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 Francia May 28. 2023

<안락>, 은모든

모녀지간이라는 우주

카레를 만들었다. 

양파를 충분히  캐러멜라이징한 뒤, 감자와 당근, 고기를 넣는다. 재료가 익으 고소한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진다. 냄비에 물을 붓고 뚜껑을 덮은 뒤, 다용도실로 가서 김치냉장고의 하부서랍을 당겨 열었다. 거기엔 내 냉장고규격에 맞지 않 김치통이 하나 들어있다. 나를 설레게 하는 그 든든한 무엇.   문에 나는 카레를 만들기 시작했.


그것의 묵직한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고 하체에 힘을 실은 차- 크대 위로 들어 올렸다. 심호흡을 한번 내쉰 뒤 뚜껑을 열었다.

아, 이 냄새지. 바로 이 냄새. 엄마의 묵은지김치. 


왼손 니트릴장갑을 끼고 의 아래쪽으로 손을 쑥 집어넣어 김치 한 포기를 꺼냈다. 맛깔스럽게 잘 익은 김치가 마치 갓 잡아 올린 싱싱한 물고기처럼 살아 숨 쉬는  같. 나의 침샘 폭발 만다. 조금 전까지 입맛 없다고 했던 것이 무하기 짝이 없다. 이걸로 묵은지 돼지찌개를 끓이고 싶고, 고슬고슬 김치볶음밥도 만들어 먹고 싶고, 물에 씻어서 갓 지은 밥을 싸 먹고도 싶고, 아니 그냥 후딱 라면 하나 끓여서 김치를 얹어 후루룩 들이키고 싶다. 일단 지금은 카레를 먹자. 나는 짐짓 신이 나다가, 문득 두렵다. 엄마가 없으 이 김치를 먹을 수 없겠지? 지금이라도 엄마에게 김치 담는 법을 배워야 할까. 내가 배울 수 있을까. 배우면 과연 이 맛을 재현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읽은 소설 <안락>에서 화자는 할머니에게 제철 자두로 담금주를 만드는 법을 배운다. 집안 모든 사람들 할머니의 담금주를 좋아하지만 아무도 그걸 만드는 방법은 모르고 있었다. 소설 속 할머니는 파킨슨병으로 날로 쇠약해지고 있다. 근육이 말을 안 들어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자꾸만 줄어든다. 할머니는 어느 날 가족들에게 '못해도 5년 안에 가겠다'라고 선포하였고, 스스로 생을 마감할 날을 선택해 두었다. 이야기의 배경은 '임종계획'이 합법화된 시공간, 즉 그곳에서는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죽고 싶은 날을 스스로 정할 수 있다. 임종예정일 도래하면 업무 담당공무원 의료진과 경찰관을 대동하고 신청자의 집 방문한다. 미리 와 있던 가족들은 이제 곧 헤어질 이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당사자는 약을 복용하는 방식으로 편안한 임종을 맞는다.

 

<안락>의 이금래 할머니에게서 <시선으로부터>의 심시선 할머니가 보이기도 한다. 현실감각이 탁월하고 소신과 강단이 있, 살아온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는 인물 말이다. 그녀는 오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걸음마를 떼면서부터 집안일을 도왔고, 유년 시절 내내 동생들을 건사하느라 분주했다. 열아홉에 가정을 이룬 뒤에는 세 자매를 키우면서 시어머니의 식당 일을 돕느라, 자녀들이 성장한 후에는 시가의 식당에서 독립해 차린 밥집을 운영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여든을 넘기고 가게 일에서 물러난 뒤에는 곳곳에 탈이 나는 자신의 몸을 돌보느라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그러나 스스로 선택한 마지막 순간, 할머니의 표정은 편안했다. '개운하게 가겠다'라던 결심이 그대로 이루어진 듯 모든 집을 내려놓고 떠나는 할머니의 입 끝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내 명줄 내 맘대로지."

이런 삶을 살아 낸 사람이 이렇게 말할 때 우리가 쉬이 반박할 수 있을까.  


할머니는 우리가 평소 옷차림대로 편히, 가급적 생일잔치에 초대받은 기분으로 와주길 바랐다.




소설을 읽으며 작년에 돌아가신 나의 외할머니의 임종을 떠올렸다. 90세가 다되도록 큰 지병 없이 건강하게 활보하시던 할머니였다. 어느 날 낙상으로 고관절을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고, 그 후로 급격히 나빠졌다. 엄마에게 들은 바 할머니는 생전에 행여나 본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연명치료 같은 건 하지 말고 신신당부하셨단다. 할머니는 자신의 운명을 아셨던 걸까. 병원에 입원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갑자기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100살 생일에 내 딸들이 몇 살일지 헤아려보곤 했던 나는 그 비보를 믿기 힘들었다.


