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몸이 아파 약속이 미루어졌다. ‘오뉴월에 개도 하지 않는다’라는 감기에 걸렸단다. 허한 체질인지 아니면 다른 문제라도 생긴 것인지 갖가지 억측에 가까운 망상을 떠올린다.
오지 않는, 언제 오게 될지. 기약 없는 누군가를 기다려 본 적이 있는가? 살면서 이토록 시간이 길게 느껴졌나 싶다. 자식이 성인으로서 서로가 아껴주는 이성과 만나 장래를 함께하는 약속이 이어지는 것은 부모 된 처지로 당연히 기대하는 바이다. 언제쯤이면 이 꿈을 이루어 줄까 내심 기다려왔다. 아니 재촉을 한다. 자식이 자리를 잡아간다는 것은 우리의 나이가 그만큼 들어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바심에 자식의 말이 비치는 순간 다음 순서를 앞세운 다. 얼굴 한 번 봐야지. '언제 보여줄 건데'. 드디어 본인이 만나고 싶은 상대를 찾게 된 것인가. 부모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인사하러 오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기다리는 어른들까지 입술이 바싹 타들어가는 느낌이다.
그렇게 기다린 시간이 또 미루어진다.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손꼽아 기다린 날짜 사흘을 앞두고 연기가 되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이틀 후 주말에는 만남이 이루어진단다. 딸의 갑작스러운 통보에 실망과 기대가 교차한다. 어른들과의 사전 약속이 이렇게 공수표가 될 말인가. 기쁨을 크게 주려고 날짜 조정이 된 것이라 여긴다.
휴일 오후 저녁 시간에 맞춰 음식점으로 향한다. 집에서 자동차로 이십 여분 걸리는 곳이다. 첫 만남의 자리인지라 옷차림에도 신경을 쓴다. 셔츠에 양복까지 갖추었다. 서로에게 주는 첫인상은 오래간다.
음식점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딸의 남자 친구가 마중한다. 악수와 함께 몇 시간 거리를 달려와 준 수고에 덕담을 건네고, 어깨에 손을 얹어 가볍게 두드려준다. 푸근한 풍채가 믿음과 안정감을 준다. 주문한 고기가 불판에 올려지고 육즙을 가두며 맛깔스럽게 구워낸다. 집게로 한 점을 손님에게 건넨다. 내 나름 친숙해 보려는 몸짓이다.
일상사에 이어 미래에 대한 계획까지 질문을 던진다. 부담이 느껴질 테다. 식사가 나오면서 첫 만남이 무르익는다. 딸의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새로운 식구를 맞이할 준비가 진행된다.
먼 거리 운전을 앞둔 예비 사위에게 차 한 잔의 여유를 권한다. 조금은 늦게 이성을 찾아온 둘만의 시간을 축복해 준다. 첫 방문의 선물은 과일 바구니와 함께 맞잡은 두 손이 넌지시 알려준다. 부모의 시름을 한 번에 없애 주는 만남이다. 앞으로 자주 얼굴 보자는 말과 함께 포옹으로 배웅을 한다.
오늘처럼 기쁜 날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이다. 잘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머지않은 날 두 집안의 어른들이 인사를 나누게 될 날을 기다린다. 만남과 기다림은 계속된다. 인생의 시작과 끝이 예서 멀리 있는 일이 아니다. 또 다른 기다림은 만남의 다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