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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건반검은건반 Feb 04. 2022

부설초에서의 4년을 돌아보며

이제, 곧 학교를 떠날 시간

4년 전, 처음에 부설초에 발령을 받았을 때 무척 설레었던 그때가 생각이 난다. 부설초는 특별했고, 좋았고, 아름다웠다. 

  

20년 전, 20살 대학생이 되어 부산교대에 입학하고, 나는 4년간 기숙사와 학교를 오가며 교대 안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이 학교에는 오롯이 나의 4년이 들어있었다. 한새 탑 아래에는 깔깔대고 웃던 친구들과의 추억이 있었고, 대학 도서관은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청소 후 몰래 책을 읽던 추억이 있었다. 대학 운동장은 기숙사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운동을 하겠다며 걸었던 곳이었다. 지금은 허물어지고 다시 짓고 있는 참빛관은 내가 사랑하던 동아리가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부설초는 내가 실습을 나가던 바로 그 학교였다. 교생 선생님으로 이 부설초에 왔을 때 부설초 선생님들은 정말 대단해 보였다. 이곳에 오는 선생님은 실력도 있으시고, 열정도 있으셔야 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 열심히 실습을 했다. 어릴 때 내 꿈은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과연 내가 좋은 선생님이 맞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던 시기에 부설초 지원공문이 학교에 왔다. 나는 교대생들에게 초등교사로서 길잡이가 되어주는 부설초에 지원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시험을 쳤고, 합격을 했다. 


나는 그렇게 20년 만에 부산교대부설초 전입교사로 들어왔다. 부산교대는 많이 바뀌었지만 나의 젊음이 여기에 있었고, 열정이 그대로 있었다. 내가 실습할 때 만났던 아이들은 기억도 나지 않았지만, 그때의 설렘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 당시 부설초 교장선생님으로 부임해 오신 박시현 교장선생님은 내가 부설초에서 교생실습을 할 때 수업을 가르쳐주신 지도교사 선생님이었다. 내가 존경하던 실습 담임 선생님도 만났으니,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이 학교의 모든 것이 나를 20살처럼 설레게 했다. 다시 봄이 오고 있었다. 


부설초의 아이들은 뭔가 달랐다. 자신감이 있었고, 학교에 대한 자부심도 남달랐다. 나는 첫 해에 3~6학년 음악 전담을 했는데 아이들이 너무 활기차서 깜짝 놀랐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서 학교 행사를 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정말 학교에 행사가 많았다. 나는 이 아이들이 그 모든 걸 해내는 게 너무 신기했다. 그 당시 내 딸은 12살이었는데, 이 학교에 보냈으면 얘가 이 모든 걸 따라가긴 했을까, 싶을 정도로 학교에는 행사도 많고 과제도 많았다. 그리고 교생 선생님들이 정말 많이 왔고 자주 왔는데 그 많은 선생님들의 수업에 척척 발표도 잘 해내는 것이 진짜 놀라웠다. 공개수업도 자주 있다 보니 발표력도 무척 뛰어났다.  


2019년, 부설초에서 나의 아이들이 생겼다. 2018년에는 담임이 아니었기에 방송부와 중창부 아이들과 함께 추억을 만들어 나갔는데, 드디어 나도 담임을 맡게 되었다. 그때 3-1반 아이들은 정말 밝고 명랑했다. 나는 갑자기 생긴 강의들 때문에 이 아이들의 모습을 영상에 많이 담았는데 지금 다시 보아도 놀라울 정도로 똑똑한 아이들이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아이들이었고, 참 따뜻한 아이들이었다. 아이들과 파티도 많이 하고 이런저런 대회에도 나가고 1박 2일로 체험학습도 가고, 교생 선생님들과도 신나는 추억을 많이 쌓았다. 힘든 일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일들은 모래에 적어 보내버려 지금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2020년, 코로나19가 슬금슬금 시작되더니 퍼지기 시작했다. 곧 괜찮아 지려니, 했던 이 바이러스는 괜찮아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입학을 못하고 기다리다가 결국 마스크를 쓰고 잔디밭에서 입학식을 치러야 했다. 그것도 홀수, 짝수로 나뉘어서. 같은 반이어도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친구들도 있었다. 학교에는 마스크를 쓰고 왔다. 아이들은 친구들을 눈 모양으로 기억했고 마스크를 벗은 모습은 급식실에서만 볼 수 있었다. 학교는 고요했다. 1학년이 오는 날에는 3학년이 학교에 오지 않았다. 잔디운동장에서 떠들썩하게 웃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2021년, 코로나19가 2년째에 접어들자, 교육부에서는 1-2학년은 매일 등교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어린아이들에게 온라인 수업은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인정했으며 맞벌이 부부의 돌봄 문제도 큰 문제가 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 2학년 3반 친구들을 교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2학년을 맡고 싶었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 입학식 때부터 ‘내가 만날 아이들!’ 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진짜 우리 아이들을 교실에서 만났을 때 무척 신이 났다. 아이들은 마스크 위로 눈망울을 빛내며 늘 나를 바라봐 주었다. 정말 귀엽고 예쁘고 착한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와 함께 한 이 1년은 우리에게 참 힘겨운 1년이었다.


