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이
나는 둔한 사람이다. 누군가 나에게 뭘 가장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선뜻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말하지 못한다 그냥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취향이라는게 딱히 없다. 옷도 편하면 좋고 음식도 입에 맞으면 다 잘 먹었다. 한때는 닭에 꽂혀 닭고기만 먹으러 다니기도 하고 어떤 때는 떡볶이에 꽂혀 떡볶이만 먹으러 다닌 적도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음식을 마다하지는 않는다. 약속이 생겨 누군가와 무엇을 먹으러 갈때도 나는 내가 뭘 먹고 싶은지 잘 몰라서 나보다는 상대가 먹고 싶은 것을 위주로 먹거나 선택했다. 분위기 파악을 잘 했고, 눈치가 빨라서 일머리가 좋았고, 그럼에도 실수가 잦아서 스스로 자책도 많이 했다. 때론 완벽하게 하고 싶은 마음에 더 노력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실수를 많이 하지만 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다. 나는 예민하고 섬세하고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다. 옛날 외할머니가 우리를 키워주셨을 때, 할머니는 늘 신문을 읽으시고 뉴스를 챙겨 보시면서 그 당시의 사건들을 걱정하고 불안해하며 우리에게 늘 조심 시키셨다. 하지만 신중하던 나는 소독차가 지나다니면 쫒아다니기는 커녕 건물 안으로 몸을 숨겼다. 그때는 할머니가 괜한 걱정을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 키우는 지금의 내 모습은 그때의 할머니를 떠오르게 한다. 할머니도 나처럼 이렇게 매번 손녀딸을 걱정했겠구나. 나는 그때 할머니가 잔소리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구나 내가 할머니처럼 늘 우리 아이들을 걱정하는구나. 그리고 그 걱정은 내 불안에서 시작되었구나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불안이 원래 높은 아이였는지 아니면 할머니의 불안이 나에게로 넘어왔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불안이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은 그러한 사건들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 덕분이다. 아이를 낳고 황홀하고 행복한 감정과 함께 아이들을 키우면서 만나는 아이라는 또 다른 우주는 나에게 새로운 곳으로 안내해준다. 그렇게 만난 우리 아이들은 불안도가 높고 예민한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부딪히고 겪어보면서, 나에게 있는 모습들을 아이에게 발견하고 나서야 진짜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불안도가 높고 예민한 기질의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 당시 예민하고 불안도가 높은 아이들이 겪은 감정과 상황들을 접하면서 나는 계속 아이들이 어떤 마음은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알아가고 공부해야했다. 나에게는 이미 많은 사례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 과거들을 내 아이들과 함께 바라보지 못했다. 하지만 육아서를 읽고 아이들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고 내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나의 어린시절들이 자주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나의 행동, 나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알았다. 아 내가 불안도가 높고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을. 내가 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내가 예민하기 때문에 알고 할 수 있는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방 가득 아이들과 관련된 물건들을 잔뜩 이고 지고 다니고, 아이들이 혹여라도 다치면 내 마음도 쿵 흔들리고, 아이가 사람들이 많은 상황에서 긴장을 하는 것을 느끼면서 나도 함께 그 상황에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과 갈등을 싫어해서 거절을 잘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표정 말투만 봐도 분위기 파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맞춰주고 둔한 것처럼 행동했다는 것, 사회생활을 하면서 모든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느라 늘 에너지가 바닥나서 집에 돌어오고, 집에 돌아오면 지쳐서 또 예민해지는 사람이 나라는 것까지 알아버렸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학교나 유치원을 다녀오고 나면 얼마나 지치고 에너지를 쓰고 오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아이들보다 더 한 것이 있다면 옛날의 우리 할머니처럼 아이들이 보지 못하는 세상과 사건들로 인해 내 아이들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벌어지지 않은 일들로 말이다. 그러한 것들이 우리 아이들까지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불안이 높은 나로 인해 내 아이들에게 어떠한 씨앗을 심어주는 것은 아닐까 또 걱정하면서 말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나에 대한 부분을 아이를 통해서 알았듯이 어쩌면 나는 아직도 나에 대해 알아야 하는 점도, 더 성장시키고 자라게 해야 하는 부분도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불안과 예민함은 오직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그 장점이 나와 아이들을 더 나은 곳으로 데리고 갈 것이라는 것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