엄마를 잃고 아가 엄마는 많이 울었다. 가 당신의 엄마와 이별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언젠가 그 일이 내게도 닥칠 것이고 그때 나는 어떤 음일지 상상해 보았다. 엄마를 잃다니, 극도의 두려움이 엄습했고 못 견디게 먹먹해졌다. 엄마도 내게 수차례 말었는데. 연명치료 절대 안 할 것이라고. 




완벽하게 익은 김치를 카레와 함께 먹으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살가운 딸이 아닌 내가 엄마와 통화하는 빈도는 주 1회가 채 되지 않는데, 대부분 엄마의 음식을 먹을 때이다. 엄마가 양념해 준 LA갈비, 한솥 끓여 소분해 준 양지 미역국, 직접 빚어준 강원도식 김치만두, 견과류 넣은 멸치볶음, 그리고 김치. 먹으며 나는 엄마를 떠올린다. 우리가 전화로 나누는 말은 늘 똑같다.


-그래, 뭐 하니.

-밥 먹지. 김치가 너무 맛있. 엄마는?

-엄마는 먹었지. 이번 김치는 간이 좀 짤 건데, 맛있어?

-완전 맛있어.

-애들은 밥 먹었고? 이서방은?

-응, 다 잘 먹었어요.

-그래. 별일 없지? 집안일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낮에는 낮잠 자거나 밖에 나가. 카페 같은 데 가.


있잖아, 엄마한테 김치 만드는 것 좀 배울까?

라는 말은 차마 못 했다. 왜, 엄마 죽으면 김치 아쉬울 것 같애?하고 훅 들어올까 봐 겁났던 것 같다. 엄마는 늘 내 속을 읽는 사람이고, 돌려 말하는 법이 없는 사람이니까. 사실 그녀는 자신이 만든 김치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하다. 매년 김장을 신성한 의식 치르듯 한다. 재료 하나하나를 저렇게까지 싶을 만큼 어디선가 공수해 온다. 한해의 길흉화복은 김장에 달려있는 듯, '김치가 잘되니 올해는 너 행복하다' 말하는 사람. 엄마에겐 김치가 단순한 음식 이상의 무엇인 듯하다. 혼자 지내는 그녀가 소비하는 김치의 양은 정작 얼마 되지도 않는다. 나와 남동생, 양쪽 사돈댁에 한통씩 나눠주고 나머지 것으로는 자식들이 당신 집에 방문했을 때 돼지김치찌개를 한솥씩 끓여내곤 한다. 요컨대 엄마에게 김장은 자식들을 위한 것임에 다름없다.


자식인 나는 무얼 했느냐. 김장 후 몸살을 앓는 엄마 

-그러게 이렇게 무리하면서까지 김치를 굳이 담아야 해?요즘 김치 다 사 먹어, 맛있대. 이제 엄마도  그만.


라고 다그쳤던가. 이 핑계 저 핑계로 이제껏 김장을 제대로 도운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바로 몇 달 후에 '역시 엄마 김치가 세상 최고 맛있다니까.' 하며 예의 그 김치를 야금야금 얻어가는 염치없는 딸내미가 바로 나이다. 부모에게 나는 어쩜 이토록 뻔뻔해지고 마는 걸까.


소설 속 할머니에게는 딸이 둘 있는데, 둘째 딸은 임종 날짜를 통보하는 자신의 엄마를 슬피 원망한다. 엄마 가면 나는 어떡하라고. 나는 엄마 못 보내. 하며 울며 말린다.  장면에서 쑥 눈물이 맺혔다.


어느 날 내 엄마가 죽을 날을 받아놨다고 한다면, 나는 어떤 마음이 될까. 엄마 의견 존중한다고, 원하는 대로 하라고 성숙하게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러지 말아 달라고 울면서 애원하게 될까.


엄마가 살아온 날들을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떠올려보았다.

엄마가 되기  그녀의 삶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었을까. 지금 엄마의 삶에는 내가 어떤 의미일까. 엄마는 날 보고 '그렇게 키워놨더니 지 혼자 큰 줄 안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독립해서 제 잘난 척 사는 자식을 보는 마음은 어할까. 많이 섭섭하려나. 자식이 몇 살쯤 되면 '이제 나 없어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런 날 과연 오기 하는 걸까. 다음에 엄마를 만나면 직접 물어볼까.


할머니와 엄마와 나 그리고 내 딸. 복잡한 감정이 반죽처럼 뒤엉킨 모녀지간이라는 우주에서 우리는 마치 희미하고 가는 실 같은 것으로 꿰어져 있 것만 같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더라도 그 실은 미약한 듯 견고하게 이어져 있을 이다. 끝을 모르는 우리의 서사와 그 안에서 서로 나누는 마음에 관해 생각하며, 나는 느새 카레 한 그릇과 김치를  비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야마구치 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