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홍명보! 보고 싶다.

by gentle rain

"명보야, 자리에 앉자. "
여전히 명보는 교실을 돌아 다닌다.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명보야, 자리에 앉아야지"
점점 목소리가 커진다.
"홍명보, 자리에 앉아"
이젠 소리를 지른다.
"홍명보... 자리에 앉아!"

아내가 깜짝 놀라 일어나 내게 물었다.
"여보, 홍명보가 누구야?"

특수교육과 졸업 후 처음 근무하게 된 학교에서 명보를 만났다. 명보는 내가 담임을 했던 1학년 학생이었다. 명보는 학교 옆 요양원에 살았다. 사람들을 좋아하는 명보는 다운 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난 학생이었다. 어릴 때, 요양원에서 당시 축구 국가대표였던 홍명보 선수 이름을 따라 '홍명보'가 되었다.

수업 내내 돌아다니는 보를 자리에 앉히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명보는 꿈속에도 나타나 교실을 돌아다녔다. 명보는 늘 환한 웃음으로 인사하였다. "샘님, 안뇽하세오" 명보의 어눌한 인사가 초임교사인 내게 힘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 6학년이 된 명보, 나는 다시 한번 명보의 담임이 되었다. 명보는 등교하여 교실에 들어오면 바로 내게 피아노 악보집을 주었다. 명보는 매일 나의 피아노 반주에 가요 '마법의 성'과 CCM '나' 두 곡을 부르며 아침을 시작하였다.

그해 나는 특별활동 시간에 밤벨반을 지도하였다. 밤벨이란 악기는 대나무로 만들어진 인도네시아 악기로 핸드벨처럼 한 사람이 한음의 소리를 낸다. 명보는 소리를 많이 내야 하는 '도'음을 담당했다. 지휘자가 검지 하나를 펴서 흔들면 '도', 검지와 중지 두개의 손가락을 흔들면 '레'... 손가락 개수에 따라 동아리반 학생들은 자신이 담당하는 음정의 밤벨을 흔들어 음악을 연주했다. 밤벨반에서는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 똥'을 원작으로 한 만화영화 주제곡을 연습했다.


"걱정 마요 실망 마요
저 멀리서 별이 내려올 때
울지 말고 바라봐요.
내 손에 담긴 작은 별들을
쉽게 놓쳐 버릴까봐 그만 놓쳐 버릴까봐
걱정말고 믿어봐요 나의 꿈을 잊지마요
나의 꿈을~"


노래를 먼저 부르고 계명으로 노래를 부르고 내 손가락 지휘에 맞춰 학생들은 밤벨연주를 했다. 한 학기가 끝나갈 무렵 명보는 내 손가락 지휘를 다 외웠다. 명보는 학습지 이름을 쓰는 빈칸에 미국으로 입양된 두 명의 친구의 이름을 늘 함께 썼다.


중학생이 된 명보는 아침 일찍 등교해 연구실 문을 똑똑 두드렸다. 문을 열면 명보는 뒤를 돌아보며 쑥스러운 듯 웃으며 운동장 건너편의 중학교 건물로 뛰어갔다. 중학생이 된 명보는 밤벨반의 기둥이 되었다. 밤벨반 단복을 입고 교내 학예회에서, 교회에서, 여러 기관에서 찬조공연을 했다. 한 공연에서는 명보가 지휘자가 되었다. 손가락 지휘를 하며 노래하던 명보의 지휘에 맞춰 밤벨을 든 학생들이 ‘강아지 똥’ 주제가를 연주했다.

"걱정 마요 실망 마요~“


명보의 손가락 지휘를 무대 아래에서 지켜보며 가슴이 뛰었다. 학교를 옮긴 후에도 명보가 자주 생각났다. 페이스북에 명보의 글을 올리고 며칠 후, 명보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명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공과에 진학했다고 했다. 고 3이었던 명보가 하루에도 수백 번씩 공책에 내 이름을 썼다고 한다. ‘최지수, 최지수, 최지수.......’ 우린 떨어져 있지만 통했나 보다. 명보야,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홍명보. 보고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행복해지는 3가지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