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든이라서 괜찮아요

분리가 아닌 공유를 배우는 교실

by Ms Lara

큰아이가 1학년이던 시절, 하교 후 스낵을 먹다 말고 아이가 툭 던진 말 한마디가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엄마, 오늘 헤이든(Hayden)이 내 머리를 때렸어요. 많이 아팠는데, 헤이든이라서 괜찮아요."

깜짝 놀라 아이의 머리를 살피며 물었다. "선생님한테 말했어? 선생님은 뭐라셔?" 아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Miss F가 내 머리 괜찮은지 체크하고, 헤이든을 데리고 나갔어요."

당시의 나는 혼란스러웠다. '헤이든이라서 괜찮다니? 그게 무슨 뜻이지?', 'Miss F는 또 누구지? 담임 선생님 말고 서플라이(대체) 선생님이 오셨나?'

그때만 해도 나는 캐나다 학교에 EA(Educational Assistant)라는 존재가 있는지, 한 교실 안에 'Special Needs(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이 함께 공부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아들 역시 그 친구가 '자폐'라거나 '장애'가 있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에게 헤이든은 조금 독특한 행동을 하지만 여전히 같은 반 친구인 '헤이든'일뿐이었다.


프레임이 없는 아이들의 세계

세월이 흘러 내가 직접 EA가 되어 교실 현장에 서 보니, 그때 아들의 말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비로소 선명해졌다.

캐나다의 교육은 'All-inclusive(전원 포용)'를 지향한다. 장애가 있거나 발달 속도가 다른 아이들을 따로 떼어 특수학교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일반 학급 안에서 모두가 함께 시간을 공유하도록 가르친다. 자폐 스펙트럼이나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EA의 지원을 받으며 같은 공간에서 소통하고 공부한다.

이 시스템의 가장 놀라운 점은 아이들이 타인을 정의하는 방식이다. 아이들은 친구에게 '자폐증 환자'라는 프레임을 씌우지 않는다. 그저 "헤이든은 소리에 민감해", "J는 기분이 나쁘면 가끔 소리를 질러"라는 식으로 그 아이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아들이 말했던 "헤이든이라서 괜찮다"는 말은, 친구의 다름을 이미 자신의 일상으로 수용했다는 뜻깊은 고백이었던 셈이다.


“잘못된 건 없어, 조금 다를 뿐이야"

물론 모든 순간이 평화로운 것은 아니다. 가끔 J나 L이 돌발 행동을 하면, 주변 아이들이 신기한 듯 쳐다보거나 낄낄거리며 웃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나는 EA로서 아이들에게 나직이 말해주곤 한다.

"얘들아, 우린 모두가 조금씩 다르게 생겼지? J는 우리와 세상을 보는 방식이 조금 더 다를 뿐이야. 그래서 내가 J가 세상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을 하는 거란다. J의 행동은 틀린 게 아니야. 우리와 조금 다를 뿐이지."

나의 이 짧은 설명에 아이들은 금세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각자의 놀이에 집중한다. '다름'을 '틀림'으로 해석하지 않는 법, 누군가의 불편함을 당연하게 도와주는 법을 아이들은 교과서가 아닌 매일의 교실 풍경 속에서 몸소 배우고 있다.


함께 성장한다는 것의 가치

EA로 일하며 가장 보람된 순간은 내가 맡은 아이가 성장할 때만이 아니다. 그 아이와 함께 지내며 더 넓은 마음을 갖게 된 반 친구들의 성장을 목격할 때, 나는 이 직업의 진짜 가치를 느낀다.

분리된 공간에서 보호받는 것보다, 조금은 부딪히고 소란스럽더라도 함께 섞여 지내는 것. 그것이 아이들이 장차 살아갈 진짜 세상을 배우는 가장 완벽한 교육임을 이제는 안다.

아들이 1학년 때 보여주었던 그 무해한 이해심이 지금 내 눈앞의 아이들에게서도 보일 때, 나는 다시 한번 다짐한다. 아이들의 세상이 '다름'이라는 이유로 단절되지 않도록, 그 사이를 잇는 든든한 다리가 되어주겠노라고.





매거진의 이전글내 입은 침을 뱉는 게 아니라 미소 짓기 위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