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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n Jul 05. 2020

도둑들도 싫어한 밴라이퍼들

#38

프랑스는 우리가 밴라이프를 하면서 가장 좋아하게 된 나라이다. 정박지 걱정이나 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사람들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어딜 가나 어렵지 않게 아름다운 자연 속에 정박할 수 있고 한적한 주차장도 많으며 겨울을 제외하고는 물을 받거나 버리는 곳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밴라이프에서 가장 큰 걱정을 덜어내는 것이었지만 지금까진 프랑스 그 어디에서도 우리를 낯선 이방인으로 보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는 이유가 제일 컸다.

때문에 프랑스를 제2의 고향인 것처럼 편안하게 느껴왔던 우리는 있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 된 것 같은 벨기에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 듯 프랑스로 향했다. 브뤼셀에서 2 시간 거리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군을 피해 후퇴를 하던 영국군의 모습을 그린 영화 '덩케르크'의 실제 장소인 덩케르크가 있었다.


사실 덩케르크를 가려고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벨기에를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었고 가장 가까운 프랑스 국경을 검색해보니 그곳에 덩케르크가 있었던 것이었다. 우리의 밴라이프는 늘 그랬다. 생각만 하고 있었을 뿐 전혀 의지와 욕심을 가지고 계획을 하지 않았는데 우연히도 생각이 현실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저 연합군이 상륙작전을 펼쳤던 해변가에 가고 싶었다는 생각을 했을 뿐인데 우리가 오마하 해변에 갔던 날은 실제 상륙 작전이 있었던 6월 6일이었고 우연히도 상륙작전을 기념하는 불꽃놀이를 보았다.  사랑이를 입양하게 된 것도 그러했다. 막연히 개를 입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는데 우연히 가게 된 크로아티아에서 사랑이를 만나게 된 것이다. 

오로지 우리가 한 것이라곤 열심히 상상하고 꿈꾸면서 그것이 현실을 되었을 때를 대비해 준비를 한 것뿐이었다. 2차 세계대전의 실제 장소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우린 참 열심히도 관련 영화들과 기록들을 찾아봤으며 그곳에 가면 무얼 하고 싶을지 그리고 어디를 보고 싶을지 참 열심히도 상상을 했다. 강아지를 입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개를 키우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조건과 능력들을 신중하게 따져봤으며 우리가 충분한 조건과 능력이 되었을 때 어떠한 강아지를 입양하고 싶을지 진중하게 상상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치밀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을 뿐 생각하고 상상하길 좋아하는 우리의 성격 덕분에 항상 준비가 되어 있었던 듯하다.

덩케르크 외곽 주차장

감옥 같은 벨기에를 떠나 프랑스로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는데 영화 촬영도 실제로 덩케르크에서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우리는 더욱 기대에 부풀었다. 당장이라도 덩케르크 마을로 뛰어가고 싶었지만 이틀 뒤 브뤼셀로 돌아가서 스냅 촬영을 해야 했기에 일단은 조금 멀리 떨어진 외곽 주차장에 정박을 했다. 촬영을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덩케르크를 여행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숲으로 둘러싸인 주차장은 한낮에도 조용했다. 덕분에 마음 놓고 사랑이의 산책 훈련을 시킬 수 있었고 나도 마음이 놓여서 인지 괜시리 날씨도 별로 춥지 않은 것 같았다. 주말이라 슈퍼도 문을 닫아 차 안에는 먹을 것도 충분하지 않았지만 배도 고프지 않은 듯했다. 몸과 마음이 편하니 모든 것이 아무렇지 않은 문제들처럼 느껴졌다. 변기를 비울 수 있는 공중화장실까지 있으니 모든 게 완벽했고 그렇게 우린 이틀 밤을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고요히 보냈다.


스냅 촬영 날 보다 하루 일찍 브뤼셀로 돌아갔다. 브뤼셀 시내를 미리 둘러보고 어디서 사진이 예쁘게 나오는지 테스트 촬영도 해보고 도심의 분위기도 먼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평일이었기에 미리 봐 두었던 공용 주차장에 자리가 많아서 그곳에 차를 정박시켰다. 주차장은 우리가 가장 피하는 정박지였지만 별 다른 선택이 없었다. 주차장 바로 앞이 브뤼셀 시내까지 가는 트램 정류장이었기 때문이다.

일 때문에 가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우린 신이 났다. 혜아도 나도 언제나 그렇듯 허름한 옷들 중에 가장 멋있는 것들을 골라 입고 사랑이 목줄도 단단히 맨 채 브뤼셀로 향하는 트램에 올랐다. 이번엔 네덜란드를 떠나기 전 엄청나게 싼 가격으로 구입한 털모자와 장갑 세트 덕분에 추위도 한결 덜했다.


