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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Apr 07. 2023

출근하지 않는다

아침 7시.

알람이 울리면 침대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간다. 커피그라인더가 느리게 돌아가며 원두를 가는 동안 포트에 물을 끓인다. 냉장고에서 평소처럼 사과 하나, 오렌지 하나, 달걀 개를 꺼내려다가 멈칫, 두 개를 더 집어든다. 오늘은 프라이 말고 계란말이를 해야지. 양송이버섯과 당근과 파가 들어있는 밀폐용기 함께 꺼낸다. 채소는 대충 썰어 전동 차퍼에 넣고 버튼을 몇 번 눌러 다진다. 왼손으로 하부장을 열어 유리볼을 꺼내고, 그 안에 달걀을 깨 넣은 뒤 오른손으거품기를 찰찰 젓는다. 어제 헬스장에서 팔 운동을 해서 이두와 삼두에 가벼운 근육통이 느껴진다. 힘이 세져서 계란을 르고 쉽게 풀게 된 것 같아 뿌듯하다. 계란물에 다진 채소와 새우젓을 넣 섞고 프라이팬에 불을 린다. 포도씨유를 넉넉히 두르고 기름의 온도가 올라올 때까지 잠시 기다다가 달걀을 붓는다. 치익 소리와 함께 가장자리 거품듯 살짝 부풀나무 뒤집게양손에 쥐고 부터  말아본다. 면서 달걀말이를 몇 개쯤 만들어봤을까. 계란물은 너무 익어도 너무 덜 익어도 예쁘게 말리지 않는는 걸 안다. 타이밍에 맞춰 감각적으로  눌러주를 반복하자 란말이의 집이 점점 커진다. 주방에서 시작된 고소한 기름 냄새는 잠에서 깬 아이들의 허기를 일깨워 그들을 식탁으로 유인한다. 단정하고 먹음직스러운 자태의 계란말이를 도마에 올려 한 김 식히는 동안 커피여과지를 접어 드리퍼에 꽂고 갈린 원두를 쏟아낸다. 공기 중에 퍼지는 진한 원두향으며 커피를 내린다. 커피 물줄기가 내려는 시간 동안 과일을 깎는다. 드립포트를 쥐었다 과도를 쥐었다를 반복하는 과정이다. 플레인요거트에 과일 토핑을 올려먹는 걸 좋아하는 둘째를 위해 바나나도 한 개 까서 얇게 썬다. 거실까지 번진 커피 향에 이끌려 남편도 식탁에 앉았다. 오랜만에 만든 계란말이는 대성공이다. 세 사람 모두 각자의 밥을 싹 비웠다는 뜻이다. 남편은 식사를 마치고 아이들의 가방에 물통을 넣어준다. 써모스 두 개에 따뜻한 물을 담고, 째의 유치원가방에는 전날 씻은 수저 넣어준 다음, 인의 커피는 텀블러에 담아 들고 출근한다.


-안녕. 갔다 올게.

-잘 다녀와. 

-안녕 아빠! 오늘은 일찍 와!


첫째는 밥을 다 먹고 옷을 어제 골라놓은 옷을 입는다. 시간이 조금 남아서 영어책 한 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 오, 솔아 여기 이 책 좀 봐, 제목이.. 이상한 달걀 The Odd Egg?

아이관심 가질 것 같은 책을 전략적으로 식탁에 올려놓았다가 마치 우연히 견한 듯 무심하게 펼친다. 아침에 책 읽는 만들어주기 위한 의도적 루틴이다. 나는 책 보는 아이의 등 뒤로 가서 조심스레 머리를 빗어 묶는다. 에 머리카락이 걸릴 때 들리는 아얏! 하는 비명소리 가 안 나면 성공이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지 한 달 째인 첫째는 이제 아침 루틴에 익숙해진 것 같다. 침대에서 뜨고도 한참 뭉개고, 양치질을 하다가 칫솔을 들고 멍하게 있는 순간들이 여전히 있지만. 이제 혼자 집을 나서는 모습이 기특하기만 하다.


둘째가 유치원 버스를 타기 전까지 한 시간이 더 주어진다. 이때는 주로 아이가 원하는 걸 한다. 보드게임을 하거나, 역할놀이, 끝말잇기, 책 읽기, 혹은 전날 다 못한 숙제를 하기. 좀처럼 틀을 벗어나지 않는 모범적인 성향의 첫째와는 달리 둘째는 자유분방하다. 감정의 업스앤 다운스가 크고 고집이 완강. 아기 때부터 타협이 어운 성향이라, 크게 문제 되는 일이 아니면 그냥 내버려 두었었다. 자라면 다 좋아지겠지 하면서. 그런데 최근에 이 아이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며 깨달다. 이제껏 나는 아이 의도와 행동을 면밀히 관찰해 본 적이 없었다는 . 연년생  딸 거의 모든 순간을 함께했이들 각자의 고유한 면모를 들여다볼 회는 드물었다.


