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형을 키우고 있어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랑 사는 기분.

by 곁가지

내가 두 아이를 갖고 왜 나에게 두 아들을 주셨을까. 생각해보았다. 아이들의 성별을 내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다. 오로지 하느님의 뜻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나는 딸을 낳고 싶었다. 남녀차이를 떠나 나중에 내가 나이가 들어도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내가 딸을 갖고 싶다고 한들 딸을 낳을 수도 없다. 그런데 나는 아들을 낳고 정말 행복했다. 딸을 키워본 적이 없으니 딸을 낳아 본적이 없으니 딸에 대해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키우면서 느낀 행복은 더할 나위 없었다. 이렇게 사랑받아도 되는 것일까 할 정도로 행복하다. 엄마의 마지막 사랑은 아들이고 아들의 첫 사랑은 엄마라고 했던가. 어쩌면 하느님께서 나에게 아들을 둘 주신 것은 상처받은 내가 두 아이의 사랑으로 치유되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셨을까 기도하기도 한다.


어디에서 들은 말로 나중에 20-30대가 된 자녀에서 우리딸 이라는 말은 할 수 있어도 우리아들 이라는 미저리 같은 말은 하면안된다는 우스게소리가 있지만 자칫 그건 정말 우스게소리가 아닐 것이다.

엄마 홀로 아들을 키운다면 지켜야 하는 마음이 있다. 바로 남편의 자리에 아들을 앉혀 놓지 않는 것이다.

아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충분히 행복하고 기쁘다. 정말 어디서 내가 이렇게 사랑을 받을까 싶을 정도로 아이들이 나를 사랑해준다. 아들바보소리가 절로 나온다. 하지만 여기까지이다. 아이들이 5살까지 평생할 효도를 다 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울고 불고 엄마가 사라지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행동하던 아이는 이제 사라지고 있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듯 아이는 엄마를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으면 울고, 안아주면 행복하고, 엄마의 표정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 시기는 곧 지나간다.

아들은 낳으면 나중에 다른 여자에게 갈 것이라는 전제하에 키워야 된다는 말에 공감을 하며 요즘도 이 시간을 소중하게 보낸다. 내 품의 자식은 사춘기 전까지야. 그러니 쫑알쫑알 내 옆에서 이야기 하는 이 아이에게 눈을 맞춰준다.

그렇게 내 품을 떠날 아들들이 멋진 남자, 매력있는 남자로 자라도록 도와주고 싶다.

아주 어릴 때는 마냥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점점 자라면서 친구들을 대할 때라던지 일상생활을 하면서 규칙과 예의를 지키는 첫걸음부터 시작해서 내가 나를 지키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바르게 행동할 줄 아는 것. 진실되고 성실하며 자신의 일을 즐겁게 해나가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자신이 행복한 일을 찾는 것. 어려워도 이겨낼 줄 아는 힘과 실수에도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아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아직은 조금 어렵지만 조금은 멋진 어른이 될 수 있는 방향을 잡아주고 싶었다.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이상형이 있는 것처럼. 나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조금은 그런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이 너무 왕자님 같은 모습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내가 바란다고 정말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단순하게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내 감정을 예술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운동을 꾸준히 하며 자신의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풀줄 알고 나를 지키는,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건강한 음식을 먹고 식사예절이 바른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말을 예쁘게 하고 바른 자세를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처럼 조금은 쉽고 간결한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클 것이다.


단지,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아이가 좀 더 괜찮은 성인으로 인성이 바르고 행복한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 전해졌으면 한다.

그래서 지금은 더 많이 사랑해주고 있다. 아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나도 그 사랑을 다시 아이들에게 주고 있다. 아이들과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이야기 나누고 눈을 맞추고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나는 홀로 아이들을 키우는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아이들도 나의 마음을 알아준다면 자신이 나아갈 수 있는 올바른 방향을 찾을 것이라 믿는다.

내 마지막 사랑인 아들들이 누군가에게 두번째 사랑이 된다면 (첫사랑은 아빠일테니) 조금은 젠틀하고 멋진 남성으로 자라기를 소망해본다.









나는 아이를 내가 원하는 보석으로 깎아서 진열하려고 했던 것일까. 하지만 이렇게 거칠고 돌멩이 같은 원석이지만 분명 빛나고 있도 반짝 거린다. 모양도 울퉁불퉁하고 엉망이지만 그 가치는 엄청나다.

아이가 자기 안에 보석을 스스로 다듬을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들을 알려주고 시도해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아이의 뽀족하고 모난 부분을 내가 직접 깎아주고 다듬어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빛나게끔 도와주는 것.

내가 볼 때 나의 기준에서 아이의 단점이 보이거나 잘못된 행동이 보이면 이것을 고쳐주고 다그쳤다면 지금은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성찰하고 나아가길 바라는 방향을 제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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