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10월이 시작될 무렵 우리 킨더반에 C가 찾아왔다.
갓 캐나다에 도착한 우크라이나 아이였다. 학교는 분주해졌다. 우크라이나 가정을 지역사회와 연결하는 일부터 전쟁의 트라우마가 교실 안까지 따라오지 않도록 환경을 세심하게 조율하는 일까지. 어른들은 저마다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공을 들였다.
다행히 옆 반에는 I가 있었다. 부모님이 우크라이나 출신인 같은 또래 아이로 캐나다에서 태어났지만 집에서 모국어를 쓰며 자란 아이였다. 낯선 땅에 홀로 던져진 C에게 I는 ‘말이 통하는 유일한 친구’였다. 학교는 두 아이의 정서적 유대를 위해 자유놀이 시간마다 I가 우리 반으로 건너올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I는 매일 우리 반 문을 열고 들어올 때마다 세상에서 가장 막중한 임무를 띤 요원처럼 비장했다.
C는 늘 쑥스러운 표정으로 “little English”라고 수줍게 말했지만 사실 킨더반 수준으로 보면 눈치도 빠르고 말귀도 꽤 알아듣는 편이었다. 그런 C를 전담 마크하기 위해 매일 15분씩 원정을 감행하는 I의 태도는 사뭇 엄숙하기까지 했다.
같은 또래임에도 불구하고 I는 마치 자신이 C의 보호자라도 된 양 어깨에 힘을 팍 주고 나타났다.
하루는 선생님이 웃으며 물었다.
“I, 오늘도 C랑 놀러 왔니?”
I는 미소 한 자락 없이 손사래까지 치며 아주 당당하게 대답했다.
“No, I am helping C!”
그저 놀러 온 게 아니라 자신만이 수행할 수 있는 특별한 임무가 있다는 저 단호함.
그런데 그 책임감 넘치는 선언이 무색하게도 I는 카페트에 털썩 주저앉자마자 C는 뒷전이었다. 두 손은 이미 레고를 조립하느라 바빴고 입은 다른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드느라 쉴 틈이 없었다. 정작 도우러 온 명분은 어디 갔는지 15분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자신이’ 신나게 놀뿐이었다.
그러고는 시간이 다 되면 “오늘도 C를 완벽하게 도와주고 왔다”는 뿌듯한 표정으로 어깨를 쫙 펴고 자기 반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이제 C는 더 이상 영어가 서툰 전학생이 아니다. 친구들과 농담을 주고받고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명랑한 일학년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묘한 패배감과 경외심을 동시에 느꼈다. 캐나다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나의 영어는 매일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데 아이들은 단 2년 만에 새로운 언어와 환경을 통째로 흡수해 버린다.
역시 아이들은 스펀지다.
생각해 보면 C를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한 건 어른들의 치밀한 계획보다 다른 것이었을지 모른다. “너를 도우러 왔다”는 당당한 핑계로 곁에 앉아 함께 레고를 조립해 주던 친구의 무심한 존재감. 카페트 위에서 오고 간 소음과 웃음소리가 일등공신이었다.
때로는 어른들의 세심한 지도보다 그저 곁에 앉아 같이 놀아주는 ‘당당한 동행’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절실한 치유이자 성장이다.
오늘도 유창한 영어로 내게 재잘거리는 C를 보며 나는 그저 기분 좋은 부러움을 담아 박수를 보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