코로나19가 시작되고 2년째인데도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하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노래를 좋아했으나, 마음껏 부르지도 못했고, 아이들끼리 쉬는 시간에 노는 것도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거리두기를 수시로 요청해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원래 학교는 규칙이 많은 곳인데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거리를 둬야 해’, ‘손은 씻었니?’, ‘친구 몸을 만지면 안 돼’, ‘얼굴을 가까이하면 바이러스가 옮을 수 있어’ 하며 잔소리해야 할 것이 늘어나자 나는 참 힘들었다.

학교에서는 행사를 마음 편히 할 수 없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확진자 발생 추이를 봐가며 행사를 준비하느라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교생 선생님을 지도해야 했지만, 가까이 만날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도 교사에게도 힘든 시기였다.


그러고 보면 우리 2학년 3반 아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밝았다. 선생님을 위로해 주었고 그 와중에도 많이 웃었다. 우리 반 친구들은 확진자와 동선이 겹쳐서 자가격리를 여러 번 하기도 했다. 나는 집에서 격리하고 있는 아이들을 Zoom으로 보면서 몇 번 울컥하기도 했는데 아이들은 오히려 괜찮다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9살 같이 않게 어른처럼 말했다. “좀 힘들지만 괜찮아요”


우리 반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참 마음이 튼튼한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다. 성장의 속도는 다르지만 부모님들께서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마음을 열어서 안아주고 계시고, 상담을 할 때면 아이들을 믿고 사랑하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이러한 부모님이 계시니 아이들은 너무 밝고 건강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로 자라고 있었다.

물론 실수도 하고 서로 몸싸움도 해서 지도하기에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 당연히 자라다보면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어른들의 생각보다 상처를 크게 받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작은 싸움도 넘길 수가 없었다. 2학년에 작은 싸움을 바로잡지 못하면 고학년으로 갈수록 큰 싸움이 될 것 같아서 나는 두려웠다. 그래서 엄하게 지도할 때면 아이들에게 그 부분이 미안하기도 했다.


지금 우리 반 친구들은 다들 친구를 아끼는 마음으로 예쁘게 성장하고 있다고 믿는다. 어떻게 모둠을 만들어도 다 잘 지냈고, 발표도 참 잘했다. 나는 전교에서 우리 반 아이들이 발표를 제일 잘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2학년 수준에서는 전국 최고일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반 아이들은 리더 기질을 가진 친구들이 많았지만 양보도 하고 배려도 하는 멋진 아이들이었다. 모둠 발표를 시키면 선생님 개입 없이도 진행을 척척 해내는 아이들을 보며 어딘가에 자랑이 하고 싶어서 참느라 혼났다.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둘을 아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의 색깔도 참 달랐다. 조용하게 자신의 일을 하는 아이부터 발랄하게 우리 반 분위기를 끌어가는 아이, 지식 탐구에 열심인 아이, 노는 방법을 순간순간 상황에 맞게 만들어 늘 친구들과 잘 노는 아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데 거침이 없는 아이부터 수줍은 아이까지. 이렇게 다양한 성격의 아이들이 1년 동안 서로 부대끼며 싸우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정말 많이 자랐다.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법도 배우고 사랑하는 법도 배우면서 이 다른 24명의 아이들이 크게 성장했을 거라 믿는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행복을 찾고 희망의 열매를 맺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참 많이 배웠다. 

우리 반 아이들은 참 긍정적인 아이들이었고 씩씩한 아이들이었다. 


이제, 우리 헤어질 시간이 다가온다.

나는 부설초를 떠나는 마음과 함께 싱숭생숭함을 감출 수가 없다.

부설초는 아이들을 뿐 아니라 대학생까지 지도해야 하니, 확실히 다른 학교에 근무할 때보다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 힘들었던 학교였다. 

4년 동안 땀과 애태움으로 보낸 시간을 즐겁게 마무리하고 떠나야 하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싱숭생숭할까. 

우리 반 친구들이 이제 마스크를 벗고 활짝 웃는 모습을 못 보고 가서 그런가 보다.

아이들의 눈만 보고 마스크 아래의 모습을 편하게 보지 못했다. 

나중에 아이들이 자라면 나는 아이들을 알아볼 수 있을까. 

코로나19 때문에 ‘서로 가까이 가지 마’라고 잔소리만 많이 한 것 같아서 그것도 너무 아쉽다. 아이들도 선생님에게 가까이 오지 못했다.

더 많이 안아주고 손잡아 주지 못해서 그래서 이별이 너무 아쉽다.

우리 9살 아이들은 나중에 어른이 되면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할까?

선생님과 함께 했던 수건 돌리기는 기억해주겠지?

나는 아이들과 보냈던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올해도 문집을 만들었다. 그리고 행복했던 시간들을 많이 담으려고 애써 본다. 그리고 나중에 10년 후에 2021년을 떠올렸을 때, 아이들도 이 코로나로 힘든 시기를 선생님과 함께 이겨냈음을 기억하면 좋겠다. 그리고 행복한 기억만 가져가면 좋겠다. 나도 그럴 것이다. 

우리 반 친구들과 행복했던 추억은 바위에 새겨서 오래오래 기억할 거고, 힘들었던 기억은 모래에 적어서 파도에 보내버릴 것이다.


누군가 2021년은 어떤 해였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마스크 쓰고 수업하느라 진짜 힘들었지

하지만 그때 부설초에서 2학년을 맡았었는데 

아이들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힘을 낼 수 있었어

그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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