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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작가 Jul 27. 2021

펭귄투어를 못 간다고요?!

우수아이아에 가는 건 펭귄투어 때문에 가는 건데...

 


아르헨티나의 국민 맥주 낄메스 



  맥주와 라면으로 든든하고 따뜻하게 배부른 밤. 맥주 한 모금을 남겨두고 우리는 내일 가는 곳의 이름을 되짚으며 조용히 들떴다. 우수아이아. 어느 머나먼 나라의 말 같기도 하고, 홋카이도 원주민의 말 같기도, 하와이 원주민의 말 같기도 한 이름. 어쩌면 이곳의 이름을 남겨두고 사라졌을 부족의 말일지도 모르는 이름을 가만히 짚어보았다. 우수아이아. 나에게 우수아이아는, 세계의 끝. 해맑과 내가 함께 온 신혼여행의 종착지였다. 





세계 최남단에 있는 등대


  우수아이아는 아르헨티나 최남단이자 남미대륙의 가장 끝에 위치한 도시다. Fin del Mundo, 그러니까 ‘세계의 끝’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우수아이아를 이야기 할 때 꼭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양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투게더’이다. 장국영과 양조위가 보영과 아휘로 만난 영화.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두 사람의 이야기가 그려지는데, 우수아이아에 있는 등대가 영화에 나온다. 세계의 끝에 있는 등대. 우수아이아로 가기 전에 해맑과 함께 보고 싶었는데, 결국 ‘해피투게더’를 보지 못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우수아이아가 더욱 애틋해질 것 같기도 했는데... 이왕 보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니, 우수아이아의 첫 기억은 우리의 기억으로 물들이고, ‘해피투게더’는 그 다음에 보기로 했다. 



"우수아이아에 가면 펭귄투어를 갈 거야!"


  한모금 남은 맥주를 조금 아껴 마시곤 신나게, 조금은 결연하게 말했다. 남극에만 사는 펭귄. 동물원에서나 겨우 한 두 마리 볼 수 있는 펭귄. 우수아이아는 비글 해협에 위치해 있는데, 이 비글 해협에는 수많은 섬들과 암초들이 있다. 여름이 되면 산란기를 맞이한 팽귄들이 이곳으로 올라와 알을 낳고, 새끼를 부화해 겨울엔 다시 남극으로 내려간다. 


  우수아이아에서는 펭귄들의 서식지인 섬으로 유람선을 타고 투어를 갈 수 있는데, 여러 투어사들 중에 딱 한 군데에서는 직접 펭귄 섬에 내려서 산책을 할 수 있는 코스도 있었다. 가능하면 펭귄 섬에 내려 둘러보고 싶었는데, 이것 역시 정보가 확실하지 않았다. 오전 8시 출발이라는 후기도 있었고, 오후에 출발했다는 후기도 있었다. 당연히 인터넷으로 예약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 어쩔 수 없이 예약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오늘처럼 또 우수아이아에 도착해서 투어사를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어... 근데 펭귄투어 이제 끝났다던데요."


  우리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여행객이 넌지시 말을 건넸다. 맥주를 마시고 있던 여자 둘이었다. 


  "진짜요? 끝났다고요?!"


  청천벽력같은 말! 펭귄 투어를 얼마나 기대했는데. 


  "저희가 며칠 전에 우수아이아에서 넘어왔는데, 저희 다음 날 투어 가는 사람들이 못 갔다 하더라고요. 끝났다고. 아마도 시즌 끝 무렵이라..."


  3월 말. 남반구인 아르헨티나는 곧 겨울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새끼를 어느 정도 키워낸 펭귄들은 다시 남극으로 넘어갈 것이다. 펭귄들이 떠난 4월에서 9월까지는 운이 나쁘면 펭귄들을 보지 못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우리는 정말 펭귄을 못 보는 걸까? 


  "우리 오늘 빙하 투어에 운을 다 쓴 거 아니야? 진짜로?"


  해맑이 내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 


  "아아... 펭귄... 설마..."


