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음주 경력
2019년 3월 초
아직 봄이라 부르기엔 서늘한 때.
당시에는 친했던 오래된 친구 둘과 생일을 보냈다.
우연히 집이 비어서, 집으로 초대할 수 있었다.
잘 마시지 않던 술을 마셨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이었다.
음주 경력과 기록은 거기서 끊긴다.
술을 소주 반 병, 맥주 1캔 정도밖에 마시지 못하는
간 탓이 가장 크지만,
술의 맛을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술이 달다고 느껴지는 날이 극히 드물었다.
언제나 술은 썼고, 알코올 향이 코를 찔렀다.
2. 한 시절과의 이별
2022년 12월 지난 화요일,
2년 9개월 만에 편의점에서 맥주를 샀다.
마음이 힘들 때 종종 새벽에 맥주를 사러 나갔던 2017년, 새내기 시절이 생각났다.
혹시 몰라서 신분증을 챙겨 다니곤 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신분증 검사를 당했다.
지금 나이는 벌써 스물다섯이고, 법이 바뀌어, 내년부터 만 나이로 살게 된다.
덕분에 지금은 2회 차 스물다섯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음주 자아는 스물두 살에 머물러 있다.
또 혹시 모른다며 신분증을 챙겨 나갔다.
물과 흰 우유, 논 카페인 차 이외에 음료를 좋아하지 않아,
편의점에서는 대개 과자만 구입한다.
맥주 코너 앞에 서있자니 어쩐지 편의점 사장님의 눈치가 보였다.
꼭 갓 스무 살 때처럼,
'에이 내가 이젠 스물두 살인데..'라고 생각했던 때처럼.
맥주 냉장고를 쳐다보는 동안
죄짓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긴장이 됐다.
융 님의 전시회에 갔다가 만난 L군과 J양이 추천해 준 사과향 맥주를 눈으로 찾았다.
'썬머스비' 그 글자를 찾았을 때, 어찌나 반갑던지!
기대, 걱정, 긴장되는 마음으로 냉장고 문을 열고 맥주를 집어 들었다.
375ml 맥주를 즐겨 마셨기 때문에, 500ml 용량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지만,
'뭐 어때!', '500ml까지는 괜찮아!'라고 생각하며 안주를 골랐다.
햄치즈 샌드위치가 먹고 싶었다.
빵은 부드럽고, 정직하게 햄과 치즈 이외에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은, 편의점 햄치즈 샌드위치!
방금 드라마 <호타루의 빛>에서 본 그 샌드위치가 먹고 싶었다.
이래서 먹방을 조심하라는 건가.
10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시간이 늦어서일까,
샌드위치는 다 나가고 없었고,
내 눈에 들어온 건 부드러운 '끼니 KINNIE 롤 빵'이었다.
롤 빵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망설였지만,
별 수 없이 집어 들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계산대에 섰다.
바코드를 찍자, '만 18세 이상만 구입할 수 있습니다. 2003년 생부터 구입 가능합니다. 신분증을 확인해주세요.'라는 안내음이 나왔다.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스물다섯에도, 맥주 한 캔 사는 걸로 이렇게 긴장하고 있다니!
스무 살에도, 스물두 살에도, 불과 10분 전까지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쯤이면 꽤나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꽤나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쫄보가 됐다.
'어라?' 그래도 형식 상 검사를 할 줄 알았지만 하지 않았다.
편의점을 나서며,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내가 어딜 봐도 신분증 검사할 만큼 어려 보일 나이는 아니지.'
한 시절을 떠나보낸 느낌이 그제야 훅 다가왔다.
3. 고독, 외로움, 상실
중얼거림과 외로움은 늘었고, 마주침과 고독은 줄었다.
박준의 산문,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에서 외로움과 고독은 다르다고 말하는 구절이 있다.
외로움은 사람으로 채워지지만, 고독은 사람으로 채울 수 없는 부분이라 한다.
자기 자신과 마주 보고, 인정하고 보듬어 줘야 깊은 갈증이 해소된다고.
그래서일까,
나는 오래 고독했고, 자주 무언가를 잊거나 잃어버린 듯한 알 수 없는 상실감에 시달리곤 했다.
그럴 때면 사람들 사이에 섞여 더 부대끼려 애썼다. 사회 안에 살고 싶어 했다.
섞이고 싶었다.
'보통'의 인간이 되고 싶었다.
정말이지 '그렇게 살면 사회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말로부터 멀리 떨어진,
'사회적 인간'이 되고 싶었다.
부단히 노력했다.
각진 나를 깎아 가며, 원이 되고자 했다.
그렇게 하면 지긋지긋한 상실감과 이별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세상에 나를 온전히 이해해 줄 사람은 없다.'는 고독감으로부터 헤어 나올 수 있게 될 줄 알았다.
사람으로 채워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더 사람에 매달렸고, 여유를 잃어갔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마다, 나는 상실했고, 자주 아팠다.
부모님은 늘 내게 둥글둥글한 원이 되면 나아질 거라 했는데,
나를 깎아낼수록, 텅 빈 영혼과 마주할 뿐이었다.
비참함과 당혹감에 허덕였다.
날이 안으로 서서 나를 찔러 댔다.
아아, 나는 나를 잃고 있었다.
나를 잃어야만 한다는 상실감으로 그토록 괴로워했던 거였다.
이 지난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은
결국 나를 버리지 않으면 채워질 수 있었다.
집나간 파랑새를 찾으러 헤매고 다녔는데 결국 집에 있었다는 이야기처럼.
내가 나로 있으면 채워질 수 있었다.
원으로 살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후, 상실과 고독을 좀 덜 느끼게 되었다.
