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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 Oct 30. 2022

우월감

 공감 부족, 비도덕적 의식, 포악, 간사. 지나친 열등, 깊은 우울 기타 등등 모두는 어디 하나 나사가 빠져있습니다. 완벽한 능력치를 나열해놓고 그 앞에 살아남는 자는 없습니다. 어느 누군가에겐 너도 나도 괴상망측한 사람일 겁니다. 조금씩 부족한 사람들끼리 만나 부족한 세상에 사는 더 부족한 나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그다지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월감에 도취된 사람만큼은 경계하고 과도할 정도로 적대시합니다.

 

인간을 파멸시키기 완벽한 감정은 단언컨대 우월감일 겁니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그를 해코지할 필요 없이 그에게 달콤한 우월감을 불어넣어 주면 됩니다. 우월감에 도취된 사람은 그렇게 서서히 파괴될 겁니다.


 우월감의 진정함 무서움이란 스스로 돌아보는 방법을 점점 잊게 한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현 상황을 바라보지 못한 채 흐리멍덩해진 시야로 자신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다 여겨지는 사람에게서 위안을, 높은 곳에 있는 자들을 외면하다 못해 그들에게 결점을 찾아내 자신의 위치를 합리화해 가는 건데요. 사실 성장의 동력을 멈추는 것을 넘어 동력원 자체를 잘라버리는 짓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월감에 도취된 자들은 자신의 행동이 곧 진리라도 되는 마냥 맹신하게 됩니다. 그와 생각을 달리 하는 자들을 짓이겨 누르려는 성질은 집단에서 우두머리적 성향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자면 그의 강압적이며 파괴적인 면모에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자조적 포기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타인들의 포기적 수긍을 보고는 자신의 우월감을 더욱 견고히 그리고 스스로 업적화 시켜버리기 까지 합니다.

 끌어나간다는 것은 보듬어 함께 가는 것이지 짓이겨  멋대로 끌고 다니는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언뜻 보면 나르시시즘과 결이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르시시즘에 방향은 자신을 향한다면 우월감의 방향은 외부를 향해간다는 겁니다. 피해의 규모가 궤를 달리 합니다. 그들은 우월감을 바탕으로 타인을 잡아끌어내리는 것으로 연명을 하며 우위에 서는 것에서 만족을 얻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한참이고 주변을 병들게 하고 상처 입힙니다. 마침내  이상 남아있지 않은 지근거리의 황량한 폐허를 보고는 본인들마저 파괴를  겁니다.


우월감에 도취된 자의 최후입니다.  


 처절한 그들의 최후를 적지 않게 봤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이 그들에게서 상처 입은 자들을 지켜봐 왔습니다.


나를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되지만요.

 자기도취적인 감상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만큼 비참한 모양은 없습니다. 

우월에 도취된 자들에게 상처 입고 적막히 찢어진 곳을 보듬고 있을 이들을 생각하게 되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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