  순식간에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마음이 축 늘어져버렸다. 얼마나 기대했는데. ‘남극의 눈물’ 다큐멘터리를 보고 또 보고, 유투브에서 펭귄 영상도 찾아보고, 펭귄 투어 후기도 얼마나 찾아봤는데... (할 수는 없지만) 눈보라가 몰아치는 추운 겨울, 황제펭귄들이랑 함께 허들링을 하는 게 내 꿈이었는데... 


  이곳에 있는 펭귄들이랑 허들링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지만, 펭귄들을 꼭 보고 싶었다. 동물원에서 만나는 펭귄들 말고, 진짜 삶을 살고 있는 펭귄을. 언젠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하얀색 털의 북극곰이, 동물원 철창 속에서 온 몸에 푸른 이끼가 뒤덮여 초록색인 것을 보고는 그 뒤로 동물원엔 가지 않았다. 동물원 우리 속에 있는 동물들은 하나같이 다 표정이 없다. 눈에는 얼마나 울었을지 모를 만큼 눈물자국과 눈곱이 남아 있고,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지 오래다. 걷고 뛰고 놀아야 할 동물들은 미동이 없다. 아무리 이름을 부르고 손을 흔들어 보아도 반응이 없다. 

  동물을 키워 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동물에게도 표정이 있다. 눈동자의 생기와, 초점과, 눈꺼풀의 움직임과, 입모양과, 걸음걸이에 모두 표정이 있다. 내가 본 동물원 속의 동물들은 모두가 희망을 잃은 채 그곳에 있었다. 아무렴, 그렇지 않겠는가. 북극에 있어야 할 북극곰은 40를 웃도는 폭염 속에 온 몸을 뒤덮는 이끼와 싸워야 하고,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 속에 있어야 할 사막 여우는 영하를 가볍게 뛰어 넘는 추위와 눈을 맞으며 살아가야 한다. 이곳은 살아 있는 동물이 사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먹고 숨 쉴 뿐, 죽은 영혼들이 있는 곳. 동물을 너무나도 좋아하기에, 어느 순간부터는 동물원에 가기가 미안해졌다. 그래서 펭귄을 보러 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동물원이 아니라, 진짜 펭귄이 사는 섬으로. 


  "펭귄을 만날 수 있을까, 오빠?"


  "이궁..."


  풀이 죽은 나를 가여워하는 오빠의 목소리.  



우수아이아에서 만날 수 있는 마젤란 펭귄. 여름이 되면 이곳에 알을 낳고 아기펭귄을 키우러 온다.  *출처: Unsplash



  "펭귄을 만나게 해 주세요, 한번 만요, 제발요!"


  해맑이 웃었다. 내가 비장의 기도를 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한번만요, 제발요’라고 말하면 무조건 들어줘야 하는 우리의 암묵적인 기도.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말하곤 피곤했던지 해맑은 요란하게 곯아떨어져버렸다. 해맑의 콧소리가 드르렁 드르렁 울리는 밤. 펭귄을 못 만나면 어떡하나, 싶은 마음에 늦도록 이불을 뒤척인 밤이었다. 



2017. 3. 24.

지구를 반바퀴 돌아, 이곳에 있다. 
내일은 세계의 끝으로 간다.
신혼여행으로 꼭 가고 싶었던 곳. 
비행기만 36시간을 타야 도착하는 곳. 
내일, 마지막 비행을 앞두고 이상하게 잠이 안 온다. 
꿈을 꾸면, 자꾸만 꿈에선,
이 여행이 끝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친구들에게 아쉽다고, 또 가고 싶다고, 너무 좋았다고 하는 꿈을 꾼다. 
내일이 지나면 기분이 어떨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대체 누구와 오게 될까, 내가 10년 넘게 손꼽아 기다려왔던 사람은 
며칠 동안 매일 비행기를 타야하는 강행군에 지쳐 코를 골고 있다. 
그가 코 고는 리듬에 맞춰 마음이 두근두근 했다가, 부글부글 했다가 한다. 

내가 더 세게 코 골아야지! 





*내가 우울할 때마다 보는 펭귄 영상.
https://youtu.be/Ef67oKXxBCY

펭귄이 넘어질 때, 다른 펭귄들이 내는 소리인데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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