브뤼셀은 우리에게 그리 인상 깊은 도시는 아니었지만 아기자기하고 밝았으며 조그마한 크기 덕분에 시내를 둘러보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아서 사진을 찍기에 좋은 장소도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찬찬히 더 둘러보고 싶기도 했지만 우리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느라 사랑이도 지친 듯했고 끌려 다니며 사진을 찍겠다고 한 우리도 더 이상 걸어 다닐 힘이 없어 다시 밴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많이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듯 보이는 사람들로 트램은 가득 차 있었다. 괜히 사랑이가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 난 사랑이를 들쳐 앉았고 혜아도 흔들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버티기 위해 내 팔을 잡은 채 옹기종기 붙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으니 어느덧  밴을 세워 둔 정류장 주차장에 도착했다. 낮에 비해 한결 한산해진 주차장을 지나가고 있는 와중에 혜아가 갑작스레 핸드폰을 찾기 시작했다. 트램을 기다리면서 코트 주머니에 있는 초콜렛을 먹기 위해 손을 넣었을 때까지만 해도 핸드폰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아무리 주머니들을 뒤져봐도 없다는 것이었다.

유일하게 남은 브뤼셀 여행의 흔적

트램을 타고 오면서 한 손으로는 내 팔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손잡이를 잡고 있느라 핸드폰은 한 번도 꺼내볼 수도 없었으니 트램 안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게 틀림없었다. 4년이 훌쩍 넘은 혜아의 핸드폰은 이미 이곳저곳이 찍히고 깨져 있었고 너무 느려서 쓰기 힘들 정도로 오래된 스마트폰이라 잃어버린 게 아깝지는 않았지만 아직까지 백업되지 않은 우리의 수많은 여행 사진들이 같이 없어진 게 너무 아까웠다. 혜아가 트램역에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는 걸 보고 몰래 훔쳐간 듯한데 노력에 비해 너무 고물이라 도둑이 조금 불쌍하기도 했다. 아마도 그 스마트폰을 보고 그 자리에서 던져버리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일은 파리에서도 있었다. 샹젤리제 한복판 주차장에서 지내고 있을 때 우린 큰 맘먹고 지하철표를 끊어 파리 여행에 나섰더랬다. 허름한 차림새 때문에 여행객처럼 보이지 않을 것 같았지만 지하철을 타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우리는 누가 봐도 영락없는 파리 여행자였으리라. 혜아와 손을 꼭 붙잡고 샹젤리제 역에서 지하철에 오르는데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앞에서 주춤거리는 어린 여자애들 두 명 때문에 우린 사람들에 떠밀려 잡고 있던 손을 놓쳤다. 정신없이 지하철 안으로 밀려 들어와 겨우 문 뒤쪽에서 다시 만나 손을 붙들고 서있자니 지하철에서는 소매치기가 많으니 조심하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우린 딱 봐도 가진 것도 없이 꾀죄죄한 몰골을 하고 있으니 아무도 우릴 털어갈 생각은 안 할 거라며 키득거리고 있는데 다음  역에서 지하철 문이 닫히는 순간 우리 발 앞에 무언가가 신경질적으로 툭 떨어졌다. 혜아의 조그마한 어깨 가방 안에 있던 개구리 동전지갑이었다. 맨 처음엔 혜아의 가방에서 빠져나온 거라고 생각했지만 가방은 덮개가 덮여 있어서 저절로 빠질 수가 없었다. 

우리를 보며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니 우리 앞에 서있던 어린 여자애들 두 명이 훔친 듯했다. 그러고 보니 지하철에 오를 때 분명 앞에 사람이 없는데 주춤거리면서 우리가 잡고 있던 손을 놓칠 수밖에 없게 만들었었는데 그때 혜아의 가방에 손을 넣어서 빼낸 듯했다. 하지만 스타벅스에서 커피 마실 돈도 없어 텀블러에 주스를 담아 놓고 하루 종일 앉아 있던 우리의 가방에 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개구리 동전 지갑에는 1유로도 채 안 되는 동전들 뿐이었고 거지들을 털었다는 생각에 신경질이 나서 내리기 전에 우리한테 다시 던져버린 것 같았다. 소매치기를 당하고도 웃기고 씁쓸한 건 파리에서 우리뿐이지 않았을까?


어찌 되었든 혜아의 핸드폰을 도난 당해 안타까웠지만 어차피 밴라이프를 하며 핸드폰을 쳐다보는 시간이 많지 않았고 필요한 연락이야 컴퓨터로 하면 되는 것이니 혜아는 괜찮다고 했다. 물론 밴라이프 몇 개월 간의 사진이 사라져 버린 것이 제일 아쉬웠지만 돈을 잃어버리거나 다친 것이니 아니니 천만다행이라고 서로 위로했다.

주차장에서 요란한 하루를 마무리하며 잠을 잔 다음 날 밝은 성격의 촬영 손님 덕분에 기분 좋게 스냅 촬영을 마치고 미련 없이 프랑스 덩케르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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