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를 오해하는 당신에게
생각은 빠르고 말은 더 빠르다.
각성은 느리다. 애석하다.
좋을 대로 보고, 듣고, 생각한다.
결코 쉽지 않아야 할 말도 참 쉽게 한다.
말은 때때로 칼이다.
모르는 걸까,
모르고 싶은 걸까,
모르는 체하고 싶은 걸까.
하지만 때때로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에 떠도는 혼령처럼 맴도는 말이 있다.
글을 쓸 때면 종종 연이 다한 사람들과의 관계와 지난 일상을 되짚어 본다.
그러다 내가 건넸던 말 중에 어떤 말이 나에 대한 인상으로 남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 말은 내가 남긴 유언이나 다름없을 테지.
오히려 한마디 말 때문에, 더 쉽게 끝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 말이 나에 대한 이미지 그 자체가 된다고 생각하면, 말은 끝없이 무거워진다.
내게도 그렇게 누군가가 남기고 간 유언 같은 말들이 있다.
예쁜 말보다 쉬운 말이 유언이 되기 쉽다.
말을 어렵게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지금 하는 말이
상대방에게 남기는 유언이 되어도 괜찮은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마지막 인상으로 남을 말이
지금 내뱉는 말이어도
조금의 후회도 남지 않을지,
한 번은 더 생각하고 말했으면 좋겠다.
말은 힘이 있다.
위력이 있다.
영향력이 있다. 사람을 바꿀 수 있을 만큼 크고 세다.
운동을 하면서, 호흡 하나하나에 집중하듯이
단어 하나에도 신중을 기하고 싶다.
'진지충', '예민충' 같은 단어가 좇아 와서, 한없이 가벼워져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 사로 잡히게 될 때가 있다.
말의 무게를 아는 사람 만이 선물 같은 예쁜 말을 골라서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베지 않는 사려 깊은 말을 건넬 수 있다.
나는 종종 내가 뱉은 쉬운 말과, 지나간 사람들이 남긴 유언 같은 말들에 의해 상처받는다.
말은 동시에, 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두 사람 모두를 아프게 할 수도,
미소 짓게 할 수도 있다.
말은 발화자와 청취자 모두에게 힘이 있다.
그래서 나는 꽤 오랫동안 휘둘렸다.
내가 뱉은 말과 내게 뱉어진 말들에 의해 나를 판단했다.
그 말들에 의하면 나는 기이하고 독특했다.
사회가 말하는 '평범', '표준'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나의 독특한 면모들을 혐오했다.
나아지고 싶었다.
사회에서 인정하는 '평범', '표준'의 범주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조금 덜 생각하고
듣길 바라는 말을 해주고,
조금은 더 가벼워려고,
상대방이 바라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수록,
누군가와 함께 하면서도 쓸쓸해졌다.
그건 '나'이면서 내가 아니니까.
백지 위에 활자를 적어 내리는 순간에만 '진짜 나'로 존재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말보다 글을 선호하고, 신뢰하게 된 걸까.
글은 말보다 느리고,
번거롭고, 수고로움이 따르니까.
나는 천성적으로 느리다.
깊이 있는 걸 좋아하고, 신중함을 사려 깊다고 생각한다.
말보다 글이 좋고, 말도 진심을 담아, 단어를 한 땀 한 땀 골라 수놓듯이 하고 싶다.
매사에 진중하고 싶다.
그런 면에서 나는 기이하고 독특하다.
사회 내에서 나는 분명 눈에 띈다.
누군가에게는 목덜미에서 까슬거린 택처럼 계속 거슬릴지도 모른다.
평범할 수 없는 부분들 덕분에 나는 고유해진다.
말을 쉽게 삼키지 못하고 되새김질하고,
쉽게 뱉지도 못하고 몇 차례나 다듬은 후에나 내놓는 평범하지 않은 모습 덕분에
나는 오리지널 해진다.
그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언제까지나 조금은 이상하고, 때로는 더 많이 이상해 보일 것이다.
건네받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지만,
건네는 사람에게서 말이 시작하기 때문에 말은 두 사람 모두에게 당도한다.
내가 건네는 말이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남아
마음이 시릴 때,
얼어붙지 않도록 녹여 줬으면 좋겠다.
고유함을 잃지 않고 꿋꿋하고 고고하게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기를 바란다.
평범해지고 싶다가도, 더 고유해지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나'이기를, '진짜 나'로서 세상에 내보이는 법을 더 터득해 가면서.
깊고 무겁고 오리지널리티 하게.
당신도 그 선상에서, 언젠가 '우리'로 만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