(이따금 외로움은 늘었지만,
그건 바스락거리는 이불속에 폭 뒤덮여
<리틀 포레스트> 같은 포근한 영화 한 편이면
뚝딱 채워지는 날이 더 많다.)
4. 취했다. 어쨌든,
그래도 채워지지 않을 때에는
가까운 편의점이나 슈퍼에 가서
좋아하는 맥주와 안주를 골라 우선 배를 채우면 한결 나아진다.
그래서 '한파주의보, 장시간 활동을 자제하시길 바랍니다.'라는
문자를 받고도 다시 맥주를 사러 나갔다.
화요일의 맛이 그리웠고,
적당히 취하고 싶었다.
집에서 더 가까운 편의점에 가서
사장님이 아니라 아르바이트생에게
'끼니 롤 빵'이 아니라 '클래식 롤 빵'을 구입했다.
물론 맥주도 같이.
한 캔 더 마시고 싶었지만,
다행히 진열된 맥주가 딱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었다. 딱 한 캔으로 '적당히' 취했다는 걸 지금은 알기 때문이다. 배도 엄청 불렀다.)
같은 조합을 들고 편의점을 나서서,
아이스크림 할인 판매점에 들어 갔다.
(셀프로 계산하는 시스템이라 종종 이용한다.)
밀크 캐러멜과 치즈 소시지를 하나씩 구입했다.
밀크 캐러멜만 구입할 생각이었는데,
스무 살 부산 여행에서 소시지와 맥주를 들고 버스킹을 구경하던 순간이 떠올라
무의식 중에 '맥주엔 소시 지지!'라며 집어 들었다.
(꿀팁인데, 밀크 캐러멜은 정말 달아서, 술 먹을 때 같이 먹으면 술이 금방 깬다. 아이스크림보다 훨씬 직빵이다. 물론 나의 음주 경력과 주량은 신뢰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집에 와서 맥주와 소시지, 빵, 밀크 캐러멜을 먹었다.
짭짤한 소시지와 맥주는 여전히 잘 어울렸다.
빵과 맥주는 궁합이 잘 맞는다 할 순 없지만,
부드럽고 달콤한 롤 빵이 퍽퍽하게 느껴질 때,
한 모금 들이키면 '캬-' 소리가 나오는 건 같았다.
마지막으로 약간 취하는 것 같은 타이밍에 밀크 캐러멜을 넣어주면, 술이 금방 깼다.
정정한다.
'덜' 취했다.
완전히 깨진 않았다.
취했다.
어쨌든.
'흐힣ㅎㅎ어라 취했다.ㅎㅎㅎ'
생각하고 누워서
'빠더너스'의 '오당기' 미노이 편을 보다가
자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곯아떨어졌다.
5. 꿈, 그리움, 미련, 후회.
'에, 이게 뭐야.'란 생각과 함께 눈을 떴다.
이상한 꿈을 꿨다.
갑자기 무섭기도 하다.
20살에 만나,
22살에 다한 인연인 친구가
갑자기 놀러 온다고 해서 만났는데,
그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같이 밥을 먹으러 갔다.
이미 밥을 먹고 잠들어서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그 친구가 이끄는 데로 따라 갔다.
서로 간단한 안부를 물었다.
나는 이제 막 학기니까 바쁠 거라고 답했다.
깨서 생각해보니, 졸업한 지 벌써 10개월이 됐다.
섬짓한 마음에,
'왜 이런 꿈을...?
최근에 그 친구랑 옛날 생각을 많이 해서인가?'
그리움인가 했는데
아니다.
미련이다.
후회다.
'지금이었으면 안 그랬을 텐데.'로 시작하는.
6. 시절, 상실!
다행이다.
'여전하지 않아서.'
변해가는 게 마냥 슬프고, 아프고, 괴로웠던
시절의 나는
그 시절의 사람들을 보내주며,
함께 갔다.
상실이다.
한 시절의.
그러나 내 안에 켜켜이 쌓인,
7. 해를 보낸다. 각지게 살아낸,
그렇게 올 한 해도 보낸다.
신분증을 검사하고,
고독과 상실에 허덕이던,
나를 떠나보내고,
각지게 살아낸 올해를.
8. 다정이라는 조각.
다음번에 맞는 스물다섯은,
각진 모서리에 '다정'이라는 보호대를 착용하고 싶다.
'다정함'을 보다 더 배우고 싶다.
뾰족한 모서리까지 다정으로 내면을 가득 채우고 싶다.
고독과 상실을 반복하는
이들과 함께 뾰족한 채로 있어주고 싶다.
나의 다정은 타고나질 못해서,
내게 다정함을 나눠준 이들의 조각조각일 테니까.
뾰족하겠지.
그래도 원이 되고 싶은 모서리 인간에게
그 조각들을 나누는 새로운 스물다섯을 맞이하고 싶다.
9. '-하고 싶다.'는 다정!
한 시절은 갔지만,
여전히 '-하고 싶다.'가
많아서 좋다.
시절이 끝나도,
어김없이 이어지는 게
무언가 남아 있다는 것,
그것도 나의 다정이겠지.
10. 모모 모모, 모서리 인간
더 이상 남의 다정이 내게로 와서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뾰족한 나를 데리고 살아가는 데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뾰족한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나는 네모네모 세모 세모 모서리 인간이다.
때론 더한 다각형이 된다.
삐쭉 빼 죽 뾰족하다.
내년엔 더 당당한 모서리 인간이 되어야겠다.
둥글게 살지 않아도 괜찮다,
말하고 싶으니까.
또렷한 다짐과 함께,
한 시절과 한 해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