하다. 둘레길 중허리에 흔들림 없는 발걸음이 동행한다. 오르고 내려가는 산행객과 마주하면서 인사로 힘을 얻는다. 햇살이 숲 속 빈틈으로 내리비친다. 상의가 흘러내리는 땀방울로 몸에 밀착된다. 모자를 벗어 부채 대신 위아래로 힘껏 휘두른다. 갈증이 밀물처럼 몰린다.
숲에서 얻은 싱그러운 공기가 그리워진다. 산과 호흡하고 자연의 무한한 베풂을 고마워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나 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원초적 현상이 두렵다. 정화된 숲의 혜택에 두 팔 벌려 자연을 껴안는다. 내일 또다시 찾는 자연에 겸손해지리라. 내 나무와 다짐을 한다. 무사한 나날을 기원하며 잦은 방문을 약속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