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엄마한테 육천 원을 받아
동네 미용실에서 똑 단발을 했던 기억이 난다.
만 원 한 장이면 샴푸부터 컷
드라이까지 모두 가능하던 시절.
‘라떼’의 기억은 늘 이렇게 소박하고 선명하다.
하지만 캐나다의 미용실 물가는 그야말로 사악하다.
샴푸와 스타일링 비용을 따로 계산하고
팁까지 얹어주면 속이 쓰릴 정도다.
그래서 머리가 ‘추노’가 되기 직전
집에서 미리 머리를 감고 미용실로 달려가 ‘애기씨’로 환생하는 것이 현실적인 생존 전략이 되었다.
진짜 문제는 쑥쑥 자라는 아들놈들의 머리칼이었다.
돌아서면 다시 자라 있는 머리를 보다 못해
결국 월마트에서 바리캉 세트를 샀다.
유튜브로 공부를 마친 뒤 맞이한
결전의 토요일 오후 2시.
한국에서 친정엄마가 김치를 싸서 보내주셨던
분홍 보자기를 아이들 목에 두르고
빨래집게로 단단히 고정했다.
바리캉을 켜자마자 들리는 ‘덜덜덜, 엥엥엥’ 소리에
내 손까지 파르르 떨렸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라라 원장이다.’
첫 번째 손님은 제이콥.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투블럭 스타일을 해주겠다며
호기롭게 큰소리를 쳤다.
뚜껑 머리를 묶고 바리캉을 위아래로 움직이는데
어머나! 제법 소질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뚜껑 머리. 바리캉만으로는
각이 나오지 않아 숱가위를 들고 ‘가위손‘처럼
정원 가드닝을 하듯 사각사각 머리칼을 잘라냈다.
“다 됐다!” 제이콥 등을 탁탁 쳐서 보낸 뒤
다음은 둘째 에이든 차례.
우리 집 순둥이 에이든은 곱상한 얼굴에 투블럭보다는 ‘커튼 머리’가 더 어울릴 것 같았다.
다시 분홍 보자기를 둘러주고 아까보다 한결 자신감
있게 리듬을 타며 위아래로 쓱싹쓱싹.
스스로가 얼마나 대견하던지
‘그래, 오늘 미용실 값은 굳었구나’ 하는 생각에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마지막 손님인 알씨는 회사에 가야 한다며
한사코 거부했다.
ok! 당신은 동네 이발소 제임스한테 가는 걸로.
쌀롱 영업을 마무리하며 빗자루질을 하는데
머리를 감고 내려온 아이들이 서로를 보며
자지러지게 웃는다.
“Jacob, you look like a broccoli!“
“Aiden, you look like a mushroom!“
배를 잡고 구르는 아이들을 보니 내 눈에도 영락없는 브로콜리와 양송이버섯이었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끝까지 당당한 ‘라라 원장’이어야 했다.
“얘들아! 이게 바로 한국에서 제일 유행하는 스타일이라니까!”
아이들은 초등학교 내내 이 ‘라라 원장’에게
머리를 맡기다 중학생이 되어서야 제임스 이발소를
찾기 시작했다.
지금 그때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면 웃음이 터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 돈 좀 아껴보겠다고 애들을 야채 코너의
브로콜리와 버섯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덕분에 우리 가족에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추억 하나가 생겼다.
서툰 엄마의 가위질에도 토요일 오후 2시
오픈하는 라라네 쌀롱에 군말 없이 앉아주던 아들들.
그때 어린아이들이 보고 싶다.
브로콜리와 양송이버섯 같은
작은 머리칼을 흔들며 웃던, 그 아이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