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ppelgaenger

by 그리운

나 같은 사람이 만나고 싶었다.

연인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나 같은 한 사람이 만나보고 싶었다.


세상이 이리도 넓은데

왜 난 늘 허전함을 데려가야 하는지 알고 싶었다.


인간된 존재로서의 당연한 고독이 아니라,

특성을 가진 한 개인으로서의 고독에 대한 이야기다.


쇼팽은 나의 바다요

하늘이지만

콘체르토 2번은 A의 연주,

발라드 4번은 B의 연주,

녹턴 9번은 C의 연주,

폴로네즈 6번은 D의 연주

하는 식의 취향을 가진 나를 공감하는 사람은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


끊임없이 사람들과 교류하며 살아왔지만 대화 속엔 대부분 깊은 허전함이

말을 나눌수록 고독이 커지는 역설을 마주하며 살아온 날들.


나는 조금 더 깊이 있게 이 이야기를 진전시키고 싶은데

사람들은 '눈치껏' 이야기를 '컷'하는 것도 중요한 미덕 중 하나라 여기므로

빠르게 다음 Scene으로 넘어가야 한다.


청자가 내 이런 이야기와 주제에 대해 관심 있어하는지 아닌지 정도는

전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으므로 나는 여태

적당한 선에서

내가 미처 음미를 끝내지도 않은 만찬들을 뒤로하고 그들과 함께 자릴 떴었다.


먹다 만 요리들,

하다 만 식사.


그러면 나는 어디에서든 그 허기와 감각적 욕구를 채워야 건강해질 수 있는데

어느 정도까지는 가능했었다.


책을 찾아 읽고 여기저기 샅샅이 뒤져 나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사람들

혹은 그들의 흔적을 찾아내 게걸스레 핥아먹는 것.


20대 어린 시절 어느 날엔가는 분명히 생각했었다.

지긋지긋하다고.

너무도 해소하고 싶은 어떤 갈망이,

갈 곳이 없다고.


사실은 아무래도 나에게도 기회가 한두 번쯤은 있었다.

그런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멋진 영혼 한 조각이

곁을 스친 적이 내 삶에도 분명 있었다.


그의 손을 놓친 건 나였고,

당시 난 손에 힘을 줄 수 없는 상태였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질인가 싶게도

돌아보면 참으로 장난 같다.


삶이 나를 아주 큰 수렁으로 홀라당 밀어넣어

막 정신이 쏙 빠지기 직전 그 어느 때쯤엔가

그를 알게 됐었는데,


역시나 그는 나를 이승에 잘 접착시켜 놓고

그렇게 쉬이 날아가 버릴 곳이 여긴 아니라는 식으로

기어이 다시 내려앉게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접착된 느낌이 낯설었을까

온몸과 마음을 다해 발버둥을 치다 쓸데없는 곳에 힘을 쏟아

그의 손을 놓치고 만 것이고

그는 영영 그 길로 아스라이 사라져 간 인물이 되었다.


아, 살아간다는 건 점차 숙연해지는 일이려니.


자의 및 타의에 의해 지어진 이 견고한 고독의 성은

무엇을 계기로 허물어지는가.


어쩐지 부당하다 싶은 과중한 업무를 부여 받고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 갈가리 찢겨나간 것 같은 퇴근길에

문득 저만치서 '여기야' 하고 손을 흔드는 수줍은 석양 앞에서.


과거에 날 무너뜨렸던 큰 두려움이 지금의 가장 큰 행복 뒤에서

씨익 미소 짓는 무자비한 폭력배처럼 날 기다리고 있을 때,

우연히 오랜만에 듣게 된 추억 어린 예쁜 노래에 맞춰

황금빛 찬란한 낙엽들이 함박눈 내리듯 눈 앞에서 쏟아져 내리며

'아니야, 괜찮아.' 라고 말해 줄 때.


살랑이는 바람은 또 자기가 빠지면 섭하다고 내 온몸을 돌아 어루만지며

쓸데없이 들고 있던 걱정들마저 함께 훅 털어내 줄 때.


얼마나 따뜻한지,

이 얼마나 사랑이 가득한지.


내가 고독할 틈 같은 건 사실 없다는 걸 우주는 온몸으로 일깨워주려 한다.

늘 그 자리에 있으면서.

그것을 보는 것은 나의 선택이요,

지나칠 수 있는 것도 나의 선택.


어쩐지 스산해서 지나가길 꺼렸던 외진 골목이

이제는 나의 따스하고 작은 골목이 되어 나를 치유하는 원리로,


나는 내일도 나의 고독을 씻어내야 할 것이다.


나 같은 사람 좀 못 만나면 또 어떠랴,

다름으로 더 놀라운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


이래도 축복,

저래도 축복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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