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be Step-mom

편견 없는 시선

by Ms Lara

Miss Lara, 제 생일 파티에 올래요?

킨더반 아이에게 수줍은 생일 초대장을 받았다. 삐뚤삐뚤한 글씨로 “Miss Lara, 다음 주 내 생일 파티에 오세요!”라고 적힌 종이를 보니 절로 웃음이 난다. 아이들은 가끔 나를 가르치는 어른이 아니라 그저 자기들보다 조금 더 몸집이 큰 친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 무해하고 계산 없는 친근함 속에 있으면 나 역시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지는 기분이 든다.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 아이들

일 학년 야외 활동 시간 서너 명의 아이가 모래 박스에 둘러앉아 소꿉놀이를 시작했다. 모래로 케이크를 빚고 나뭇가지와 잎사귀로 데코레이션을 마친 아이 하나가 내게 케이크를 내밀었다.


"Mom, do you want some cake?"


나를 ‘엄마(Mom)’라고 부르는 아이의 말에 나 역시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Sure! I also want some coffee, please!"


그렇게 나는 잠시 그 아이의 엄마가 되어 모래 케이크를 대접받았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어른의 자리에서 잠시 내려오는 기분이 든다.


모래 박스 위에서 벌어진 ‘엄마 쟁탈전’

잠시 담당 학생인 J를 살피러 자리를 비운 사이 놀이판이 커졌다. 인원이 늘어나자 ‘엄마’ 역할을 하겠다는 아이가 둘이나 생겨 실랑이가 벌어진 것이다.


"내가 엄마야!"


"아니야, 내가 먼저 했어!"


팽팽한 기싸움이 이어지던 그때 지켜보던 한 아이가 아주 명쾌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Ok! You can be Mom, and you can be Step-mom."
(좋아! 네가 엄마 해, 넌 새엄마하고.)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옆에 있던 다른 아이도 냉큼 자기 역할을 찾는다.


"그럼 난 스텝시스터(Step-sister) 할게!"


순식간에 갈등이 해소되었다. 누구 하나 “엄마가 왜 둘이야?”라거나 “새엄마는 좀 이상해”라고 토를 달지 않았다. 다양한 가족 형태가 아이들의 놀이 문화 속에 고스란히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모습이었다. 정해진 틀에 가두기보다 주어진 상황에서 각자의 자리를 찾아 즐겁게 놀이를 이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마이크는 좋겠다, 아빠가 둘이라서!

사실 이런 문화적 차이를 처음 맞닥뜨렸을 때, 나는 꽤 당황했었다. 우리 둘째 아이가 킨더가든에 다니던 크리스마스 무렵이었다. 아이는 친구 마이크를 몹시 부러워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마이크는 진짜 좋겠어. 아빠가 둘이라 크리스마스 선물을 두 개나 받는대요!"


"어…? 어떻게 아빠가 둘이야?"


"Daddy랑 Step-dad요!"


순간 나는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잠깐 멈칫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걸 재혼 가정이라고 설명해야 하나? 아니면 복합 가정(Blended family)부터 알려줘야 하나?’ 어른인 내가 단어 선택에 고심하는 동안, 아이에게 중요한 건 마이크의 가정 형태나 복잡한 관계도가 아니었다. 그의 관심은 오직 하나였다.

‘선물 두 개!’

마이크는 그저 아빠가 두 명이라 사랑도 선물도 두 배로 받는 억세게 운 좋은 친구일 뿐이었다.


규정되지 않은 사랑의 형태

캐나다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가족을 어떤 ‘형태’로 미리 정의해 두지 않는 것 같다. 그들에게 가족은 그저 나를 사랑해 주고 함께 케이크를 나눠 먹고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주는 사람들이다. 엄마가 둘이든 아빠가 둘이든 혹은 할머니와 살든 상관없다. 나를 아껴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하다.


"You can be Step-mom."


그 명쾌한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맴돈다. 어쩌면 우리 어른들이 복잡하게 생각하는 가족의 정의는 아이들이 모래 박스 위에서 쌓아 올린 성보다 훨씬 단순한 것일지도 모른다. ‘누가 내 곁에 있는가’보다 ‘어떤 사랑을 나누고 있는가’가 더 본질적이라는 사실을 나는 아이들의 소꿉놀이를 지켜보며 조용히 깨닫는다.


나를 아껴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게 누구든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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