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쓰지 말자 Oct 21. 2021

나를 칭찬해보자

얼마전 구에서 온라인으로 하는 강의를 듣게 됐다. 악어책방이라는 독립서점을 운영한다는 고선영이라는 작가가 나와 감정디자인에 대해 얘기했다. 1시간 남짓, 짧은 강의였는데 작가는 과거 자신의 우울한 상황을 얘기했다. 딸 셋 아들 하나, 아들을 낳기 위해 태어났던 자신. 가부장적이고 위협적인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으로 자살을 생각했다는 얘기. 서른살까지만 살겠다고 마음먹었다던 과거를 털어놓다가 그걸 극복하는 과정을 얘기했다. 어느날 책을 보는데 '아름답다','사랑' 등의 낱말카드를 넣은 물과 '증오', '원망' 등 분노와 관련된 낱말카드를 넣고 물을 얼렸는데 둘의 결정이 달랐다는 책을 보고 생각이 바뀌게 됐다고 한다.  그때 자신을 돌아보니 자신에 대해 늘 부정적인 말만 해왔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그럼 10년만 긍정적인 말을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고,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감정디자인이라는 자기만의 영역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냥 희망 가득한 얘기일 수 있는데, 가만히 나의 요즘을 떠올려보니 나 또한 긍정의 메시지를 내고 있지 않았다. 그냥 '힘들다', '난 왜이렇게 운이 없을까', '다른 사람들은 저렇게 앞서 가는데 난 지금까지 뭐했지?' '내가 하는일이 늘 그렇지'. '불평등', '불공평' 등의 말들만 해왔구나 라는 반성을 하게됐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비관론자가 됐는지 모르겠다. 

어린 시절, 엄마는 늘 내게 최고라고 칭찬했다. '늘 우리 딸이 제일 예쁘다. 우리 딸은 못하는게 없다' 등 나의 자존감을 떨어뜨릴 일이 없던것 같은데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자기 비관을 하게 된걸까. 학창시절 어디선가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대'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의 영향인지, 정말 늘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어. 나는 잘될거야 라는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가졌다. 고등학교 수험생활 중에도 모의고사 점수가 떨어지고, 내신이 안좋아 좌절하고 또 수시에 먼저 붙은 친구들을 부러워하면서도 계속 주문을 외웠다. '나는 할수 있어. 나는 s대 갈거야. 수능날 대박 날거야' . 수능 전날, 아주 심하게 체해 토하고 난리가 났었다. 그 밤에 응급실을 가야하나 했고, 엄마는 열손가락 손을 다 따주시고 뜸도 놔주셨다. 그날 오전에만 해도 자기전에 한번 싹 훑어보고 자야지 했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울면서 잠이 들었다. 근데 그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돼 전날 푹 잔 덕분에, 다음날 컨디션이 좋아졌고 수능도 떨어졌던 모의고사 점수를 다시 회복했다. 그때까지, "그래, 역시 난 운이 좋아. 역시 마음 먹으면 다 돼"라고 희망에 찼던것 같다. 너무나 희망에 찬 나머지 나의 행운이 계속될 줄 알고 대학에 가서 정말 그냥 아무 생각없이 살았다. 성적 관리라는 것도 안하고, 그냥 그 운만 믿었다. 행시라는 것도 그냥 운을 믿고 시작했고, 아주 보기좋게 떨어졌다. 그러다 친구들이 모두 졸업한 뒤에 뒤늦게 졸업을 해야했고, 모두들 취업의 관문을 하나씩 넘을 때 난 그냥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으로 위안을 삼으며 이제는 나의 불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왜 내게 행운이 따르지 않을까.

뒤늦게 내가 어릴때부터 하고 싶어했던 언론사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마지막 순간에는 운이 좋게 지금 다니는 직장에 합격하게 됐다. 합격을 해도 기쁘지 않았다. 더 높은 곳을 바라봤던 탓에 후회가 뒤따랐다. 그때 입사하지 말고 더 준비를 했으면 어땠을까? 그 생각은 지금도 한다. 그때도 입사가 늦었기에 한편으로는 그때라도 들어가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그런 후회는 여전히 남는다. 또 그러면서 나보다 실력이 없는 친구들이 더 좋은 곳에 붙은 걸 보면서 '역시 내 운이 별로였어' 라고 생각했다. 


돌아보면 나의 비관론이 시작된건, 20대 중반 여러번의 실패를 겪은 뒤부터 인듯하다. 어느순간 나를 한없이 형편없는 인간으로 보기시작했다. 해놓은 것도 없고 가진것도 없는 그런 존재로 보기 시작했다. 이런 비관적인 시선이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는 행여나 아이들에게 전해지지는 않을까라는 걱정도 한다. 말로는 우리 은성이 최고, 우리 은성이는 다 잘하지, 은성아 그림 못 그려도 괜찮아. 너가 그리고 싶은거 그리면 돼 라고 말하지만, 이건 내가 기억하는 말인 것이고 무의식 중에 어떤 말이 은성이 은재에게 부정적인 사고를 심어주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했다.


나를 스스로 깎아 내리는게 나를 키우는 힘이라고 위안해보지만, 강의를 듣고 난뒤 내가 너무 나에게 가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도 위에 선배가 나를 몰아부치고 눈물이 날 정도로 깰 때는 온전히 정말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지나고 보면, 내가 잘못한게 아녔다. 그들이 잘 몰랐는데 내게 잘못을 돌린것이었다. 근데 그때도 난 내탓이라고 생각하고 땅 밑으로 파고 들어갔다. 작가는 그런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향해 '너가 잘못한 것 없어. 너가 잘 한것이야' 라며 철저히 자기 편을 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는 순간 그건 자기편이 되는게 아니라고 한다. 그 말에 참 공감을 했다. 나는 내가 잘못한게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편인 적이 없던것 같다. 상대방을 이해하려 했고, 그들이 화를 내는게 날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내 탓'을 했었다. 그런데 작가는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내 편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매일 자기 자신을 칭찬한다고 했다. 


코웃음이 나오는 말이지만, 그래. 조금이라도 바꿔보자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무것도 안하는게 아니라 나는 하루하루 일과 육아를 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고, 내가 안주해 있는 것 같지만 하루하루 난 성장하고 있는것이라고, 또 과거의 나처럼 '난 정말 행복해, 난 다 잘될거야' 라고 주문을 외워본다. 40년 가까이 산 인생속에서 이 결론이 너무나 순진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또 이런 희망이라도 있어야 내 삶이 재밌어지지 않을까 싶다. 



 



 





이전 09화 좌절했다가 다시 일어서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