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 이게없다구?!
공원에서 초리조 샌드위치와 화이트 와인을 마실 때까지만 해도 좋았지. 오리들에게 먹을 걸 줄 듯 말 듯 (*팔레르모 공원에서는 오리들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놀려댈 때까지만 해도 좋았지. 기분이 부드럽게 풀어져 호숫가에서 덩실덩실 뛰놀 때까지만 해도 까맣게 몰랐다.
지금, 이렇게, 화장실이, 급한지! 오 마이 갓!
서둘러 공원 안에 간이 화장실이 있을 만한 곳을 둘러보았다. 호숫가 근처에도, 장미정원 근처에도 화장실이 보이지 않았다. 차들이 다니는 큰길을 건너 천문대 건물까지 가 봤으나, 설상가상 천문대도 리모델링 중...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어디에도 화장실이 보이지 않자, 다급함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안 돼, 지금은 안 돼! 햇볕은 따사롭고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 틈에서 해맑과 나는 경보 선수처럼 앞다투어 걸었다.
아 제발, 제발, 화장실 좀....!
그때 번뜩, 오는 길에 봤던 지하철 역이 생각났다. 그래, 지하철 역 안에는 화장실이 있겠지.
"오빠! 지하철 역으로 가자!"
공원에서 지하철 역까지는 족히 700미터쯤? 결코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걸어가는 동안 간이 화장실이 나오면 감사하고, 아니라도 일단 지하철 역까지만 가면 되니까 희망은 있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공원. 두 사람이 양 팔을 가득 뻗어야 안을 수 있을 만큼 큰 나무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 사이 나는 다급함을 애써 잊어야만 했다. 다급함에 집중할수록 물밀 듯이 밀려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일으킬 것만 같았다. 제발, 이것들아 나는 신혼여행 중이란 말이다! 이번엔 한쪽에서 취기가 확- 올라왔다. 빨리 걷느라 심장박동이 빨라진 탓인지 잠잠했던 취기들이 화끈화끈 올라왔다. 위로는 취기가, 아래로는 다급함이... 아 정말 미치겠다. 왜 이 공원엔 화장실이 없냐구요!
한참을 걸어온 것 같았는데, 이제야 개아범이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나무 그늘 밑에서 쉬고 있는 저 개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누고 싶을 때 눌 수 있는 저 개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말이다. 신혼여행에 와서, 해맑이 ‘오늘이 제일 좋다’고 말한 그 순간에, 30분째 화장실을 찾아 헤매는 신부의 모습이라니. 인생이 시트콤이구나 싶었다. 다급함도 내가 불쌍했던지, 잠깐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지구 반대편에서 한낮에 취기가 올라 화장실을 찾아 헤매는 인생. 아, 내 인생. 입에선 알 수 없는 곡조가 흘러나왔다. 어디서 들어본 트로트 같기도 하고 어딘가 구슬픈 곡조.
흐물텅~ 흐물텅~ 흐물텅~ 인생~~~
흐물텅~ 흐물텅~ 살다 간다네~~~
해맑이 노래를 듣더니 빵 터지며 무슨 노래냐고 물었다. 무슨 노래긴 무슨 노래야. 내가 방금 만든 노래지.
영원 같은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지하철 역에 도착했다. SUBTE라고 적힌 노란색 표지판이 이렇게 반가운 적이 있었나. 그전까지는 무서워서 발길을 내딛기가 무서웠던 곳인데 한달음에 내려갔다. 역 안은 조그맣고 컴컴했다. 개찰구와 역무원이 있는 매표소가 전부. 둘러봐도 화장실 표식이 보이지 않아, 역무원에게 물어봤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여긴 화장실 없어요."
오 마이 갓! 세상에 이 나라 사람들은 화장실도 안 가나, 대체 왜 공공장소에 화장실이 없단 말인가! 잠시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이럴 땐 만국 공통어가 있지.
맥도날드 어디에 있어요?
맥도날드를 찾으면, 화장실을 갈 수 있다.
"근처에 맥도날드 없어요."
미쳤나 봐! 여기 맥도날드가 왜 없어! 아 정말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기분이었다. 난 이제 끝났구나. 망했다. 길에서 터져버릴지도 몰라. 엘리베이터 안에서 오줌 싸는 어린애가 된 마냥 울고 싶었다.
"여기로 올라가면 버거킹이 있어요."
그때, 나를 살리는 말이 들렸다. 버거킹!
"그라시아쓰!!!!!"
그 뒤론 내가 어떻게 계단을 올라가 버거킹에 들어가서 2층에 있는 화장실까지 올라갔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정말로.
단지, 부에노스아이레스 버거킹에서 나는 최고의 카타르시스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