둘째는 늘 덤으로 얻은 존재 같서, 말도 안 되는 투정을 부리고 떼를 그저 귀여웠다. 하지만 둘이 함께하며 모든 맥락을 공유하고 보니  다 생각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아이는 엄마가 자신의 말을 경청해 준다는 걸 알게 되자 놀랍게도 온순해졌다. 정의 기복이 큰 건 자기 주도성이 강한 이 아이의 욕구가 반복적으로 좌절될 때였다. 7세가 되더니 이제 본인이 엄마의 모자람을 인지하여 스로 챙기는 총기도 생겨났다. 다가 오늘은 수셈책을 풀었는데, 언니어려워하는 두 자릿수 뺄셈을 곧잘 하는 것이었다. 폭풍칭찬을 해주니 이번에는 영어책을 읽겠다며 어설픈 지식을 마구 뽐냈다. 책을 5권 읽고도 계속 읽겠다는 걸 겨우 말리고 유치원에 보냈다. 내가 일하느라 정작 내 자식의 성장과 학습에는 무심했다는 낀다.




아침의 여유.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양질의 시간. 하루 두세 시간의 운동. 을 읽고 글을 쓸 여유. 모두 감사하고 좋지만, 무엇보다 출근을 안 해서 좋은 건 '매일 밤 일찍 잘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다. 나는 일을 집에 싸들고 오는 편이었다. 일하는 속도가 느리고, 학교에 있는 시간 동안에는 주위가 산만해서 일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끄럽게도 교무실에서 쓴 공문은 꼭 실수한다. 그리하여 퇴근 후 아이들을 재우고 밤열시부터 열두 시까지, 못다 한 업무를 하고 수업자료도 준비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자연히 취침시간은 늦어지고, 수면시간은 줄어든다. 운동할 시간은 당연히 부족하고, 건강이 악화되는 건 뻔한 결과이다.


요즘 나는 아이들과 함께 9시쯤 들어서 아침에 7시에 일어난다. 아침에 눈뜰 때 피곤하거나 몸이 무게 느껴지는 불쾌감 없이 늘 개운한 상태다. 트레스 없이 매일 2-3시간 운동하고 9-10시간 숙면한다면 누군들 건강해지지 않으리. 일할 때 자주 먹었던 두통약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운동하고 책 읽고 청소하고 요리하고 아이들과 공부하고 놀고  하루가 끝난다. 나를 핸드폰에 비유해 보자면, 주어진 배터리를 유익한 곳에 알뜰 사용한 뒤에 자면서 다시 풀로 충전하는 기분이다. 렇듯 하루는 생각보다 짧고 내 체력은 한정되어 있데, 장에 다니는 동안에는 내 에너지를 마이너스통장 쓰듯 땡겨쓴 것 같다. 나중에 방학하면 다시 채워 넣어야지.. 하면서. 하지만 방학 동안 결코 그 손실 워지지 못했고, 늘 어영부영 새 학기를 맞았다.


일을 안 하니 실제  은행 마이너스계 손실액어나는 중이다. 꼬박꼬박 들어오던 급여는 사라졌는데 지출은 그만큼 줄어들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나중에 복직하면 채워 넣어야지.. 아. 무엇을 쓰고 무엇을 채우는 건지 혼란스럽다.


남편 내 휴직일상의 평화로움을 함께 만끽하는 중이다. 내가 집안일에 매진하자 그는 가사노동에서 다소 해방되었다(내가 일할 때는 둘 다 지쳐서 가사도우미를 고용하기도 했다). 최근에 회사에서 진급도 했단다. 건강하고 에너지 충만한 내 모습을 보는 게 좋다며 굳복직을 안 해도 되지 않냐고도 말한다. 러게. 흩어져있는 것들을 잘 정돈하면 우리의 마이너스통장을 없앨 수 있을지도 모른다. 쩌면 우리는 남편 1인의 경제활동만으로도 충분히  수 있다(는 말의 의미, 어떤 방식으로 살 것인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는 필요하다). 이쯤 되니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직이 아니라 휴직 중인가.

는 어째서 학교를 그만두지 못하나.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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