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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작가 Jun 16. 2021

유럽에서 가장 큰 장난감 백화점, 햄리스

이곳은 Hamleys인가 개미지옥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나의 소원은 커다란 곰인형을 갖는 것이었다. 엄마와 함께 마트에 갈 때마다 마주치는 커다란 곰인형. 한아름에 안으면 내 품에 얼굴이 폭 파묻히게 되는 커다란 곰인형. 가슴에 하얗게 반달무늬가 있는 커다란 곰인형. 엄마의 꿈속에서 반달곰이었던 나는 마트에 갈 때마다 그 인형을 안고 엄마에게 물었다.      

  

  “이거 사 주면 안 돼?”


  초등학교 4학년, 그러니까 열한 살 때의 이야기다. 요즘 열한 살 아이들은 어떤 소원을 빌까. 아마도 좋아하는 아이돌의 콘서트에 가고 싶어 하지, 커다란 곰인형 같은 걸 갖고 싶다고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서른이 넘은 나는 아직도 갖고 싶은 인형이 있고 장난감이 있다. 왜냐하면 엄마의 대답은 늘 이랬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거 사 달라고 한다.”


  쓸데가 왜 없지? 잘 때 안고 자면 너무너무 행복할 것 같은데. 가끔 꾸는 악몽도 안 꿀 같은데. 친구에게 말하자, 친구는 이게 말했다. ‘우리 엄마는 먼지 쌓인다고 싫어해.’ 친구의 엄마처럼 먼지 쌓인다고 싫어하는 것도 아닌데. 엄마에겐 그저 쓸데없는 것이었다.      

 

  엄마가 자린고비라거나 모든 면에서 인색하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엄마는 지금도 늘 이렇게 얘기한다. ‘네가 해 달라고 하면 엄마가 빤쮸를 팔아서라도 다 해주지이~!’라고. 실제로 엄마는 무언가 해 주기로 마음먹었으면 최고로 해주려고 했다. 옷을 사도 싼 것보단 기왕이면 오래 입을 수 있는 것으로, 책이라면 언제든 몇 권을 사든 다 사주었고, 6학년 땐 화이트와 우드 톤의 제일 좋은 책상과 옷장과 침대를 사주었다. 좋은 걸 사야 오래 쓸 수 있다는 신조였는데, 실제로 그때 산 책상과 옷장은 지금 엄마의 서재가 되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런데 장난감은 단 한 번도 사준 적이 없었다.


  몇 달을 마트에 갈 때마다 퇴짜를 맞다가, 11월의 어느 날 마트에서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럼 크리스마스 선물이랑 내 생일선물이랑 합쳐서 이거 사 줘.”


  그리고 그날 커다란 곰인형은 우리 집에 왔다. 까맣고 동그란 눈, 베이지 색의 털, 하얀 반달. 침대에 눕히면 자리를 3분의 1이나 차지했다. 비좁은 침대 위에서 곰인형을 끌어안고 냄새를 맡았다. 베이지색의 털실 냄새, 솜 냄새, 그 위에 옅게 깔린 먼지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내가 스무 살이 되던 해까지 곰인형은 곁에 있어주었다.                







  유년의 기억은 얼마나 오랫동안 흔적을 남기는 걸까. 지금도 나는 인형을 보면 갖고 싶어 진다. 다 꺼내놓을 수도 없어 창고에 인형이 쌓여 있는데도 가끔은 또 쓸데없이 인형을 사고 만다. 최근엔 플레이모빌에 빠져버렸는데, 갈색의 동그란 눈과 동그란 얼굴이 참 예쁘다. 직업별로 다양한 캐릭터들도 많고, 소품 디테일도 뛰어나서 감탄하게 된다. 웨딩사진을 찍을 때도 플레이모빌 웨딩 커플 피규어랑 같이 찍었는데 맘에 든다.


  해맑은 누구 못지않은 건담 덕후다. 유년시절에 형이 건담을 만드는 걸 보고 같이 만들기 시작하면서 좋아했다고 한다. 건담도 한두 푼 하는 게 아니라서 어렸을 땐 그림의 떡이었다가 어른이 되어 조금 여유가 생긴 다음에는 갖고 싶은 걸 하나씩 사는 재미를 느낀다고 했다. 신혼집 이사를 앞두고 해맑의 자취방에서 함께 짐을 싸다가 건담만 두 박스가 되었다. 대체 이걸 다 언제 만드는 거냐고 물었더니, 솔로일 때 주말에 외로움을 달래며 만들었었다고 했다. 부서지거나 망가지지 않게 꼼꼼히 포장을 하고 표기를 해 두었다.      


  [오빠의 외로움들]      


  “오빠 이제 외롭진 않을 거니까, 봉인 해제될 일은 없겠다, 그치?”


라고 말하며. 물론, 결혼 이후로 신혼집에 오빠가 만든 건담이 넘쳐나고 있다.      




Hamleys



  장난감을 좋아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두 사람이 소호에서 우연히 마주친 곳은, 버버리 본점도 아니고, 유서 깊은 백화점도 아니고, 바로 햄리스였다. 유럽에서 가장 큰 장난감 백화점! 마치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나오는 윌리웡카 공장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비눗방울과 풍선이 반겨주는 곳!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층부터 7층까지 넘나들며 신나게 뛰어다니다 보니, 햄리스에서만 4시간이 지났다. 손에는 보드게임과 플레이모빌이 잔뜩 들려 있었다. 혼이 쏙 빠진 얼굴로 햄리스를 나왔다.     




햄리스엔 의외로 우리같은 어른들이 많았다 :)
펭귄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리 딸의 애착인형은 펭귄인형이다. (소오름...)
나의 최애 장난감, 플레이모빌
레고로 만든 엘리자베스 여왕




와, 정말 위험한 개미지옥이었다.                


         


Hamleys
https://www.hamleys.com/

유럽에서 제일  장난감 백화점.
7층으로 되어 있는 건물에 세상 모든 장난감들이  들어 있다.
당시 우리는 이곳에서만 파는 플레이모빌 근위병, 런던 경찰을 사려고 방문했는데
지금은 한국에서도  구할  있다.
그래도 기념품은 현지에서 사는 기분도 있으니, 이곳에 들린다면 사기를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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