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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작가 Jun 15. 2021

런던 스카이가든 전망대 대실패기

무료전망대 관람 실패 쉽지 않습니다만



 

  휘몰아치는 바람 속을 헤매다 자리에 앉은 우리의 몰골은 그야말로 너덜너덜했다. 바람에 갈기갈기 찢어진 듯 머리카락도 옷매무새도 엉망이었다. 자리에 앉았는데도 한동안 정신이 멍했다. 이후의 일정이 모두 엉망이 되어버린 까닭이었다.      




런던브릿지에서 보이는 타워브릿지




  런던 브릿지를 건널 때부터 바람이 심하게 불어왔다. 강바람에 앞머리가 날려 사진을 찍으면 죄다 황비홍처럼 나오는데도 즐거웠다. 왜냐하면 우리는 런던의 아주 멋진 일몰과 야경을 보러 가는 길이었으니까! 마치 거대한 온실 속에 들어 있는 듯한 커다란 유리창, 공간을 가득 메운 식물들,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런던 풍경. 그곳에서 커피타임을 하며 해가 질 때까지 넋을 놓고 앉아 있을 계획이었다. 밤이 되면 반짝이는 런던의 야경을 내려다봐야지! 찾아보니 의자가 듬성듬성 놓여, 사람들이랑 많이 부대낄 것 같지도 않았고, 저녁식사도 가능해서 괜찮으면 그곳에서 저녁을 먹을 수도 있겠다, 하며 기대했다. 살인적인 입장료가 있을 것 같지만 입장료가 무료인 이곳! 이름마저 ‘스카이 가든’이다. 전망대 이름이 스카이 가든이라니! 우리나라 어느 빌딩에서 들어봄직한 ‘하늘정원’이라는 이름에는 감명한 적도 없었으면서 괜히 마음을 부풀려본다. 마음이 풍선 같아 둥실둥실 바람에 떠밀려 걷다 보니 어느새 빌딩 앞이었다. 


  문 앞에는 바람을 맞으며 직원들이 서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기도 전에 어떻게 왔느냐고 직원이 물었다.     

  -스카이 가든에 왔어요!    


  둥실둥실,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직원은 예약했냐고 재차 물었다. 예약은 안 했다고 하니, 직원의 대답이 길어졌다. 직원이 쏟아놓는 말들이 세찬 바람에 자꾸만 날아갔다. 잘 들리지 않았다. 무슨 말이지? 어디서 표를 끊어야 한다는 소린가?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곳인가? 오늘 쉬는 날인가?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재빠르게 생각해 봤다.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정신도 날아가기 일보직전이었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다른 직원이 와서 우리에게 잠깐 문 안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어찌나 바람이 센지, 무거운 이중 유리문이 훽- 젖혀졌다. 


  건물 안으로 들어오니 스카이 가든으로 올라가는 안내 표지판이 보였다. 몇몇 사람들이 그 표시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탔다. 우리에겐 대체 무슨 일인 걸까. 이번엔 직원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어야 하니까 일말의 정신줄을 꼭 쥐고서 숨도 안 쉬고 직원의 얼굴을 쳐다봤다. 직원이 꺼낸 말은,      


  -죄송해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올라가실 수 없어요.      


  정신줄이 반쯤 끊어졌다.      


  -예? 아... 지금 예약해도 안 되나요?     


  -죄송해요. 오늘은 예약이 다 찼어요.      


  탁, 하고 정신줄이 끊겼다. 우리는 그대로 다시 폭풍 같은 바람 속에 내던져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한 카페 안이었다. 비나 눈이 아니라, 바람을 맞아도 사람의 몰골이 이렇게 너덜너덜해질 수 있다. 기대했는데. 무려 12시간을 넘게 날아왔는데.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다시 언제 볼지도 모르겠는데. 햇빛과 런던의 풍경이 쏟아지는 유리창 앞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었는데. 구글에서 찾아본 스카이 가든 안의 풍경들이 환영처럼 펼쳐졌다. 환영 속에서는 이미 노랗게, 붉게, 검붉은 노을이 지고 반짝거리는 런던 위로 별도 달도 떴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못 들어간다니! 스카이 가든을 찾아보았을 때, 아마 어딘가에 그런 안내가 있었을 것이다. 어설프게 훑어버린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인터넷 예약제마저 원망하고 싶어 졌다. 인터넷 예약제가 없었으면 올라가려는 긴 대기 줄이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길바닥에 버려야만 했을 수도 있겠지.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면 올라가서 볼 수 있었을 텐데. 합리적이고 편리하고 냉정한 시스템 앞에서 우리는 불청객이었다.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일단은’이라는 단어를 붙잡아오기까지 숨을 돌렸다.      


  -일단은, 화장실에 다녀오자!      


  그런데 먼저 들어간 손님이 나올 기미가 없다. 줄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 몇몇이 포기하고 돌아갔다. 설마 죽은 거 아니야, 싶은 생각에 화장실 문을 노크했다. 그래도 나올 생각이 없다. 직원을 불러야 하나, 영국도 119가 아니라 나인원원인가, 이런 생각까지 닿았을 때야 한 여자가 나왔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매장을 빠져나갔다. 그때 해맑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괜히 빵 터졌다. 어쩌면 그때, 바람에 날아간 정신줄이 도로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커피를 시켜놓고 대책회의를 시작했다. 첫째, 우리는 스카이 가든에 다시 갈 수 있는가? 우리에게 남은 저녁은 내일 밤 뿐이었다. 모레는 저녁에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하지만 내일은 런던아이를 타고 야경을 볼 계획이었는데... 어쩌면 런던아이에서 보는 야경이 더 멋지지 않을까? 그래, 그럴 거야! 그렇다면 스카이 가든은 깔끔하게 안녕이다. 둘째, 지금 이후의 일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 런던의 일정이 짧았던 탓에, 그저 그날그날 할 수 있을 것만큼의 정보만 가지고 왔다. 가지 못하는 곳이 생기면 괜히 아쉬울까 봐. 그런데 이렇게 일정이 어그러지니 가야 할 곳이 퍼뜩 생각나지가 않았다. 그렇다면 일단...      


  소호로 가자! 어쩌면 뮤지컬을 보러 갈 수도 있고, 쇼핑을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산책만 해도 좋을 거야!      

  마지막 커피 한 모금을 가볍게 마시고 문을 열고 나섰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좋다! 






Sky Garden

정원의 도시 런던에서 '가장 높은 퍼블릭 가든'이다. 
35층에 다양한 식물로 실내 정원을 조성해 마치 거대한 온실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입장료는 무료! 하지만 예약은 필수다. (예약 못해서 못 올라가는 불상사를 겪지 않으려면...) 
전망대, 바, 레스토랑이 있다. 

예약은 이곳에서.
https://skygarden.london


Sky Garden 내부. 출처: unsplash


Sky Garden에서 이런 야경을 보고 싶었는데... 출처: unsplash
여러분은 예약해서 꼭 보시길.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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