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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May 17. 2023

완벽한 순간은 없다

불완전함 속의 완전함

목감기가 일주일째 차도가 없다.

따갑고 간질거리는 인후통 독한 기침을 유발다. 밤에는 왜 더 심해지는 건지, 잠들만하면 기침이 터져 나와서 밤새 잠을 설쳤다. 거칠고 둔탁나의 가래기침소리 때문에 온 가족이 깼다 잠들었다를 반복했다. 가난과 사랑과 기침은 절대 숨길 수 없다고 누가 말했던가. 숨길 수도 참을 수없는 기침 때문에 헬스장도 수영장도 요가 수업도 열흘째 결석이다. 지금이라도 수강취소하고 수강료일부라도 돌려받아야 하나 생각하다가 금세 피로해졌다. 힘들게 만들어놓은 얼마 되지도 않는 근육량이 빠져나가는 기분 눈앞에서 뭔가도둑맞는 것처럼 억울다. 며칠 전에는 이비인후과에서 주사도 한 대 맞았는데, 엉덩이에 바늘 꽂은 보람도 없어서 서글프다. 아침에 마주한 거울 속에는 퀭한 굴의 여자가 머리를 산발한 채 나를 보고 있었다.


오늘은 동네 내과에 갔다. 어머님이 마늘주사라는 수액 감기회복에 좋으니 맞아보라 하셔서 조신하게 그 말을 따르기로 했다. '요즘은 수액도 실비보험되니까~'라고 덧붙이지 않으셨어도 내가 직였을까. 어쨌든 바늘 공포증이 있는 발로 수액을 맞으러 간다는 건 꽤 다는 의미 것이다.


환자들로 꽉 찬 낡은 대기실 한구석에 에어팟을 꽂고 앉아있었다. 느릿느릿 운신하시는 - 적게 잡아균 연령 여든은 되어 보이는 - 어르신들 사이에 앉아 있자니 왠지 내 증상이 무색했다.  시간 가량 기다리니 진료실에서 내 이름을 호명했다. 의사 선생님은 내 등에 청진기를 대고 숨 크게 쉬어보라 했다. 깊은 호흡은 내가 잘하는 몇 안 되는 것들 중하나인데, 병원이라 긴장했는지 잘 되지 않았다.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믄서 그냥 푹 쉬어야합니대이~

그는 구수한 경상도 말씨로 말했다. 입안도 들여다보고, 출근은 하는지, 임신 계획은 있는지, 다른 곳은 아프지 않은지 이것저것 물었다. 말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려서 '기침하느라 너무 괴롭다,  원래 건강체질인데 이렇게 심한 목감기는 처음' 이라며 응석 부리듯 고통을 호소했다. 의사는 껄껄 웃으며 맛있는 걸 먹고 따뜻한 걸 많이 마시고 푹 자라고 했다. 나는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할 수 있는 일상의 호사스러움에 대해서 잠시 생각했다. 그의 느긋한 말투 때문인지 온화한 표정 덕분인지, 정말 그렇게만 하면 금세 나을 것 같았다.


수액실 침대에 누웠다.

나이 지긋하신 간호사 선생님 내가 바늘을 보고 긴장하는 걸 눈치다.

주사 무서워하는구나, 호호 사실 나도 그래요. 안 아프게 해볼께요. 자 주먹 쥐고, 따끔~

하는 말과 함께 오팔 정맥으로 능숙한 바늘이 들어왔다. 심호흡을 내뱉으며 ' 아팠어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 간호사생님은 눈을 찡긋하며 한 시간 정도 푹 자라고 했다. 핸드폰 보지 말고요. 라는 말도 덧붙.  병원의 다정한 오지랖 싫지 않았다.


수액 맞는 동안 모로 누워 넷플릭스라도 볼까 했던 마음을 들킨 나는 그냥 밀리의 서재를 켰다. 김혜남 작가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을 오디오북으로 재생하고 눈을 감았다. 파킨슨 병 진단을 받고 20년 넘게 투병 중인 저자는 말했다. 완벽한 순간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60프로 정도면 충분, 완벽한 때를 기다리지 말라고.


간호사의 기척에 깼다. 잠깐, 여긴 어디, 나는 누구?하는 짧고 굵 숙면이었다. 바늘을 뽑고 잠시 지혈한 뒤 비척비척 병원을 걸어 나왔다. 정오의 햇살이 눈부시게 따사로웠다.


마늘주사 빨인지 어쩐지 기력이 도는 것 같아서 근처 시장을 어슬렁거리며 구경했다. 마침 15일. 아직 5일장이 서는 이 동네가 붐비는 날이다. 갓 딴 듯 신선해 보이는 오이와 흙 묻은 햇양파와 빨간 토마토와 빛깔 좋은 참외가 싱그러웠다. 욕이 돌아서 근처 당에 들어가 국밥을 한 그릇 먹었다. 얼큰한 국물이 유난히 따뜻했다. 그러고 보니 밥 먹는 동안 기침을 한 번도 안 했다. 속을 채우고 나니 커피가 절실히 당겼다. 목이 아파서 일주일째 커피를 자제했는데, 오늘은 저히 참을 수가 없다.



카페에 들어가 핸드드립을 주문했다. 서버에 영롱하게 찰랑거리는 커피를 보자 그리운 이를 만난 것처럼 설렜다. 경건한 마음으로 잔에 따라 한 모금 미했다. 매일 습관처럼 마실  때는 알 수 없었던 강렬한 감동이 밀려왔다. 쓰디쓴 첫맛은 이내 부드러운 산미와 고소함으로 변했다. 단주한 알코올중독자가 다시 술을 마시면 이런 기분일까. 나는 손에 든 잔을 내려놓지 않고 홀짝홀짝 한잔을 다 들이켰다. 카페인이 벌써  역할지 정신이 또렷해지는 것 같았다. 마침 가방에 있던 소설을 꺼내 펼쳤다. 역시 커피는 독서의 훌륭한 보조재이다. 정지아 작가의 문장, 찰진 남도 사투리가 살아 숨 쉬는 듯 생생하게 리고 구구절절 마음에 박혔다. 마스크 사이로 웃음과 울음이 배실배실 흘러나왔다.



문득 이 순간의 내 삶이 완전하게 느껴다.

견고하게 유지해 온 일상 감기 때문에 조금 붕괴되었지만, 그로 인해 금에 당도했다. 계획은 틀어지고 예상은 자주 빗나그때마다 좌절하지만, 나는 안다. 앞으로도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며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뭔가를 쓸 것이고, 때론 성취감을 만끽하고 가끔 타성에 젖기도 할 것임을. 내가 아프게 되거나 혹은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지켜봐야 할 테고, 뭔가를 상실할 것이며, 많이 울테고, 또 자주 웃을 거라는 걸. 그렇게 쌓아 올렸다가 무너뜨렸다가를 멈추지 않며 나는 아마도 점점 무르익을 것이다. 삶은 반짝거리는 스틸샷 모음집이라기보다 지루한 속도로 재생되는 동영상에 가깝. 리고 그 안에 완벽한 순간은 없을지언정 완전한 지금은 늘 있다. 내가 그걸 알아차리기만 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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