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째 널브러진 창고 건물이 눈엣 가시다. 수확한 농산물 보관용으로 역할을 해왔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탁구대를 들여놓으면서 운동 공간으로 자리를 내주었다. 두 계절 동안은 본래의 목적을 잘 지켜 주더니 어느새 먼지가 자욱하다. 낙엽이 굴러들어 오고 거미줄이 한술 더 뜬다.
아내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들여놓은 탁구대는 그림의 떡이요, 운동은 뒷전이란다. 이 공간을 새롭게 꾸며보자며 활용 방안을 내놓는다. 무슨 일을 또 시작하려는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늘 그래 왔듯이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오롯이 내 노동이 투입되는, 소파가 놓이고 옛 정취를 살리려 레코드판을 재생하는 축음기까지 들여 트롯음이 7080의 분위기를 더한다.
계절이 바뀌면서 조립식 패널로 구성된 창고는 열기가 높아진다. 선풍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연일 치솟는 기온은 예년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이전에 겪던 온도는 약과다. 초여름임에도 40에 가까운 숫자가 더 익숙한 나날이다. 문명의 혜택이 절실해진다. 하나를 갖추니 또 다른 욕구가 샘솟는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인가. 이왕 할 것이면 최적의 장소로 만들자.
아내의 구상은 본채의 마루가 좁아, 여러 명이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란다. 나눔에 나온 최신 냉방기를 절충하여 구매했다. 벽걸이용 기기의 설치는 내 몫이다. 부족한 동 파이프와 부자재는 인터넷으로 준비했다. 새로이 공간을 채우는 일이라 벽면 구멍 뚫는 일부터 힘이 든다. 드릴에 기구를 장착하여 시도하는데 철판을 뚫는 일부터 간단치 않다. 벽에 구멍이 관통되는 순간 장치를 반 이상 끝낸 기분이다.
실외기와 전선이 연결되고 배수를 위한 호스의 기울기를 고려하여 냉방기를 벽면에 고정한다. 배관이 자리를 잡고 안팎이 하나가 되었다. 실외기는 블록을 눕혀 수평을 잡는다. 마감 처리는 나중으로 미루고 전원 코드를 콘센트에 꼽아 리모컨을 동작시켜 본다. 모터음 소리와 함께 시원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단번에 작동이 되었다. 오류 없이 설치를 완성하는 순간이다. 쾌재를 외치며 아내에게 어깨를 으스댄다. 두 번째 행하는 냉방기 설치였기에 시행착오는 없다.
넓은 공간에 오순도순 모여 정담을 나누는 식구들의 장면을 떠올린다. 상체가 땀범벅이 되다시피 속옷이 살갗과 하나가 된 길고 긴 시간이었다. 오늘로써 집 꾸미기는 마지막이어야 한다. 관리에 치중한다는 마음으로 마무리다.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것은 무슨 일이든 서툴고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앞선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가 들어갈수록 젊었을 때와 달리 주저하게 된다. 이것저것 따져보는 데서 오는 불안감이 뒤따른다. 완전함이 보장되는 경우는 드물다. 더욱이 불확실성의 연속에 미루어진다. 성취감은 시련을 겪는 만큼 비례하는지도 모르겠다. 혼자의 희생으로 많은 이들이 행복감을 누린다면 흔쾌히 받아들여야지. 어수선한 벽면 장식이 남아 있다. 나만의 작품으로 예술성을 멋 내 보련다. 수묵화로 채워진 전시 공간을 눈앞에 펼쳐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