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 Francia Dec 28. 2023

아빠는 조식셰프

휴직을 앞둔 마음

평일 아침 7시.

알람이 울리면 우리 넷은 각자의 속도로 기상한다.

나와 첫째는 벌떡 일어나서 아침 일과에 돌입하는 반면 남편과 둘째는 눈을 뜨고도 침대에서 한참 밍기적거린다. 알람은 5분 간격으로 요란하게 울리는데, 남편은 그걸 듣는지 못듣는건지 10분이 지나서야 겨우 몸을 일으킨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시점엔 남편이 아침 알람을 듣고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참으로 의아했다. '아니 눈을 떴는데 안 일어나고 뭐 하는 거지?!' 사람 세세한 부분에서 얼마다를 수 있는지 결혼 생활을 통해 알게 되었다.) 둘째도 제 아빠를 닮았는지, 수차례 깨워야만 일어난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출근을 하지만, 출근 준비에 걸리는 시간은 확연히 다르다. 나는 머리를 감고 말리고 화장하고 옷을 입는 일련의 과정에 약 30분을 소모하지만 남편의 출근 준비는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집의 아침 식사는 자연스럽게 남편 몫이다.


아침에는 따뜻한 음식 위주로 간단히 먹는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빠 달걀국(정확히는 과 국의 중간 형태)은 사나흘 연속으로 내줘도 맛있다며 한 그릇 뚝딱 하는 메뉴이다. 그 외에 (냉동실에서 꺼낸)곰국, (전날 끓였던)뭇국, 미역국, 쇠고기 탕국 등의 국종류와 소량의 잡곡밥, 달걀프라이와 사과 몇 조각이면 충분하다. 가끔은 베이컨이나 치킨너겟을 굽거나 떡국 혹은 만둣국을 끓이 볶음밥이나 주먹밥류(버터양파 볶음밥, 새우볶음밥, 참치주먹밥, 베이컨김치 주먹밥 등)를 휘리릭 만들기도 하며 참기름과 깨소금에 버무린 김치를 넣고 김밥을 말기도 한다. 남편은 매일밤 잠들기 전에 진지하게 고민한다. "내일 아침은 뭘 먹지?"


때로는 처음 보는 메뉴가 나오기도 한다. 오늘 아침남편은 버터에 구운 바게트에 토마토 토핑을 올린 브루스케타 비스무리한 것을 만들었는데, 우리가 일전에 이태리 식당에서 애피타이저로 먹었던 것과 맛이 똑같아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알고 봤더니 그 맛을 재현하고자 해외직구로 특이한 시즈닝을 구매한 것이었다.

그러나 저러나 내 아침 식사의 핵심 메뉴는 바로 건강 주스. 남편은 삶아 놓은 당근과 양배추, 사과를 블렌더에 넣고 돌려 주스를 만든다. 나는 텀블러에 다소곳이 담긴 주스를 들고 나는 먼저 집을 나선다.


남편은 미식가이고 요리에도 일가견이 있다.(손끝이 야무지고 정리정돈도 잘한다. 여러 모로 나와 참 다르다.) 그는 레시피를 검색하기보다는 감으로 요리하는 사람이다. 눈대중으로 양념한 제육볶음이나 냉동실의 해물을 뒤져 후딱 끓인 꽃게 된장찌개를 냄비째 식탁에 올리며 "맛있을지 모르겠네" 하는데, 거의 매번 완벽에 가까운 맛이다. 그가 선사한 수많은 요리 중 내가 꼽는 베스트는 바지락 파스타이다. 남편은 가끔 퇴근길에 수산물 시장에 들러 신선한 바지락을 만 원어치 사 오는데, 그걸로 만든 봉골레는 최고이다.(나는 파스타접시를 들고 국물까지 싹 마신다.) 애들 입맛에 맞는 음식도 곧잘 만들어서 딸아이들이 유치원 선생님에게 우리 아빠 직업이 요리사라고 말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이제 곧 겨울 방학이고, 나는 내년에 다시 육아휴직에 들어간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 둘째를 돌보기 위함이다. 엄마가 집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며 남편에게도 육체적·심적 짐을 덜어것이다(가정 내 재정적 압박은 있겠으나).


내가 아는 한, 의 노동력이 가사 노동과 자녀 양육에 전적으로 투입되면 다른 한 은 자연스럽게 그 일에서 손을 떼게 된다. 지난 수년간 육아휴직 동안 겪어보았다. 내 휴직이 시작되면 남편은 아마 더 이상 아침 7시 10분에 기상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게 마련이니까. 출근 준비가 필요 없는, 전혀 바쁘지 않을 내가 자연스럽게 아침밥을 준비하게 되겠지.


내 휴직이 남편의 요리 커리어를 계발시킬 기회와 주방(가사)노동에 대한 책임감을 고양시킬 기회를 빼앗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는 분명 요리에 적성과 소질이 다분한데. 내가 요리하기 싫어서.. 도 일정 부분 맞지만, 주어진 자원을 적재적소에 잘 쓰지 못한다는 느낌도 맞다. 톡깨놓고 사실은 나도 누군가로부터 챙김을 받고 싶은 마음인가. 어쨌든 뭔가가 아깝고 아쉬워서 다가올 휴직이 쬐금 덜 반가운 기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출근하지 않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