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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첫날 어땠니?

아빠 중심의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by gentle rain

아들아, 너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 아빠는 너의 이름의 첫 번째 이니셜로 너를 부르려고 해. 어때? 괜찮아? 브런치에서 아빠가 너를 부를 호칭인 K. 가 처음에 낯설게 느낄 것 같아. 나도 낯설어. 그러나 아빠가 네게 보내는 편지글이 쌓일수록 익숙해질 것 같아.


아들아. 아빠는 새로운 환경에서 일을 시작한 지 4년이 지나면서 열정의 온도가 내려가는 것 같았어. 일이 익숙해지고,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과 격려도 받으며 일해왔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아서였을까? 다시 불을 지피고 싶어서였을까? 아빠 마음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쏟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 요즘이었단다. 다시 컴퓨터를 이 밤에 켰다.


아빠는 1년 전 즈음에 브런치 작가에 도전을 했고, 매일 글을 조금씩 쓰던 시간이 있었어. 아빠의 글들은 자연스럽게 사춘기 끝을 지나가며 대입을 준비하는 너를 향한 마음이 담기기 시작하더라. 그런데 참 신기하지? 아빠 다락방 순원이었던 집사님이 출판사를 내고, 아빠에게 책을 내자고 하셨지 뭐야. 아빠가 언젠가는 책으로 내고 싶었던, 아들에게 쓰는 편지 형식의 글 말이야. 아빠는 책 표지를 디자인해보고, 브런치에 올린 글을 간신히 10개를 묶어 발행한 것이 다였는데 말이야. '사춘기 아들과 오춘기 아빠의 동행'이란 가제를 붙여놓았는데. 이제는 큰 아들인 너에게 쓰는 글의 제목은 '대학생 아들과 열정의 불씨를 다시 불 붙이고 싶은 아빠의 동행'이라고 바꿔야 될 것 같구나.ㅎㅎ


그런데 K. 아빠가 쓴 A4 한 장 분량의 글을 책을 내자는 집사님께 메일로 보낸 후 더 이상 글을 이어나가지 못했어. 집사님으로부터 아무런 피드백을 받지 못해서였을까? 원래 집사님이 제안한 것은 100개의 편지 글을 묶어서 책으로 내자는 거여서 100개의 편지가 쌓여야 되는 거긴 했지. 그래도 아무런 답글이 없어서 조금은 김이 새는 마음이 들었어. 그래서 말이야. 요 며칠 생각을 해보다가 먼저 네게 쓰는 편지 글을 브런치에 올리기로 마음먹었어. 오늘이 그 첫 번째 날이고, 편지글로 치면 두 번째 네게 보내는 편지야. 일단 오늘, 아빠는 수정을 거치지 않은 날것의 글들을 거침없이 써 내려가려고 해. 일단 써야겠어. 그리고 가능하다면 말이야, 아빠 브런치 독자들의 피드백도 받고 싶어. 아빠 너무 관종인가?^^


아들아. 아들에게 보내는 아빠 중심의 편지네. 미안.

대학교 첫날, 어땠어? 벌써 잠이 든 걸 보니 피곤한 게 분명해. 네가 입학한 대학의 기계공학과는 실험과 커뮤니케이션 강의가 대면 수업으로 정해져서 매일 학교에 가야 하잖아. 코로나19로 지난 2년 동안 대학생이지만 대학교를 못 가본 대학생들에 비해 제대로 대학생활을 할 거라고 엄마랑도 얘기했잖아. 너도 설레 하는 것 같았는데. 그렇지? 그런데 네가 학교 다녀와서 줌 수업이 편하긴 하더라고 이야기할 때 아빠도 모르게 쓰윽 웃었던 것 같다. 인생은 참 예상 밖일 때가 많은 것 같지 않아?^^ 집에서 강의실까지 걸린 시간이 1시간 40분이라니. 피곤할만하지.


K! 150명 신입생 중에 오늘은 두 명의 친구의 이름과 얼굴을 익혔다고 했지? 그래 그렇게 친구들을 만나고 사귀어가는 거지. 그러다 아니? 네 마음을 설레게 할 같은 과 여학생을 만나게 될지. 하긴 기계공학과에 여학생은 정말 적다고 했지?

내일 있을 일반물리실험은 줌으로 OT를 해서 학교 안 가도 된다고 했지? 내일은 늦잠을 자도 되겠구나. 어제 네가 졸업한 학교 학생들의 개강 수련회 영상자료 편집을 새벽 5시까지 하고 왕복 3시간이 넘게 버스와 지하철을 탔으니 코~ 자야지, 우리 아들.


K! 하나님께서 네게 만남의 축복을 주심에 감사하다. 기계공학과 2학년 과대표가 교회 대학부 선배이고, 오늘 복학한 선배는 네가 기계공학과에 대해 문의를 했던 교회 선배이자 엄마 순장님의 아들이고 말이야. 또 같은 캠퍼스에 두 명의 고등학교 동창과, 한 명의 고등학교 선배도 있고. 참, 복학한 그 형이 너 밥 사 준다고 했다. 좋겠다. 아. 그리고 사촌 형도 일주일에 두 번 대학원 강의 들으러 오는데 저녁 사주고 싶대. 우리 아들 좋겠다. K야. 엄마랑 아빠가 기도했었는데. 참 감사하다.


인터넷 주문한 노트북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내일은 계속해서 태블릿으로 수업을 듣겠구나. 좀 불편하겠다. 그래도 불평하지 않아서 고마워. 네가 재활용으로 버려진 컴퓨터 부품들을 모아 조립한 데스크톱이 그제 전원이 켜지지 않을 정도로 수명을 다했네. 한 달만 더 버텨주었다면 K가 원하는 삼성전자의 새롭게 출시될 노트북을 사는 거였는데... 그래도 LG의 그램 노트북이 가볍고 화상 도도 높아서 군대 가기 전까지는 잘 쓸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우리 아들. 잘 살 거야. 정말.


아빠 졸리다. 자야지. 내일은 우리 아들 양치하고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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