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 2
드디어 유람선을 타고 펭귄 투어를 떠났다!
펭귄 투어에 가지 못하면 어쩌나 싶었던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은, 이전 글에 이야기를 남겨두었고...
펭귄 투어를 못 간다고요?!
https://brunch.co.kr/@dear-days/50
캔 아이 고잉 투 펭귄 투어?
https://brunch.co.kr/@dear-days/53
이제 홀가분한 마음으로 펭귄 투어를 떠난다! :)
우수아이아는 아르헨티나 최남단에 있는 도시다. Fin del mundo. '세계의 끝'이다.
실제로 남아메리카 대륙의 끝, 섬으로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있는 대륙의 끝에 있는 도시는 칠레의 '푼타 아레나스'다. 그렇다면 섬을 통틀어서 세계 최남단에 있는 도시는 어딘가 하면 칠레의 '푸에르토 윌리엄스'라는 아주 작은 마을이 있다. 하지만 이들보다 더 아르헨티나가 먼저 우수아이아를 '세계의 끝'이라 명명했으니, 지금까지 우수아이아가 '세계의 끝'의 대명사가 되었다.
우수아이아는 '세계의 끝'이라는 타이틀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긴 단어'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우수아이아의 원주민인 야간(Yaghan)족이 쓰던 단어로, 1993년 기네스북에 등재된 엄청난 단어이기도 하다. 어떤 단어냐면,
Mamihlapinatapais
한 번에 발음하기도 힘든 이 단어는, 발음하면 [마밇러삐나따빠이].
이 단어가 기네스북에 오르게 된 이유는, 세계에서 가장 뜻이 긴 단어이자, 세상에서 가장 간명한 단어, 그와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다른 언어로 번역하기가 난감한 단어라는 이유였다.
단어의 뜻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것이면서도 자신은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어떤 일에 대해서 상대방이 자원하여 해 주기를 바라는, 두 사람 사이에서 조용하면서 긴급하게 오가는 미묘한 눈빛'이다. (한국말로 하면 '조장하실 분?') 와우! 19세기까지 이 지역에 살았던 야간족들 사이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러한 상황이 하나의 단어로까지 만들어진 것일까!
우리가 이런저런 생각들에 빠진 사이, 유람선은 비글해협 사이를 유영하는 중이었다.
처음 도착한 곳은 바위섬. 섬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게 펭귄인가? 하고 들떴는데, 가이드가 펭귄새라고 했다. 펭귄을 닮은 새라고. 진짜 이름이 펭귄새인가? 싶어 찾아봤더니 '바다가마우지'라는 새다.
두 번째로 도착한 바위섬. 처음에는 섬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았는데, 자세히 보니 바다사자들이 일광욕을 하는 중이었다. 비글해협은 대서양과 태평양이 만나는 곳인데다, 해협 사이사이 수많은 바위섬들이 있어 동물들에게는 지상낙원이다.
'비글해협'이라는 이름은 찰스 다윈의 탐사선인 비글 호에서 딴 이름인데, 다윈은 이곳을 보고 '이곳의 녹주석처럼 푸른 빙하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기록했다 한다.
드디어 세계의 끝에 있는 등대에 도착했다. 등대는 거창하거나 화려할 것 없이 작고 아담했다. 거창한 타이틀과는 다르게, 등대 본연의 모습 이외에 그 어떤 겉치레도 없었다. 영화 <해피투게더>에서 보영(장국영)이 보고 싶어 했던 등대이자, 보영을 사랑한 아휘(양조위)의 슬픔이 묻혀 있는 등대라는 사실이 이 등대를 따뜻하게 비추고 있는 것 같았다.
등대를 떠나 40분쯤 배를 타고 달렸을까. 드디어 펭귄 섬에 도착했다!
유람선은 해안가 가까이에 정박하고 사람들은 배 위에서 펭귄들을 구경했다. 사람들이 몰려오자 펭귄들도 우리가 신기했는지, 우리를 빤히 쳐다보며 구경하는 펭귄들도 있었다. 귀여운 펭귄들! 사람들은 너도 나도 카메라를 들고 펭귄들을 찍기 바빴는데, 취재열기가 어찌나 뜨거웠던지. 생각해보면 이 투어에 온 사람들은 모두 펭귄에게 진심인 게 틀림없다.
세상에 이렇게 귀여운 생명체가 있다니.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재밌을 것 같은 펭귄들.
언젠가 남극에 가서 펭귄들이랑 같이 허들링 하고 싶다.
다음 생에 펭귄으로 태어나야 하려나.
짧은 구경을 끝으로 유람선은 다시 우수아이아를 향해 출발했다. 우수아이아에 며칠 더 묵었다면, 매일매일 펭귄을 보러 떠났을 텐데! 벌써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돌아가는 배 안에서 가이드의 짧은 이벤트가 있었는데 비글해협 투어 증서를 발행해 주었는데, 그게 뭐라고 괜히 좋았다.
돌아가는 길이 한참이라 배 안에서 기념품으로 엽서를 한 장씩 사서 서로에게 썼다. 그리고 우수아이아 우체국에서 집으로 보냈다. 세계의 끝에서부터 집으로 오는 엽서를 기다리는 일이 벌써부터 행복했다.
세상의 끝에 있는 등대와 새들과 바다사자의 섬,
마지막으로 펭귄 섬을 들러 돌아오는 길.
사람들이 뱃머리에 우르르 몰려 있다.
무슨 일인가 하고 가 보니,
먼바다 너머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사람들.
저기 고래가 있어요! 오늘 여러분은 정말 운이 좋네요. 고래까지 보다니. 고래를 보는 날은 정말 운이 좋은 날이에요.
되레 가이드가 들뜬 목소리였다.
하지만 고래는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바다의 물결을 가만히 보세요.
물결이 소용돌이치는 부분이 보이죠?
거기 고래가 있는 거예요.
소용돌이 같은 물결이 일었다, 사라졌다, 뚫어지게 쳐다보기를 멈추지 않던 그때,
물기둥이 치솟았다.
고래가 만든 것이었다. 순간은 찰나처럼 지나가버리고, 셔터를 누르는 손은 그보다 느렸다. 셔터를 누르길 포기하고, 먼바다 너머를 응시했다. 아주 살짝, 고래가 등을 보이고 사라졌다. 사람들은 동시에 감탄을 내뱉었다. 정말 멋진 순간이었다. 고래를 만날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지구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펭귄 투어 티켓팅에 성공하고, 뜻밖의 고래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고래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항구로 돌아오는 길.
노을이 지면서 세상이 온통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우리는 세계의 끝에서
고래의 배웅과 노을의 환영을 받으며 그렇게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